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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탈원전에 '올인'하느라...산업정책엔 손놓은 산업부


脫원전에 '올인' 하느라… 산업정책엔 손놓은 산업부

조선 빅3, 선박 수주 번번이 中에 빼앗기고
세계 1위였던 LCD 생산도 3위로 밀리는데…
'세계 1위 업종' 무너지는데 에너지 관련 업무만 일사천리
국가경쟁력 컨트롤타워 실종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에너지자원실장(1급) 1명을 전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달 중순 에너지 담당 주요 국·과장 인사에 이어 신임 실장까지 배치하면서 탈(脫)원전 정책을 담당하는 에너지 라인은 정비를 마쳤다. 지난달 22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특별 공동위원회 개최에 앞서 1급인 통상차관보와 무역투자실장을 새로 임명해 통상 쪽도 진용을 갖췄다. 하지만 신성장 동력 발굴을 책임지는 산업정책실장과 업종별 경쟁력 강화 방안을 수립하는 산업기반실장 인사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산업정책실장 자리는 3주째 비어 있다. 지난 1일 사표가 수리된 산업기반실장 후임도 결정되지 않았다. 같은 날 에너지자원실장의 사표도 수리됐지만 후임 인사가 당일 이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과 화학제품에 대해 집중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철강화학과장도 공석이다.


산업부가 탈원전 정책에 몰두하면서 '산업 정책'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고리 원전 1호기 퇴역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산업부가 언론사를 대상으로 배포한 자료 가운데 에너지 관련 내용이 40%로 가장 많았다. 산업 정책 관련은 그 절반 수준으로, 그나마 '북핵 실물경제 점검'과 같은 단편적인 내용 위주였다. 지난달 29일 산업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탈원전 정책 추진 방향과 보호무역주의 대응 방안이 담겼을 뿐 산업 정책은 빠졌다. 산업 정책의 틀을 짤 라인업은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았다.

전문가들은 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이 경쟁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산업 정책이 뒷전으로 밀리는 현재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산업부가 산업 정책의 컨트롤타워라는 본연의 임무를 내려놓고 탈원전 전위부대로 전락했다"며 "지금과 같은 산업정책 진공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프랑스 해운사 CMA CGM이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을 중국 조선소 2곳이 싹쓸이했다. 총 14억4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로, 수주전에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 '빅3'가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저가 선박뿐 아니라 초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마저 중국에 잠식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지난해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1위였던 한국이 올해는 중국은 물론 대만에도 밀려 3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주력 산업 곳곳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지만 산업부는 관련 대책회의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 공약에 따라 원전 비중을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확대하기 위한 대책 마련만 서두르고 있다.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던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탈원전·탈석탄으로 에너지 패러다임 대전환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백 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방문한 현장은 전력 시설이었고, 처음 설치한 TF(태스크포스)도 '에너지전환 국민소통 태스크포스'였다.

전직 산업부 출신의 한 인사는 "친기업 성향인 박근혜·이명박 정권은 물론, 진보 정권인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산업부는 정부 출범 후 앞다퉈 산업 정책을 발표했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17일만에 윤진식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5대 경제단체와 만나 신성장 동력 발굴과 기업 규제 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 활성화 7대 과제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어 4월 초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민관 전문가를 중심으로 차세대 성장산업 발굴 기획단을 구성해 차세대 성장엔진을 찾기 시작했다. 차세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 지금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산업이 당시 발굴한 것이다.

현 정부가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면서 대기업이 중심이 되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산업부 장관을 지냈던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산업 경쟁력 강화로 경제를 살리는 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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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8/20170908004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