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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자살함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
노무현 前 대통령 가족, 노무현 前 대통령 측근에 뇌물을 제공함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 받음
노무현 前 대통령의 둘째 형 노건평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로 검찰에 구속 수감됨
노무현 前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
※노무현의 친형 노건평의 사위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500만 달러를 요청하여 500만 달러를 받음
노무현 前 대통령 아들 노건호
연철호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을 때 함께 자리에 있었음
노무현 前 대통령 딸 노정연
박연차 회장에게 45만 달러를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
前 청와대 비서관 정상문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노무현 前 대통령 일가에 전달함
창신섬유 회장 강금원
봉하마을 투자 자금 중 일부를 노무현 前 대통령에게 뇌물로 줬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 받음
前 농협 회장 정대근
노무현 前 대통령 재임 시 권양숙 여사에게 3만 달러를 제공함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재인
노무현 前 대통령의 검찰 소환 때 변호인 자격으로 동행함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당선자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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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를 마친 노무현 前 대통령 일가는 서울을 떠나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로 귀향한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귀향으로 봉하마을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후 고향으로 귀향한 점과 서민적인 이미지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노무현 前 대통령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2008년 12월 4일
노무현 前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이 검찰에 의해 구속된다.
이유는 정화삼, 박연차에게 뇌물을 받았고
2006년 1월, 세종캐피탈이 농협에 세종증권을 매각하도록 도와준 후 29억 63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2008년 12월 5일
노무현 前 대통령은 노건평의 구속 수감 소식을 듣고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며 대국민 사과를 거부한다.
전직 대통령의 도리가 있겠지만 가족의 한사람으로서 동생의 도리도 있다.
내가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되면 형님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2009년 4월 7일
정상문 청와대 前 비서관이 검찰에 의해 체포된다.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에게 3억여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09년 4월 8일
정상문 청와대 前 비서관이 구속되자
노무현 前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홈페이지인 '사람사는세상'에 사과문을 게재한다.
사과드립니다.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사과정에서 사실대로 밝혀지길 바랄 뿐입니다.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9165
(글쓴 본인이 임의로 첨삭함 / 원본 링크)
노무현 前 대통령 스스로 정상문 청와대 前 비서관이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에게 받았다는 3억을
자신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사용했다는 것을 자백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인다.
※위 사진 자료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다.
당시(2009년) 4월 29일에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2009년 4월 7일
노무현 前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하자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때를 호기(好機)로 보고서는 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노무현 정권 때 그의 휘하에서 일했었던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당황해하며 종종 발언하기를
"노무현 前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前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노무현 前 대통령을 구속시키자."
-민주당 제18대 국회의원 이종걸
"노무현 前 대통령은 법정에서 모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
-민주당 대표 겸 제18대 국회의원 정세균
노무현의 곁에는 문재인 등 몇몇 사람 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보수단체는 물론이고 과거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까지 자신을 향해 비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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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 민주당은 왜 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난했는가?>
잠깐, 정동영과 당시 민주당의 형편을 조금 얘기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2007년 12월 19일
정동영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다.
2008년 4월 9일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루어진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고
정동영은 서울 동작구 을 민주당 후보 자격으로 출마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정몽준 서울 동작구 을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한다.
두번의 패배로 정동영은 몰락했고 그는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9년 4월 29일
18대 총선에서 당선 무효형 판정을 받은 의원들이 발생하였고
그의 연고지인 전라북도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루어지게 되었다.
이에 그는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고 하였으나
민주당에서는 정동영의 출마를 바라지 않았다.
두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마하려는,
그것도 자신의 연고지인 전라북도에 출마하겠다는 정동영의 태도에 반감을 느낀 탓이었다.
그러던 중, 노무현 前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게 되는데
정동영은 이 때를 기점으로 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난한다.
당시 민주당에 속해있었던 친노(親盧)계열 인사들을 싸잡아 비난하여
그들을 2선으로 물러나게끔 하려는 속셈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종걸, 정세균 등 민주당 인사들도
얼마 남지 않은 4.29 재보선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노무현 前 대통령을 비난하며
노무현 前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시전하고, 친노 인사들을 물러나게끔 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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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노무현 前 대통령 일가 비리 의혹>
2009년 4월 10일
검찰은 노무현 前 대통령 또한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주장했다.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받았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남편)으로써 몰랐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2009년 4월 11일
노무현 前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가 검찰에 의해 체포된다.
