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독점 LiBS 기술 독립”… 개발 착수 11년만에 세계 2위 우뚝
이샘물 기자
입력 2016-06-21 03:00:00 수정 2016-06-21 03:00:00
[한국경제, 새 성장판 열어라 2016 연중기획]
[R&D 현장을 가다]<8>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
SK이노베이션 연구진은 2003년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LiBS는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 등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 폭발이나 발화 같은 이상 작동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제조 방식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품질이 우수한 습식을 사용한다.
당시 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업체는 일본 파나소닉과 소니가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파나소닉과 소니를 추격하려고 했지만 구조적인 제약이 있었다. 습식 LiBS를 일본 ‘아사히카세이’와 ‘도넨’ 등 두 곳만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이 공급하는 습식 LiBS 물량만큼만 배터리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배터리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습식 LiBS 개발이 필수적이었다.
○ 국내 최초, 세계 세 번째로 습식 LiBS 개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종합화학은 LiBS의 원재료가 되는 폴리에틸렌(PE)을 생산하고 있었다. 2003년 8월 이장원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장(51·상무)을 포함한 5명은 습식 LiBS 개발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4개월 뒤엔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제품 개발을 위한 정식 팀을 출범시켰다. 이 소장은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SK가 습식 LiBS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에 엄청나게 기여하고, 애국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제품 하나만 만들어보자.”
주어진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뜯어서 무작정 분석했다. 밤낮없이 수천 번 실험을 반복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제품 개발이 완료됐다.
통상 기업은 제품을 개발하면 순차적으로 ‘실험실 테스트’와 ‘파일럿플랜트(시험생산설비) 운영’을 거친 뒤 공장을 짓고 상업생산에 돌입한다. 하지만 경영진은 무조건 된다고 가정하고 배수진을 치면서 공격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다. 실험실 테스트를 하면서 동시에 시험생산설비를 지었다. 또 시험생산설비 가동과 동시에 상업생산 라인을 지었다. 일반적으로는 5년은 걸릴 과정이 3년으로 대폭 단축됐다. 2006년엔 상업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작 상업생산이 시작되자 국내 배터리회사들은 일본 기업 제품과 품질을 비교하며 SK가 생산한 LiBS를 사지 않았다. LiBS를 팔 수 없게 돼 1년간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했다. 사내에서는 “연구개발(R&D)에 속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 선제적 투자로 세계 2위 LiBS 생산업체로 도약
SK이노베이션은 이때 휴대전화 배터리를 제작하던 SK그룹 계열사인 SKC에 LiBS를 소량 납품했다. 그 소식을 접한 아사히카세이는 SKC에 LiBS 공급물량 전체를 끊어버렸다. SKC는 필요한 LiBS 전량을 SK이노베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뜻밖의 기회였다.
SKC에 LiBS를 납품하면서 제품 품질은 점점 높아졌다. 불만사항을 접수해 끊임없이 개선하면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품질이 나왔다. 이 소식은 다른 기업들에도 흘러들어갔다. 2007년엔 국내 주요 배터리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연구진은 새로운 공정 개발에도 나섰다. 고객사별로 원하는 다양한 특질의 LiBS를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이었다. 이를 위해선 특별한 기계를 주문 제작해야 했다. 일본 기계업체에 제작을 의뢰했다. 새로운 공정도 테스트했다. LiBS 수요는 급증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느라 증설이 6개월 늦어졌다.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생산라인 2호기에 새 공정을 안착시켰다. 이후에도 꾸준히 차별화된 공정을 개발했다.
그러던 중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구소를 방문했다. 회장 보고자료엔 LiBS 증설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최 회장은 당시 LiBS 담당 임원이던 이영근 고문 등과 점심을 먹다가 “할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고문은 “LiBS 시장이 분명히 커질 것 같은데 증설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증설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최 회장은 “그러면 증설하자”며 “한 라인 갖고 되느냐”고 물었다. 사업계획 보고 등을 생략하고 즉석으로 선제적인 투자 결정을 내린 순간이었다. 이 고문은 “더 있으면 좋다”고 답했다. 최 회장은 “증설을 하려면 두 개를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증설한 4, 5호기는 2010년부터 가동됐다. 이때 투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장 상황이 개선되면서 파나소닉과 소니 등 해외 고객사를 확보했다. 제품 예약이 꽉 찬 것이다. 당시 증설은 SK이노베이션이 LiBS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얻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2년 뒤인 2014년 SK이노베이션은 생산규모 기준으로 세계 2위 LiBS 회사가 됐다.
