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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참여연대의 '삼성 때리기'...시장경제 할 수 있을지 의문

       


[오늘과 내일/신치영]한국, 시장경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신치영 경제부장 입력 2018-05-05 03:00수정 2018-05-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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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일부 목소리만 크게 부각돼 나라 정책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04년 5월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종합기계 매각 문제를 두고 이 부총리가 청와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때였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개혁주의자 이정우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은 민주노동당과 대우종기 노조가 원하는 대로 대우종기를 노조가 인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는 이에 맞서 절차의 투명성을 지키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해 9월 실시된 입찰에서 두산중공업은 2위 효성보다 5000억 원 많은 1조8000억 원을 적어 냈고 대우종기 노조가 참여한 팬택 컨소시엄이 3위였다. 입찰 결과를 보고 받은 이 위원장은 “팬택 컨소시엄에 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고 결국 두산중공업이 낙찰자로 선정됐다. 대우종기는 두산의 품에 안겨 두산인프라코어라는 효자 계열사로 재탄생했다.

갑자기 14년 전의 일을 떠올린 건 지금 상황이 그때와 너무 비슷해서다. 청와대가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내각에는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출신 장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친노동-반재벌 정책 기조도 꼭 닮았다. 이헌재 부총리는 당시 실세 장관이었던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등 반재벌 정책을 강화하려 할 때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이헌재처럼 소신껏 주류파에 맞서는 관료가 없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는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관료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비스업 일자리가 줄고 생활서비스 물가가 올라도 최저임금 탓이 아니라는 말만 되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존의 기로에 선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대통령의 눈에 들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 ‘삼성 죽이기’에 앞장선다.


관료 출신 장관들이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사이 문재인 정부의 운전대는 참여연대가 차지했다. 참여연대가 주장하던 대로 금융위원회는 삼성생명에 삼성전자 주식을 팔라고 독촉하고, 금융감독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가 분식회계라고 결론 내렸고, 법무부는 외국 투기자본이 그토록 원하는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전문 관료들의 추락이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야전사령관’으로 써야 할 장관을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직원들에게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전령병’으로 만들어 놓은 대통령의 탓도 크다.


이헌재가 소신을 펼 수 있었던 건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포용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3년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필립스LCD가 경기 파주시에 100억 달러(당시 12조 원) 규모의 공장을 세우려 했지만 수도권 규제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고 있을 때 노 대통령은 재정경제부에 해결 방안을 찾아오라고 특명을 내렸다. 그 덕분에 지금 파주에는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클러스터가 들어서 있다. 

아무도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위에서 정해 놓은 원칙이 편향적으로 강화된다면 거칠게 말해서 사회주의와 다를 게 뭔가. 이헌재 부총리는 2004년 7월 지금과 유사한 당시 상황을 탄식하며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도 꼭 같은 얘기를 하고 싶을지 모른다. “요즘은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