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온돌방 36.5]"불 속 할머니, 스리랑카 있는 내 엄마 같아서…"
“스리랑카의 우리 엄마나 한국 엄마나 똑같아요. 불 속에 갇힌 할머니가 우리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 불 속으로 들어가서 데리고 나왔어요.”
니말은 지난 2월 경북 군위군 불이 난 주택에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2일 보건복지부가 의상자(義傷者)로 선정했다. 불법체류자 의인 1호다.
불법체류자 의인1호 스리랑카인 니말 인터뷰
2월 군위서 불난 집 들어가 90세 할머니 구조
얼굴·목 2도 화상…신분 들켜 건보 적용 못받아
"우리 어머니, 한국 어머니 모두 같은 엄마"
벌금 500만원에 진료비 1400만원 낼 판
"이런 일 생기면 또 불 속으로 들어갈 것"
"외국인 근로자에 심하게 욕 안 했으면…"
정부가 니말에게 준 의상자 증서의 일부다.
그는 의인이 됐지만 의로운 행동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됐다. 구조 중에 폐가 많이 손상됐다. 건강이 좋지 않아 돈벌이가 힘들어졌다. 불법체류 사실이 발각돼 불법체류 벌금(400만~500만원)을 내게 됐다. 자신이 낸 진료비 600만원과 별개로 의료비 환수금(800만원) 등을 내야 한다. <본지 6월 13일자 12면>
니말은 그래도 "다음에 누군가가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구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은 약 21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행여 적발될까 숨죽이면서 산다. 니말은 불 속으로 뛰어들면서 불법 체류 신분을 발각당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 질의 :의상자가 된 소감은.
- 응답 :“너무 많이 기분 좋다. 한국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 질의 :구조 당시 상황은.
- 응답 :“올 2월 10일 경북 군위군의 농장에서 오전 일을 마치고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랫마을 조씨 할머니(90) 집에 불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조씨 할머니의 며느리(불난 집가 주인)가 마침 회관에 같이 있었다. 집 주인과 함께 1㎞ 거리를 뛰었다. 도착해 보니 이미 불길이 집 전체로 번져 있어 들어갈 길이 없었다. 뒷마당으로 돌아가 뒷문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 질의 :할머니를 어떻게 구했나.
- 응답 :“안으로 들어가니 연기가 자욱했다. 기침소리가 나서 방문을 여니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를 업고 나오는데 그 새 불길이 더 거세져 방향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우왕좌왕하다 겨우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를 인계하고 바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다.”
- 질의 :불 속으로 들어갈 때 무섭지 않았나.
- 응답 :“물론 당연히 겁이 났다. 하지만 스리랑카에 있는 엄마 생각이 났다. 순간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할머니가 건강해서 좋다.”
- 질의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발각될 줄 몰랐나.
- 응답 :“어머니가 불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불법·합법을 따지겠나. 그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를 꼭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 한국 어머니, 모두 같은 엄마다.”
- 질의 :그런 일이 생기면 또 뛰어들 건가.
- 응답 :“불편한 사람(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
- 질의 :현재 몸 상태가 어떤가.
- 응답 :“얼굴·손·목 등의 화상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괴롭다. 의사가 '폐가 딱딱해질 수도 있다'고 해서 걱정이다. 의료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치료하고 싶다.”
- 질의 :괜히 불속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 응답 :“몸이 아파 불편하고 앞날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주위의 칭찬이나 격려가 너무 고맙다.”
- 질의 :고향의 부모님은 뭐라고 하나.
- 응답 :“많이 걱정하신 모양이다. 그래도 '좋은 일 했다'고 말씀하셨다. 내 건강 상태에 대해 온 가족이 걱정하고 있다.”
- 질의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 응답 :“스리랑카에 아버지(70), 어머니(62), 아내(32), 딸(11), 아들(6)이 있다. 아버지는 폐질환이 심하다. 어머니는 석 달 전 간암 수술을 했다. 너무 가난하고 거기 수입으로는 도저히 부모님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한국에 와서 인천·대구의 화학공장에서 일하다 불법체류자가 된 뒤 군위군 농장에서 일했다. 번 돈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냈다.”
- 질의 :불법체류를 택한 이유는.
- 응답 :“귀국하면 부모님 병 치료비를 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또 다시 한국에 오는 게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돈을 더 벌어서 돌아가려고 했다.”
- 질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
- 응답 :“우선 폐 질환을 완치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아무리 짧게 잡아도 1년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 그때까지 나의 병원비, 고향의 어머니 치료비가 걱정이다. 빨리 나아서 어머니 치료비와 가족 생활비를 많이 보내고 싶다.”
- 질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 응답 :“잘 모르겠다. 잘 해줄 때도 많지만 우리(외국인 근로자)가 뭘 몰라서 실수하면 너무 심하게 욕하고 나무라는 것 같다. 외국인 근로자를 무시할 때가 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이고 깨끗하고 좋지만 너무 급하고 빠른 것 같다.”
의로운 일 했는데도 건보 안 돼 의료비 800만원 토해야
니말의 예에서 보듯 불법체류자(21만명)는 건강보험을 혜택을 못 받는다. '불법체류자인데 무슨 건보 타령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선진국 중에는 여행객이 다쳐도 무료로 의료 혜택을 주는 나라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제규모 11위에 해당하는 만큼 이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불법체류자에게 건보 혜택을 주는 것을 고려해 봄직하다"고 말한다.
니말은 할머니를 화마에서 구하면서 2도 화상을 입어 한 달 입원했고 1400만원가량의 진료비가 발생했다. 본인이 600만원을 냈고, 건강보험이 800만원을 부담했다. 600만원도 니말에게는 큰 돈이다. 게다가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나 800만원을 환수당하게 됐다. 건보공단이 이미 환수하겠다고 전화로 통보했다.
의로운 일을 했다가 병원비를 본인이 전액 부담하게 된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은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된 이상 건강보험을 적용할 길이 없다. 사정을 봐서는 환수하지 않는 게 맞지만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니말이 근로 중 다친 게 아니어서 산재처리도 안 되고, 불법체류자라서 건보도 안 된다. 니말의 비자를 연장해주고 불법체류 기간을 면제해주면 건보 혜택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800만원을 안 내도 되고 400만~500만원으로 예상되는 불법체류 벌금도 면제된다.
신성식 기자
[출처: 중앙일보] [복지온돌방 36.5]"불 속 할머니, 스리랑카 있는 내 엄마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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