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수사팀 막내’김응희 경위
살인 공소시효 연장되자 재수사
“담배꽁초 DNA 일치 통보 땐 눈물 핑”
그해 10월 27일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A씨 딸은 양손과 발이 묶인 채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웃집의 신고로 경찰관이 왔을 때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수사를 맡은 서울 도봉경찰서는 A씨 몸에서 용의자의 체액을 채취했다. 이를 통해 가려진 용의자 혈액형은 AB형이었다. 범행 직후 용의자가 A씨 신용카드로 서울 시내 ATM에서 150만원을 인출하는 모습이 담긴 CCTV 화면도 확보했다. 이 단서들을 토대로 2년간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화면이 흐릿해 용의자 얼굴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데다 지문 등의 추가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김응희 경위
지난 6월 김 경위는 숙제를 풀기로 결심했다. 강간살인은 공소시효가 15년이지만 피의자 DNA 정보 등 명확한 증거가 있을 경우 시효가 10년 더 연장된다. 김 경위와 동료 경찰관들은 절도·강도·성범죄 전과자 8000여 명의 사진을 구한 뒤 CCTV 사진과 비교하는 작업을 벌였다. 김 경위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18년 전 피의자의 사진을 저장해 놓고 수시로 보다 보니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도소와 혈액원을 통해 이들의 혈액형을 구해 AB형인 이를 추려냈다. 이 과정을 거쳐 피의자 후보군을 125명으로 줄였고, 특히 의심 가는 10여 명의 DNA를 확보해 대조하기 시작했다. 오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난달 중순 김 경위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오씨의 집 근처에서 잠복하다 오씨가 버린 담배꽁초를 주웠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검사에서 꽁초에서 나온 DNA가 용의자 DNA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 경위는 “국과수로부터 ‘일치’ 통보를 받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오씨에 대한 본격 수사에 돌입하고 이 사실을 A씨의 딸에게 알린 지난달 27일은 마침 사건이 일어난 지 딱 18년이 되는 날이었다. 오씨는 지난 11일 경찰에 체포됐다. 오씨는 김 경위가 증거를 들이대자 “전셋집을 얻기 위해 생활정보지를 보고 찾아 갔다가 욕정이 발동해 일을 저질렀다”고 범행을 시인했다. 곧바로 김 경위는 A씨 유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범인, 잡았습니다.” 김 경위는 “이번 경험을 다른 장기 미제 사건에 활용해 죄지은 사람은 반드시 잡힌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