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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서 6.25참전용사들 위문한 '계명대 국외봉사단'

        


에티오피아서 6·25참전용사들 위문한 ‘계명대 국외봉사단’

장영훈 기자 입력 2018-02-07 03:00수정 2018-02-0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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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국외 봉사단원들이 지난달 12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부라하느히워트 학교 운동장에서 연 6·25전쟁 참전용사 초청 공연에서 부채춤을 선보이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6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총장 접견실. 최근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국외 봉사단 남녀 대표들이 신일희 총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봉사단 32명은 지난달 12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부라하느히워트 학교에 6·25전쟁 참전용사 50여 명과 인근 마을 주민, 학생 100여 명을 초청해 문화 축제를 열었다. 참전용사들을 위해 봉사단이 일종의 위문잔치를 연 것이다. 봉사단은 참전용사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려고도 했지만 빈민촌인 그곳에는 마땅한 무대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봉사활동이 이뤄지고 있던 학교 운동장을 빌려 문화 축제를 열었다.

계명대 봉사단의 여성 대표로 축제를 진행한 하시온 씨(25·영어영문학전공 4학년)는 “햇볕이 따갑고 먼지가 심해 공연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에티오피아 주민들이 2시간여 동안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고 많은 박수를 보내준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어려운 시절 우리에게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그들에게 작은 기쁨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 씨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함께한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아디스아바바에 울려 퍼진 영남농악 

1월 12일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아디스아바바 부라하느히워트 학교 교정에서 계명대 국외 봉사단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장영훈기자 jang@donga.com
참전용사들에게 선사한 한국 문화 공연은 그들에게 친숙한 콘텐츠로 짜여져 감동을 더했다. 학생들은 보다 나은 공연을 위해 출국 2주 전부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씩 맹연습을 했다. 


축제의 첫 번째 순서였던 사물놀이는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농악 전통복장으로 등장한 학생 9명은 꽹과리와 징, 장구를 곁들인 영남농악을 신명나게 연주했다. 참전용사들은 한국에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10분 동안 이뤄진 공연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현지 학교 관계자는 “원래 흥이 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좋아할 가락”이라며 “참전용사들도 같은 조국처럼 여기는 한국 학생들을 많이 응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물놀이팀을 이끈 박진우 씨(26·영어영문학전공 3학년)는 “부족한 실력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이었지만 모두 즐거워하는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참전용사들 앞에서 공연을 한 일은 생애 가장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펼쳐진 케이팝 댄스는 관객 모두 함께 즐기는 무대였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올 때는 제자리에서 같이 춤을 추고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참전용사들도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댄스팀으로 활약한 선가영 씨(22·여·식품가공학전공 4학년)는 “공연 내내 모두 한마음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며 “참전용사들이 박수를 보낼 때 기운이 솟구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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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는 평균 해발이 2400m인 고지대 도시다. 부라하느히워트 학교가 있는 지역은 3000m 이상이라서 봉사 기간 동안 어지럽고 숨이 차는 고산병을 호소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공연 내내 힘들어하면서도 봉사단 모두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태권도 시범팀을 이끈 신영재 씨(25·경영정보학전공 4학년)는 “상당수가 여러 공연팀에 속해 몇 번씩 다시 무대에 오르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코미디 연기팀을 맡은 박준식 씨(26·경제금융학전공 4학년)는 “다리가 아파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참전용사들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했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고 말했다.

○ 한국 음식과 작은 선물에 감동 

학생들은 공연을 마치고 참전용사들에게 정성껏 준비한 밥과 카레, 잡채를 점심으로 대접했다. 식사를 마치고 의류와 기념품도 선물했다. 형편이 어려운 참전용사들이 생필품 구입에 보태 쓰라는 뜻으로 참전용사협회에 3000달러를 전달했다. 참전용사 빌레이 베켈에 씨(87)는 “한국 학생들이 이렇게 찾아와 베풀어 준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소중한 선물”이라며 “오늘의 감동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에티오피아와 한국이 영원한 우방이 되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과 백발의 참전용사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학생들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면서 예의를 표한 참전용사도 있었다. 참전용사 햄사 알에카 쉬웬데이 웰데이에스 씨(84)는 “한국 학생들이 에티오피아까지 와서 봉사와 공연을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고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슬럼가로 변한 참전용사의 한국마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은 하일레 셀라시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는 황실근위대를 중심으로 참전부대 ‘칵뉴(KAGNEW)’를 창설했다. 칵뉴는 현지 암하라어로 ‘격파하다’ ‘혼란에 질서를 바로잡다’는 뜻으로 황제가 직접 이름을 붙였다. 에티오피아는 5차례에 걸쳐 6037명을 한국에 파병했다. 화천, 철원 등 강원도 격전지에서 120여 명이 전사했다. 칵뉴는 250여 차례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참전용사들은 1974년 군부의 쿠데타 이후 갖은 핍박을 받았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맹국인 북한과 싸웠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고 가난이 후손에게 대물림됐다. 실제 계명대의 문화 공연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은 빛바랜 정장과 군복 차림이었다. 낡은 모자는 원래 색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낡았다.

아디스아바바 도심에서 승용차로 40분가량 떨어진 곳에 참전용사와 후손들이 살고 있는 ‘한국마을’은 그들의 어려운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달 12일 찾은 마을 입구에는 태극기와 에티오피아 국기가 그려진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간판에는 “칵뉴 부대원들이 거주한 까닭으로 한국마을로 불리게 됐다”는 내용이 현지 암하라어와 한글로 적혀 있었다. 대표적 빈민촌으로 꼽히는 마을에는 현재 참전용사 200여 명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주택의 상당수는 벌겋게 녹이 슨 양철로 지붕을 얹고 담장을 두른 것이었다. 양철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너무 낡아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낮인데도 인적은 드물었다. 가끔 폐지를 줍는 노인이 보였다. 마을 입구 근처에 전자기기 수리와 식료품 가게, 음식점 등 10여 곳이 모여 있는 곳이 유일한 경제 활동 공간이었지만 활력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참전용사의 후손으로 중고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대부분 집과 땅을 정부에 몰수당하고 오랜 기간 피폐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며 “그나마 나처럼 일을 할 수 있는 후손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봉사단 인솔을 맡았던 한여동 계명대 학생지원팀장은 “학생들이 참전용사를 위한 공연을 열고 전사자의 유해가 안치된 트리니티 대성당 등을 둘러보며 혈맹에 대한 고마움과 우정을 느끼게 됐다”며 “봉사 이상의 가치를 얻었다”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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