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ing Grace(눈물의 길)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놀라운 주님의 은총! 너무나 달콤한 주님의 음성
That sav’d a wretch like me!
나같은 불쌍한 자를 구해주시니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한때 길을 잃고 방황했으나 지금은 나의 길을 찾았어요
Was blind, but now I see.
난 눈이 멀었었지만 지금은 볼수가 있지요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주님의 은총은 내 가슴의 두려움을 가르쳐 주셨어요
And grace my fears reliev’d;
은총으로 나의 두려움을 씻어 주셨습니다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내 앞에 나타난 은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요
The hour I first believ’d!
그 시간 난 처음으로 믿음을 가졌습니다
Thro’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I have already come;
’Tis grace has brought me safe thus far,
And grace will lead me home.
The Lord has promis’d good to me,
His word my hope secures;
He will my shield and portion be,
As long as life endures.
Yes, when this flesh and heart shall fail,
And mortal life shall cease;
I shall possess, within the veil,
A life of joy and peace.
The earth shall soon dissolve like snow,
The sun forbear to shine;
But God, who call’d me here below,
Will be forever mine.
Amazing Grace
지금으로부터 160여년 전인 1838~39년.
지금의 미국 동부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러배마 주 일대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이 백인 이주민 국가
'미합중국'의 강제 이주령에 의해
고향에서 5천리(2000km) 떨어진
머나먼 오클라호마 주 허허벌판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연을 미국사에서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라고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눈물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화가 로버트 린드노(1871~1970)가 그린 '눈물의 길'(1942년 작)
이 그림을 보면 마치 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말,
마차를 갖고 떠난 것 같지만 사실은 몸에 걸친
옷 정도밖에는 거의 갖고 갈 수 없었답니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쫓겨난 거지요.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추운 한겨울에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체로키 인디언 강제이주로. 고향에서 5천리 너머 중부지방으로 쫓겨났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얼추 4,000명이 도중에 숨졌습니다.
이 피눈물과 죽음의 강제이주는 1839년 봄에 끝났습니다.
이때 이들이 부른 노래가 Amazing Grace였습니다.
죽은 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노래의 영감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체로키어로 번역해 이들에게 전해 준 인물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강제이주에 끝까지 반대해
법정투쟁까지 하며 이들을 도운 백인 선교사
새뮤얼 워시스터(1798~1859)였습니다.
오늘날 체로키 인디언들은 이 노래를
거의 애국가처럼 부릅니다.
여기에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지요.
말하자면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이 노래는, 백인들에 의해 신을 찬미하는 찬송가로 불리우고 있지만,
실은......그 옛날 백인들에 의해, 거의 몰살당했던,
미국의 '체로키 인디언'들의 슬픈 영혼을 달래주는 '진혼곡'이다.
원래는, 백인들에 의해, '체로키 인디언'들이 죽어가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그런데......그렇게 말살한 후, 도용(盜用)하여,
자기들의 신을 찬미하는노래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파렴치 하며, 후안무치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다음은, 그 '후안무치'함에 실소(失笑) 할수 밖에 없는, 가사 내용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가사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I was blind, but now I se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twas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s reli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ved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살면서 주찬양하리라.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하리라.. - 펌 -
1893부터 미정부가 '인디언'들을 오클라호마 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중 많은 수가 있고 문자까지 있던 체로키 인디언들의 눈물의 길을
따라가 보자면,, 그들은 미기병대들과 마차에 둘러싸여
(미군은 앞쪽에, 마차는 뒤쪽에) 오클라호마 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중에 여러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었다.
그런 상황을 보고 군인들은 마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단 한명도 마차를 타지 않았다.
그들은 걸어가는 도중에 사망한 자신의 아들,
자신의 부모를 업거나 안고 묵묵히 행진했다.
끝내, 4000여 명의 체로키 인디언들이 죽었으나,
마차에 편안함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 자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결코 눈물의 여로라 부를만큼 낭만적인 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참혹함, 민족의 파멸 그 자체였다.
그런데 백인 시인에 눈에는 낭만적이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서부영화, 즉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거짓된 서부개척의 역사를 보아왔다.
그러나 잊지마라.. 신대륙의 발견은 결코 위대한 것이 아니라
민족 말살의 발단임을...
수많은 죽음과 수많은 학살과 수많은 압제의 시작임을..
승자의 역사에 속아 넘어가지 마라. 그것은 오로지 거짓으로만 이루어진,
진실을 가로막는 눈가리개이다..
읽을 거리, 하나...... - 펌 -
-- 인디언 눈물의 길 --
산타페 트레일의 또 다른 명칭은 ‘Trail of Tears' 다.
이 눈물의 여정은 미국에서 체로키, 크리크, 촉초, 치카소족 등 많은
미국 인디언 부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오늘날의 오클라호마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인디언 영토로 이주한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인디언들은 서부로의 이주 도중 질병이나 기아로부터 고통받았다.
1831년 체로키, 치카소, ,크리크족은 미국의 남부지역에서 자율적인
국가로서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헨리녹스(Henry Knox)에 의해 제안된 문화변화 프로젝트의 과정은
특히 체로키족과 촉초족 사이에서 그 여세를 몰아갔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은 인디언 강제
이주법(1830)을 통해 미국 인디언들의 제거를 실행했다.> (위키백과 )
기차길 , 서부개척사 , 골드러시 미국 역사책에는 인디언의 수난사가 끝이 없다.
인디언의 신화를 남긴 시팅불에 대해서 좀더 읽어보자.
