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김우중은 DJ와 이헌재에게 배신당했나
최영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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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선 뒤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에서 옷 벗은 이헌재는 미국 유학을 떠난다. 뉴욕 출장길에 나선 경기고 6년 선배 김우중이 “공항 앞에서 아침 식사나 하자”고 하자 ‘고단한 유학생’ 이헌재는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안개 길을 헤치고 9시간 동안 운전해 온다. “어렵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하버드대 최고경영자코스(AMP) 추천서를 써 달라는 부탁에 김우중은 추천서에다 14주에 2만5000달러(약 2500만 원)인 학비까지 줬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회장님,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라며 대우에 들어가 ㈜대우 전략담당 상무, 대우반도체 대표이사를 지냈다. 2년 반 동안 김우중의 세계 경영과 함께했다.
김우중은 DJ를 끝까지 신뢰했던 것 같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에 당선된 DJ는 “나는 정치는 잘 알지만 경제는 잘 모르니 김 회장이 경제를 해 달라”고 했다. 김우중은 청와대 경제 관련 회의 고정 멤버가 됐다. 재벌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김우중은 DJ를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그리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부부 동반으로 만났다. 김우중은 “DJ가 나에게 확언을 해줬는데…. 열심히 하다 보면 잘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하지만 이로부터 넉 달 뒤 DJ는 “5대 그룹도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에 넣을 수 있다”며 압박했다. 김우중은 사재(私財)를 포함해 12조 원을 담보로 내놓고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리고 두 달 뒤 1999년 10월 유럽·아프리카 출장을 떠났고, 2005년까지 행방불명 신세가 됐다.
김우중은 당시 상황에 대해 “채권단이 자금 지원을 해주지 않아 내가 계속 항의하니까 여러 경로를 통해 ‘김 회장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하니 해외에 좀 나가 있어라’는 얘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DJ에게 전화해 확인하니 ‘3∼6개월만 나가 있으면 정리해서 잘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기호 경제수석도 만나 ‘잘 처리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전도사’라는 이헌재는 김우중 부재 때 고래 배를 가르듯 거침없이 대우를 털어버린다. 이헌재는 이를 ‘시장의 힘’이라지만 김우중은 ‘정부의 기획해체’라며 분노했다. 이헌재가 대우를 너무 잘 알아서 혹독하게 칼질했다는 뒷담화도 나왔다. 김우중이 ‘아차!’ 했을 땐 이미 늦었다.
대우를 인정사정없이 칼질하기까지 권력 막후에선 어떤 정치공학과 셈법이 있었던 걸까. DJ는 왜 김우중에게 해외로 나가 있어라 했고, 김우중은 또 무슨 꿍꿍이로 정권이 바뀔 때까지도 해외 유랑을 했나. ‘칼잡이 이헌재’에게는 어떤 감정일까. 이헌재가 DJ, 노무현 정부에 이어 안철수 캠프까지 기웃거린 속내는 무엇일까. 추석 때 김우중과 이헌재 회고록을 비교해 읽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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