17일 대전 유성구 엑스포로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 LiBS 시험생산설비에서는 20m가 넘는 기계에서 얇은 비닐 모양의 LiBS 반제품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주동진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 수석연구원(47)은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제품의 두께와 강도 등이 다르다”며 “이를 조절하며 우리만의 특화된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LiBS 생산라인은 총 9호기. 2018년까지 10, 11호기를 증설한다. 현재까지 LiBS 누적 매출은 1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대전=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R&D 현장을 가다]<8>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
이것이 자체 개발 습식 LiBS SK이노베이션이 개발한 습식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습식 LiBS 시장은 2020년까지 연평균 16%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습식 LiBS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26%(지난해 기준)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정보·전자라는 새로운 산업이 뜨고 있는데 그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SK이노베이션 연구진은 2003년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LiBS는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 등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 폭발이나 발화 같은 이상 작동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제조 방식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품질이 우수한 습식을 사용한다.
당시 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업체는 일본 파나소닉과 소니가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파나소닉과 소니를 추격하려고 했지만 구조적인 제약이 있었다. 습식 LiBS를 일본 ‘아사히카세이’와 ‘도넨’ 등 두 곳만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이 공급하는 습식 LiBS 물량만큼만 배터리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배터리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습식 LiBS 개발이 필수적이었다.
○ 국내 최초, 세계 세 번째로 습식 LiBS 개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종합화학은 LiBS의 원재료가 되는 폴리에틸렌(PE)을 생산하고 있었다. 2003년 8월 이장원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장(51·상무)을 포함한 5명은 습식 LiBS 개발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4개월 뒤엔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제품 개발을 위한 정식 팀을 출범시켰다. 이 소장은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어진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뜯어서 무작정 분석했다. 밤낮없이 수천 번 실험을 반복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제품 개발이 완료됐다.
통상 기업은 제품을 개발하면 순차적으로 ‘실험실 테스트’와 ‘파일럿플랜트(시험생산설비) 운영’을 거친 뒤 공장을 짓고 상업생산에 돌입한다. 하지만 경영진은 무조건 된다고 가정하고 배수진을 치면서 공격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다. 실험실 테스트를 하면서 동시에 시험생산설비를 지었다. 또 시험생산설비 가동과 동시에 상업생산 라인을 지었다. 일반적으로는 5년은 걸릴 과정이 3년으로 대폭 단축됐다. 2006년엔 상업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작 상업생산이 시작되자 국내 배터리회사들은 일본 기업 제품과 품질을 비교하며 SK가 생산한 LiBS를 사지 않았다. LiBS를 팔 수 없게 돼 1년간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했다. 사내에서는 “연구개발(R&D)에 속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 선제적 투자로 세계 2위 LiBS 생산업체로 도약
SK이노베이션은 이때 휴대전화 배터리를 제작하던 SK그룹 계열사인 SKC에 LiBS를 소량 납품했다. 그 소식을 접한 아사히카세이는 SKC에 LiBS 공급물량 전체를 끊어버렸다. SKC는 필요한 LiBS 전량을 SK이노베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뜻밖의 기회였다.
SKC에 LiBS를 납품하면서 제품 품질은 점점 높아졌다. 불만사항을 접수해 끊임없이 개선하면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품질이 나왔다. 이 소식은 다른 기업들에도 흘러들어갔다. 2007년엔 국내 주요 배터리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연구진은 새로운 공정 개발에도 나섰다. 고객사별로 원하는 다양한 특질의 LiBS를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이었다. 이를 위해선 특별한 기계를 주문 제작해야 했다. 일본 기계업체에 제작을 의뢰했다. 새로운 공정도 테스트했다. LiBS 수요는 급증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느라 증설이 6개월 늦어졌다.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생산라인 2호기에 새 공정을 안착시켰다. 이후에도 꾸준히 차별화된 공정을 개발했다.
그러던 중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구소를 방문했다. 회장 보고자료엔 LiBS 증설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최 회장은 당시 LiBS 담당 임원이던 이영근 고문 등과 점심을 먹다가 “할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고문은 “LiBS 시장이 분명히 커질 것 같은데 증설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증설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최 회장은 “그러면 증설하자”며 “한 라인 갖고 되느냐”고 물었다. 사업계획 보고 등을 생략하고 즉석으로 선제적인 투자 결정을 내린 순간이었다. 이 고문은 “더 있으면 좋다”고 답했다. 최 회장은 “증설을 하려면 두 개를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증설한 4, 5호기는 2010년부터 가동됐다. 이때 투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장 상황이 개선되면서 파나소닉과 소니 등 해외 고객사를 확보했다. 제품 예약이 꽉 찬 것이다. 당시 증설은 SK이노베이션이 LiBS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얻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2년 뒤인 2014년 SK이노베이션은 생산규모 기준으로 세계 2위 LiBS 회사가 됐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LiBS 생산라인은 총 9호기. 2018년까지 10, 11호기를 증설한다. 현재까지 LiBS 누적 매출은 1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대전=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톡톡 경제]日방해 뚫고 피땀으로 쓴 ‘LiBS 신화’
이샘물 산업부
입력 2016-06-22 03:00:00 수정 2016-06-22 05:11:31
日업체 “뭘 안다고…” 문전박대… 개발뒤엔 3년 특허소송 휘말려
“젊은이들 지방 연구소 기피 씁쓸… 어려움 이기고 제2의 신화 써야”
연구진은 ‘LiBS를 개발해 애국하자’며 의기투합했지만 상업생산 직후 제품이 팔리지 않아 1년간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했습니다. 당시 사업 담당자는 업무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경쟁사가 제기한 특허 소송에도 휘말렸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 및 생산 기간을 대폭 단축했지만 기술을 빼가서 그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겁니다. 연구진은 기술을 잘 모르는 판사에게 진땀을 흘려가며 설명한 끝에 3년 만에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게 소송”이라고 회고합니다.