수많은 전설을 남긴 '앉은황소'의 일대기를 그려냄으로써
백인의 문명과 침략에 결연히 저항했던 인디언의 이상적인 삶의
가치를 보여준다. 시팅불은 참다운 의미에서의 인디언이자 진정한 인간
이었으며 자신의 전통 , 문화에 완벽하게 충실했던 문화의 수호자였다.>
<용기와 지혜를 가진 인물로 존경받는 시팅불은 1869년 마침내
수우족 전체의 최고 전투 대추장으로 추대된 후 라코타족 전체를
하나로 끌어 모아 백인 군인들과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18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은 문서에 인정한 인디언 영토인
'대 수우족 보호구역'을 점령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곳의 중심 '검은언덕'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검은 언덕을 사냥감이 풍부하고 땔감이 많기 때문에
'식량 창고'로 여겼다. 이런 실용적인 측면 외에 신비로운 평원으로 매우
신성시했다. 미 정부는 1874년 남북전쟁의 영웅인 커스터 장군을 대장으로
하는 제7기병대를 이곳에 급파하여 금광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골드러시의 붐을 타고 탐욕스런 백인 금광개발자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성소이자 '예비 저장소'가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인디언의 창과 방패 , 시팅불 로버트 M. 어틀리 저 책소개에서 )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뜨거운 날이었다. 리틀빅혼 강을 끼고 자리한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훙크파파 부족의 추장 앉은황소(Sitting Bull)의
지휘 아래 수우족과 샤이엔족이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었다. 여자들은 티피에서
집안일에 몰두했고, 새벽녘까지 축제를 즐겼던 사내들은 낮잠을 잤다.
정오가 되어 평화를 깨뜨리는 소식이 마을을 강타했다.>
“적들이 오고 있다, 적들이 오고 있다!” 강 동쪽 절벽에 있던 여인들이
리노 샛강에서 달려오는 기병대를 본 순간 모든 진영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남자들은 서둘러 전투복장을 갖추고 말을 찾았다. (책 , 시팅불에서 )
<백인은 식량을 얻기 위해 땅 파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부족은
조상이 했던 것처럼 버펄로 사냥을 좋아한다. 백인은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부족은 사냥터를 따라서
티피(인디언의 이동식 숙소)를 이곳 저곳에 이동하며 살길 원한다.
백인은 노예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마을이나 농장에 갇혀 있다.>
<1885년 시팅불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디언 감독관은
'버펄로 빌스 와일드 웨스트'(Buffalo Bill's Wild West) 쇼에 출연시켰다.
시팅불은 오히려 쇼를 통해 명성의 절정을 차지한다.
쇼 공연에서 시팅불은 거침없는 욕설과 만담을 구사했다. 이런 장면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이끌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때 워보카가 창시한 '유령춤'(Ghost Dance)이라는 종교운동이 일어나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인디언들을 사로잡았다. >
이 종교는 인디언의 전통 종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것이었다.
유령춤 제전이 인디언들 사이에 널리 퍼지자 미 당국은 유령춤 확산을
저지하고 나섰다. 선바위 (Standing Rock ) 관리인 맥로프린은
이 기회를 이용해 '골치 아픈 반항아' 시팅불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1890년 12월 15일. 앉은황소를 체포하기 위해 인디언 경찰과 군인이 파견된다.
앉은황소는 자신의 통나무집에서 인디언 경찰과 맞선다. 양측은 심한
총격전을 벌였고 시팅불은 인디언 경찰의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
시팅불은 백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인과 평화조약을 맺고 그들이 주는 '선물'을 받으며 연명하느니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음을 택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의
표시였다. 전쟁에서의 용맹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내와 자식들을 살려주었다. 무기가 없는 적에게 무기를 건넨 후에
다시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관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신대륙 발견이란 결국 인디언 침략사의 출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인디언 라코타족의 용맹한 전투 대추장 시팅불은 정신적 카리스마로
부족을 이끌었으며 인디언의 자존심이다. 앉은황소의 삶은 오늘날까지
약소민족들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 위키백과에서 )
1889년경부터 시작된 종교운동인 유령춤(Ghost Dance) 운동은 백인을
휩쓸어버리고 과거의 전통을 회복시킬 인디언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예언을 담고 있었다. 유령춤의 퍼포먼스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동요하고 있던 수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소요사태를 유발시켰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시팅불을 체포하기 위해 인디언 경찰과 군인이
파견되었다. 1890년 12월 15일 그랜드 강에서 붙잡힌 시팅 불은
인디언 전사들의 구출 시도에도 불구하고 살해당했다. 그의 유해는
예이츠 요새에 묻혔으나 1953년 사우스다코타의 모브리지로
이장되었으며, 무덤에 화강암기둥이 세워졌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다. 집이나 철도 또는 옷이나 식량,
그 어떤 것도 원치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 땅에서 자유롭게
옮겨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앉은황소의 연설 중에서)
2007년 , ‘박물관 뉴스’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본다.
“美 박물관 시팅불 수장 유족에게 유물 반환”
아메리카 인디언 수족의 수장인 시팅 불의 유물이 그의 후손
들에게 전해졌다고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이 발표했다.
그의 머리털과 정강이 받이는 리틀 비그혼 전투에서 조지 암스트롱
장군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헝크파파 라토카 수장 증손의
요청에 따라 후손들에게 전달됐다.
시팅 불은 1890년 부족 경찰에 체포돼있던 중 사망했으며 그의 머리털과
정강이받이는 군 의료진이 가지고 있다 후에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 감독인 빌 빌랙은 발표문에서 “시팅 불의 후손을 직접 만나게돼 영광이며
중요한 물건들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타페 트레일 . 길위를 걸어가면 인디언의 절규와 함성이 이어진다.
사방에서 시팅불의 영웅담이 전개된다. 광대한 인디언의 대서사시는
힘없는 아시안의 역사를 닮아 뉴 멕시코 산맥을 넘어 백두대간으로
울려퍼진다. 참혹한 눈물의 길이다.
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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