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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KO시킨 13세 소년복서 "제2의 홍수환 꿈꿔요"-동아일보

 

백혈병 KO 시킨 13세 소년복서 “제2의 홍수환 꿈꿔요”

한우신기자

입력 2015-07-28 03:00:00 수정 2015-07-28 03:00:00

 

 

복싱 4개월만에 우승 기염… 김건민군 ‘전설’을 만나다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오른쪽)이 백혈병을 이겨 내고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김건민 군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있다. 영원한 챔피언과 미래 챔피언 모두 눈빛이 매섭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건민아, 팔을 좀 더 쭉 뻗어! 쭉쭉! 권투를 예쁘게 그리려고 하지 말고 세게 쭉 뻗으라고! 아주 죽여 버리라고!”

사각의 링에는 쩌렁쩌렁 고함이 메아리쳤다. 링에 선 두 남자의 나이 차는 52년. 한 명은 전 세계챔피언 홍수환(65·한국권투위원회 회장), 다른 한 명은 미래의 챔피언을 꿈꾸는 13세 소년 김건민이었다. 과거와 미래의 챔피언은 16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의 ‘홍수환 스타 복싱 체육관’에서 만났다. 둘은 권투를 한다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넘어져도 일어나고 아파도 이겨 냈다는 것.

올해 중학교 1학년인 건민이는 4년 전 온 몸에 붉은 반점과 두드러기가 돋아났다. 1년 가까이 병원을 전전했다. 결국 확정된 병명은 재생불량성 빈혈, 백혈병이었다. 치료를 위해서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문제는 수술비였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이 홈플러스다. 홈플러스는 백혈병소아암협회와 함께 2012년 3월부터 ‘생명 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백혈병을 앓는 어린이의 수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320명의 아이를 도왔다. 이 캠페인의 1호 대상자가 건민이다. 건민이는 수술 후 현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검진을 받는 정도로 회복됐다.

건민이는 건강을 되찾으면서 지난해 10월 처음 권투 글러브를 꼈다. 아프기 전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 운동장과 태권도장을 누비던 아이였다. 건민이의 아버지 김광열 씨(49)는 “권투를 배우면 아팠던 기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 목적은 소박했지만 권투 글러브는 건민이에게 참 잘 맞았다. 건민이는 권투를 배운 지 4개월 만인 올해 2월 출전한 서울시 생활체육대회에서 우승했다.

홈플러스는 ‘권투 소년’의 꿈을 돕기로 했다. 그래서 전 세계챔피언인 홍 회장과 건민이의 만남이 이뤄졌다.

 
건민이의 손을 본 홍 회장은 흡족해했다. “손이 엄청 크다. 권투 선수로 타고났다. 얼굴도 잘생겨서 한국 복싱의 큰 별이 될 것이다. 배운 걸 익히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홍 회장은 건민이에게 주먹과 팔의 각도와 스텝 등 권투의 핵심을 가르쳤다. 둘의 만남을 주선했던 관계자들 그리고 건민이의 아버지조차 처음에는 ‘악수하고 덕담 몇 마디 나누겠지’ 했다. 하지만 전직 챔피언은 손자뻘인 소년에게 열정을 쏟았다. 1977년 세계복싱협회 주니어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2회에 4번이나 다운을 당하고도 3회에 상대를 KO로 이겼던 그때처럼 말이다. 홍 회장이 기본기와 함께 전수하려 한 건 바로 그때의 ‘4전5기의 정신력’이다. 건민이의 눈빛도 분 단위로 달라졌다. 건민이는 “한 시간 동안 배웠는데도 자세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걸 느꼈다”며 “오늘의 만남이 뜻깊은 만남이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 회장의 강한 정신력의 바탕에는 어머니가 있다. 그는 “권투 하며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4년 아들이 세계챔피언에 오르자 “대한국민 만세”라고 외친 그 어머니다. 건민이에게도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부모가 있다. 이제 막 권투에 첫발을 디딘 건민이에게는 영광의 순간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의 순간이 기다린다. 그 길을 앞서 걸었던 홍 회장은 그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사제의 연을 약속한 스승의 결정적 조언이다.

“이기면 돼. 경기에서 이기면 하나도 안 아픈데 지면 너무 아파. 부디 대한민국 국민 특히 몸이 아픈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길….”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경제부 페이스북 기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