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소비 피크 여름·겨울, 태양광 발전 효율 떨어져
2001년 포항 호미곶면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겼다. 섬이 아닌 내륙에 처음으로 들어선 풍력발전기다.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랜드마크는 금세 ‘애물단지’ 처지가 됐다. 1~2년에 한 번꼴로 고장나 가동이 멈췄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수입한 이 풍력발전기는 현지 기술자가 직접 한국으로 와야 했기 때문에 수리할 때마다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14억원을 들여 설치한 이 발전소가 운행 기간 벌어들인 수익은 총 4억5700만원. 그런데 수리비로만 4억2000만원이 나갔다. 결국 혈세만 낭비한다고 판단한 경북도는 지난해 12월 이 발전기를 철거했다.
‘탈(脫)원전’을 선언한 새 정부의 핵심 대안은 태양광·풍력발전 같은 신재생에너지(이하 신재생) 시설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적의 입지를 찾기 힘든 데다 설령 찾았다 해도 각종 규제·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기후변화·고장 등 예상외의 ‘복병’도 나타난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선 신재생을 빠른 속도로 늘리기엔 입지 선정에서 건설 이후 관리·운영까지 곳곳에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정부 공약대로 신재생 발전 비율을 20%까지 높이려면 41.6GW의 신재생 설비가 필요하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산지가 많은 곳에서는 용지 확보가 쉽지 않다. 셈법은 제각각이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 따르면 1GW의 발전설비를 구축하려면 태양광은 44㎢, 풍력은 202㎢의 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양광은 13.2㎢, 풍력은 4~5㎢면 된다고 반박한다. 누구 말이 맞든지 간에 원전(1GW당 0.6㎢)에 비교하면 ‘땅 먹는 하마’다.
특히 일조량과 바람의 세기 등 환경 요소까지 감안하면 맞춤형 부지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담당 교수는 “지리적으로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한국은 일사량이 미국의 70% 수준에 불과하고, 풍력발전에 활용할 정도의 바람이 부는 지역도 제한적”이라며 “좁은 국토와 농지 보전 정책 등을 감안하면 개발 가능한 입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곳곳에 쳐진 거미줄 규제도 걸림돌이다. 지난 주말 오후 강원도 인제군 용대풍력발전단지. 산 중턱에 설치된 7기의 발전기 가운데 2기는 가동되지 않았고, 나머지 5기도 날개를 멈출 때가 많았다. 이 발전기의 평균 가동률은 약 10%. 2013년 풍력발전기 건설 당시 타당성 조사(18%) 때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발전단지 관계자는 “산 정상은 바람이 충분히 나오는데 백두대간보호법, 군사기지·시설 보호법 등 때문에 지을 수 없다 보니 산 중턱에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태양광은 도로·건물에서 많게는 1000m 떨어져 시설을 짓게 한 ‘이격거리 제한’이 대표적인 ‘대못’ 규제로 꼽힌다.
부지를 선정해도 주민들의 반발로 ‘퇴짜’를 맞는 경우도 많다. 충북도와 수자원공사는 2013년 충주호에 국내 최대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기로 했다. 농지나 산림이 아닌 물 위에 시설을 설치하기 때문에 환경 훼손도 적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충주호의 경관을 망치고 수상레저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 피켓을 들었다. 결국 충북도는 3년간의 씨름 끝에 지난해 설치 계획을 접었다. 산업부 전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태양광·풍력발전 허가 중 37.5%가 주민 반발로 반려·보류됐다. 주민과의 갈등으로 신재생 공사가 보류·중단된 지역은 중앙일보 취재진이 확인한 곳만 전국에 최소 30곳이 넘는다. <중앙일보 8월 9일자 1·4·5면>
설치 이후 관리·운영 문제도 부정적인 변수다. 원전이나 화력발전은 스위치만 켜면 바로 가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태양광·풍력은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전력 수요에 맞춰 가동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에서 태양광의 가동률은 지난해 12%로 주요 에너지원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는 태양광이 일조량뿐 아니라 온도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태양광 모듈은 25도를 넘기면 온도가 올라갈 때마다 발전 효율이 떨어진다. 일조량이 아무리 많아도 온도가 높으면 전기 생산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국립환경과학원 기후변화연구동이 2011년 5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태양광 발전을 운영한 결과 계절별 태양광 발전량은 봄 > 가을 > 여름 > 겨울 순이었다. 반면에 전력 소비량은 겨울 > 여름 > 봄 > 가을 순이었다. 여름·겨울에 폭증하는 전력 수요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태양광은 야간이나 흐린 날에는 무용지물”이라며 “전력 피크 때인 겨울철 밤에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풍력발전의 높은 수입 의존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외국산 발전시설의 누적설치용량은 전체의 58.4%를 차지했다. 2000~2016년 8월까지 풍력발전기가 멈춘 경우는 총 60건이었는데, 이 중 50건(83.3%)이 수입 터빈을 사용하는 풍력기에서 발생했다. 고장 나면 외국 제작사의 기술자를 데려와야 하고, 지자체도 회계 절차상 이에 맞춰 예산을 수립하기 어려워 보수에 차질을 빚고 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신재생 확대에 따른 전력 인프라의 변동, 축소되는 에너지원 설비의 운영, 요금과 세제·보조금 지원은 어떻게 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정부 정책 방향에 반대하진 않지만 무리하게 속도를 낼 경우 전 정권의 ‘4대 강’처럼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윤정민 기자 sohn.yong@joongang.co.kr