2007년,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에게 투자 명목으로 50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찰에서 연철호를 심문하던 도중에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밝혀진다.
그것은 바로 연철호가 박연차에게 돈을 요구했었던 자리에 노무현 前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었다.
2009년 4월 12일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된다.
권양숙 여사는 검찰에서 박연차 회장에게 3억원을 받았다는 점과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게 되었고
노건호는 연철호와 박연차가 만났던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점을 들어 500만 달러에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수사를 받게 되었다.
2009년 4월 17일
창신섬유 회장 강금원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된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로 귀향하였고 봉하마을에 사저를 짓게 되는데
그 때 강금원 회장이 70억원을 투자하였었다.
그런데, 그 70억원 중에 사저를 짓는데에 사용된 돈은 25억뿐이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검찰은 나머지 45억이 노무현 前 대통령에게 뇌물로 사용되었다고 의혹으로 제기하였다.
검찰 조사 결과 45억은 노무현 前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에게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같은 날인 2009년 4월 17일
검찰은 노건호를 재소환한다.
연철호가 박연차에게 받았던 500만 달러 중 280만 달러를 노건호가 사용했다는 혐의에서였다.
실제로 검찰 조사 결과 노건호는 국내 2개 업체에 달러를 투자한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날인 2009년 4월 17일
前 농협 회장 정대근이 노무현 前 대통령 재임 시, 정상문 청와대 비서관에게 3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정대근은 정상문에게 말하기를
"대통령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뭘 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이 돈으로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드려라."
권양숙 여사는 이 사실(정대근이 정상문에게 3만 달러를 제공)을 알고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았다.
권양숙 여사는 후에 문재인 이사장에게 말하기를
"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경우, 노 대통령이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이유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2009년 4월 20일
정상문 청와대 前 비서관이 '비서관 재직 시절 12억원의 공금을 횡령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고
이에 검찰은 정상문 비서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2009년 4월 22일
노무현 前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세상에서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이 뇌물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문을 게재한다.
이와 같은 날, 노무현 前 대통령은 검찰에 A4용지 7페이지 분량의 진술서를 전자 메일로 검찰에 접수한다.
그 내용에서 노무현 본인은 '뇌물 사건에 대해 몰랐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같은 날 2009년 4월 22일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가 진술하기를
"노 대통령 부부에게 1억원 가치의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이 시계는 여러분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그 피아제 시계이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前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다.
이 날 노무현 前 대통령은 10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다.
보수단체에서는 노무현 前 대통령 측의 증거인멸을 우려하여 구속수사를 주장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2009년 5월 9일
노무현 前 대통령 측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에게 받은 100만 달러중
상당 부분을 자녀 유학비로 사용했다고 진술하였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본인은 모르는 일, 부인에게 물어본 후에 답변서를 제출하겠다."고 하였다.
일각에서는 이 자녀 유학비가 70만~80만 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권양숙 여사는 "(남편과는) 의논할 사안이 아니었고, 이후에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하였다.
2009년 5월 13일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에게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검찰에 진술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부인·아들에 딸까지 돈을 받고 이제는 증거 인멸 시도까지 하느냐"며 강하게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검찰은 노무현이 검찰 조사에서 "논두렁"이라는 말은 없었고,
"집에서(권양숙 여사로부터) 버렸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진술했다고 확인했다.
2009년 5월 14일
노무현 前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에게 징역 4년형이 선고되었다.
2009년 5월 14일
노무현 前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이 박연차 회장에게 (새롭게) 4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노무현 前 대통령 측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에게 받은 100만 달러 중 일부분일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이에 검찰은 2009년 5월 16일,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하여 재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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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결과>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前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자살한다.
이에 당시 노무현 前 대통령에게 비난하던 모든 이들은 당황하였고
민주당, 좌파 언론 등은 비난의 화살을 한나라당, 보수단체에게 돌리기 시작한다.
그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루어졌으며
이명박 대통령, 김윤옥 여사, 한승수 국무총리
김영삼 前 대통령, 김대중 前 대통령 등이 참석하였다.
노무현 前 대통령 자살 이후
민주당에서 위기에 몰렸던 친노(親盧)세력이
당시 형성된 동정적인 여론에 의하여 당내 지도권을 장악하였으며
이는 후에 '민주통합당'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2년 9월 16일
노무현 前 대통령의 평생 지기였던 문재인 의원은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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