새로운 공정을 개발한 뒤 기계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땐 현지 기술자가 이 소장을 화장실까지 쫓아와 만류했다고 합니다. “SK가 너무 모른다. 당신들 기술이 정말 좋다면 일본 회사들이 왜 안 했겠느냐.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은데 옛날 방식대로 가라.”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일쑤였습니다. 이 소장은 일본의 한 유명 배터리업체에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납품을 기대하며 건물 앞에서 자랑스럽게 사진도 찍고 들어갔습니다. 정작 업체 측 파트너는 30분쯤 늦게 등장해 발표는 듣지도 않고, “당신들이 분리막의 강도라는 게 뭔지 아느냐”는 등 질문만 몇 개 던진 뒤 휭하니 자리를 떴습니다.
연구진은 수많은 땀과 눈물 끝에 LiBS뿐 아니라 새로운 공정 개발 및 안착에도 성공했습니다. 국내외 유수 배터리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LiBS 개발 초기에 연구진은 5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개발자 20명을 포함해 LiBS 관련 인력은 400명에 이릅니다.
연구소에서 안타까운 얘기를 또 하나 들었습니다. 최근 많은 젊은이들이 지방(대전)이라는 이유로 연구소에 취직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입사 후에도 수도권으로 옮기길 원한다는 겁니다. 더 많은 인재들이 편하고 익숙한 환경을 찾기보다는 SK이노베이션 연구진처럼 어려움을 무릅쓰고 낯선 환경에 발을 내디뎠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2, 제3의 ‘LiBS 신화’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샘물 산업부 evey@donga.com
“젊은이들 지방 연구소 기피 씁쓸… 어려움 이기고 제2의 신화 써야”
이샘물·산업부
동아일보 6월 21일자 B3면에 나간 ‘연구개발(R&D) 현장을 가다’ 시리즈 기사 취재를 위해 17일 대전 유성구 엑스포로 SK이노베이션 B&I연구소에서 이장원 소장(상무) 등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분량상 지면에 모두 싣진 못했지만 배터리 핵심소재인 습식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생산 규모 세계 2위라는 화려한 성공 뒤에는 쓰디쓴 실패와 좌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LiBS를 개발해 애국하자’며 의기투합했지만 상업생산 직후 제품이 팔리지 않아 1년간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했습니다. 당시 사업 담당자는 업무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경쟁사가 제기한 특허 소송에도 휘말렸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 및 생산 기간을 대폭 단축했지만 기술을 빼가서 그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겁니다. 연구진은 기술을 잘 모르는 판사에게 진땀을 흘려가며 설명한 끝에 3년 만에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게 소송”이라고 회고합니다.
새로운 공정을 개발한 뒤 기계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땐 현지 기술자가 이 소장을 화장실까지 쫓아와 만류했다고 합니다. “SK가 너무 모른다. 당신들 기술이 정말 좋다면 일본 회사들이 왜 안 했겠느냐.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은데 옛날 방식대로 가라.”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일쑤였습니다. 이 소장은 일본의 한 유명 배터리업체에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납품을 기대하며 건물 앞에서 자랑스럽게 사진도 찍고 들어갔습니다. 정작 업체 측 파트너는 30분쯤 늦게 등장해 발표는 듣지도 않고, “당신들이 분리막의 강도라는 게 뭔지 아느냐”는 등 질문만 몇 개 던진 뒤 휭하니 자리를 떴습니다.
연구진은 수많은 땀과 눈물 끝에 LiBS뿐 아니라 새로운 공정 개발 및 안착에도 성공했습니다. 국내외 유수 배터리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LiBS 개발 초기에 연구진은 5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개발자 20명을 포함해 LiBS 관련 인력은 400명에 이릅니다.
이샘물 산업부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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