탈원전 가로 막는 첩첩 장벽
여름엔 쨍쨍해도 25도 넘으면
태양광 전기 생산 되레 줄어들어
태양광·풍력은 ‘땅 잡아먹는 하마’
비좁은 한국서 신재생 설치 어려워
용대 풍력단지는 규제에 발목 잡혀
바람 적은 산 중턱 건설, 10%만 가동
‘탈(脫)원전’을 선언한 새 정부의 핵심 대안은 태양광·풍력발전 같은 신재생에너지(이하 신재생) 시설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적의 입지를 찾기 힘든 데다 설령 찾았다 해도 각종 규제·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기후변화·고장 등 예상외의 ‘복병’도 나타난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선 신재생을 빠른 속도로 늘리기엔 입지 선정에서 건설 이후 관리·운영까지 곳곳에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조량과 바람의 세기 등 환경 요소까지 감안하면 맞춤형 부지를 찾기가 더욱 어렵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담당 교수는 “지리적으로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한국은 일사량이 미국의 70% 수준에 불과하고, 풍력발전에 활용할 정도의 바람이 부는 지역도 제한적”이라며 “좁은 국토와 농지 보전 정책 등을 감안하면 개발 가능한 입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곳곳에 쳐진 거미줄 규제도 걸림돌이다. 지난 주말 오후 강원도 인제군 용대풍력발전단지. 산 중턱에 설치된 7기의 발전기 가운데 2기는 가동되지 않았고, 나머지 5기도 날개를 멈출 때가 많았다. 이 발전기의 평균 가동률은 약 10%. 2013년 풍력발전기 건설 당시 타당성 조사(18%) 때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발전단지 관계자는 “산 정상은 바람이 충분히 나오는데 백두대간보호법, 군사기지·시설 보호법 등 때문에 지을 수 없다 보니 산 중턱에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태양광은 도로·건물에서 많게는 1000m 떨어져 시설을 짓게 한 ‘이격거리 제한’이 대표적인 ‘대못’ 규제로 꼽힌다.
부지를 선정해도 주민들의 반발로 ‘퇴짜’를 맞는 경우도 많다. 충북도와 수자원공사는 2013년 충주호에 국내 최대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기로 했다. 농지나 산림이 아닌 물 위에 시설을 설치하기 때문에 환경 훼손도 적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충주호의 경관을 망치고 수상레저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 피켓을 들었다. 결국 충북도는 3년간의 씨름 끝에 지난해 설치 계획을 접었다. 산업부 전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태양광·풍력발전 허가 중 37.5%가 주민 반발로 반려·보류됐다. 주민과의 갈등으로 신재생 공사가 보류·중단된 지역은 중앙일보 취재진이 확인한 곳만 전국에 최소 30곳이 넘는다. <중앙일보 8월 9일자 1·4·5면>
설치 이후 관리·운영 문제도 부정적인 변수다. 원전이나 화력발전은 스위치만 켜면 바로 가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태양광·풍력은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전력 수요에 맞춰 가동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에서 태양광의 가동률은 지난해 12%로 주요 에너지원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는 태양광이 일조량뿐 아니라 온도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태양광 모듈은 25도를 넘기면 온도가 올라갈 때마다 발전 효율이 떨어진다. 일조량이 아무리 많아도 온도가 높으면 전기 생산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국립환경과학원 기후변화연구동이 2011년 5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태양광 발전을 운영한 결과 계절별 태양광 발전량은 봄 > 가을 > 여름 > 겨울 순이었다. 반면에 전력 소비량은 겨울 > 여름 > 봄 > 가을 순이었다. 여름·겨울에 폭증하는 전력 수요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태양광은 야간이나 흐린 날에는 무용지물”이라며 “전력 피크 때인 겨울철 밤에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풍력발전의 높은 수입 의존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외국산 발전시설의 누적설치용량은 전체의 58.4%를 차지했다. 2000~2016년 8월까지 풍력발전기가 멈춘 경우는 총 60건이었는데, 이 중 50건(83.3%)이 수입 터빈을 사용하는 풍력기에서 발생했다. 고장 나면 외국 제작사의 기술자를 데려와야 하고, 지자체도 회계 절차상 이에 맞춰 예산을 수립하기 어려워 보수에 차질을 빚고 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신재생 확대에 따른 전력 인프라의 변동, 축소되는 에너지원 설비의 운영, 요금과 세제·보조금 지원은 어떻게 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정부 정책 방향에 반대하진 않지만 무리하게 속도를 낼 경우 전 정권의 ‘4대 강’처럼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윤정민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전력 소비 피크 여름·겨울, 태양광 발전 효율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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