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이재용 재판 둘러싼 두 개의 인과율
선고 공판만 남은 이재용 재판
특검의 ‘뇌물’ 판단뿐 아니라
대통령 강박 못 이긴 측면도
잘 따져봐야 진실 드러날 것
그러나 20여 년간 과학적·논리적 추리기법으로 작품을 써 온 작가의 시각에선 이 하나의 현상에 이르기까지는 두 개의 인과율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하나의 인과율은 삼성이 권력의 도움을 받을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청탁을 계획 및 실행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움직여 주십시오. 그 대가로 수백억원을 지불하겠습니다.”
이것은 뇌물죄의 구성요건에 딱 맞아떨어지고 특검의 논리는 여기에 가깝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정치와 엮이면 피를 보고 만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한국 기업인들이 대통령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는 건 무리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주요 주총 안건에서 현 경영주의 의도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해 온 지배적 관행에 비춰 본다면 특검의 논리는 더욱 현실적 개연성이 떨어진다.
또 하나의 인과율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삼성에 먼저 생색을 낸 후 사후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로 모의한 것이다.
“삼성에 대해선 내가 늘 관심을 두고 있어요. 요즘 합병이 문제인 것 같던데 잘될 테니 걱정 말아요. 그런데 재단을 하나 만들고자 하니 협조해 주세요.”
청와대에 불려 간 기업이 삼성만이 아니고 롯데·SK 등 여럿인 걸 보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이런 기획하에 한국의 대표적 기업 총수들을 부른 게 확실해 보인다. 재계 7위의 국제상사도, 3위의 대우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증발해 버리고 마는 걸 똑똑히 봐 온 재벌 총수들은 달갑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부르면 독대를 피할 수 없고 면전에서 뭐든 요청을 받으면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간의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들은 두 개의 인과율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후자의 인과율을 적용해 이재용을 강요죄의 피해자로 본 검찰과 달리 특검은 전자의 인과율에 따라 이재용을 뇌물공여자로 본 것이다. 절대권력자인 대통령과 최순실이 자신들의 범죄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먼저 회사 현안에 부당한 개입을 하고 생색을 내면서 그 대가로 돈을 내놓으라고 한 걸 뇌물공여로 본 시각은 강요 내지 공갈의 피해자를 오히려 범죄자로 둔갑시키는 꼴이다.
특검의 말대로 ‘대통령과의 독대라는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뤄진 은폐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수도 있으나 법은 특검에 지금 이 순간 그 진실을 드러내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검은 웅변 대신 오로지 과학적 논리법칙과 경험칙, 그리고 치밀한 증거 수집을 통해 ‘디테일의 늪’을 무사히 건너 엄격한 입증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민의 눈은 이제 8월 25일의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이 법원에 바라는 건 단 하나뿐이다. 오직 진실을 가려내 판결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문재인 정권을 세운 촛불시민들 또한 법원이 무조건 특검의 손을 들어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일 시위를 하면서도 휴지 한 장 버리지 않았던 그 위대한 정의감이 오류의 판결 위에 세워진 성과를 반길 리 없기 때문이다.
이재용 뇌물 무죄가 나면 박근혜 뇌물 무죄이고 따라서 현 정권의 정통성이 타격을 받는다는 얘기도 선동적 괴담과 다름없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와 상관없이 이미 전방위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잃었고 문재인 정권은 우리 국민이 가장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해 합심해 세웠으니 그 정통성은 무엇으로부터도 도전받을 수 없다.
문제는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다. 이때 재판부는 오직 한길 무죄 추정의 원칙과 형사소송에 있어 유죄 판결은 공소 사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한다는 증거 재판의 원칙만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값비싼 시행착오와 역사적 굴곡을 거쳐 인류의 지성이 도달한 소중한 결론이다.
김진명 작가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이재용 재판 둘러싼 두 개의 인과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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