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환자에 '미친' 이국종 10㎡ 방 안에는 다리미·군화·햇반…
중증외상환자에 '미친' 이국종의 일과를 쫓다
"헬기 응급 출동 요청이 들어왔습니다."(간호사)
"어디예요.서두르세요."(이국종 센터장)
21일 저녁 7시 30분 기자는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을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인터뷰 도중 도시락을 먹으려는 순간 비상 호출이 왔다. 서해안고속도로 9중 추돌사고 환자가 있는 충남 서산의 병원으로 가야 했다. 이 센터장은 안전모를 쓰고 항공 점퍼를 입었다. 등에는 'flight surgeon'(항공 수술 의사)이라고 씌어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미군 더스트오프, 오른쪽에는 경기소방본부 마크가 붙었다. 두 곳과 같이 일할 때가 많은데, 쉽게 식별하기 위해서다.(이 센터장은 15일 기자와 인터뷰에서 '동대문시장에서 점퍼를 1만2000원에 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뚝뚝한 이국종 센터장
23일 병사가 웃자 열흘만에 웃었다
북한 병사 묽은 미음 먹기 시작
이 센터장 "보람 느낀다"
병사 진료 와중에 수 차례 헬기 출동
도시락·햇반으로 저녁 때우고
셔츠·가운 빨아서 직접 다려 입고
간이침대에서 숙식하며 환자 돌봐
'아덴만 영웅' 석 선장과 통화에서
"선장님은 한 달 반 저를 괴롭히셨다.
귀순병사는 선장님에 비하면 껌"
이 센터장은 정확히 45분 후 두 명의 교통사고 환자를 외상센터로 이송해왔다. 소생실에서 응급처리를 한 후 수술이 진행됐다. 그는 "헬기가 아니면 이렇게 빨리 대처할 수 없다"며 "경기 소방헬기는 이렇게 밤에 잘 협조한다. 닥터헬기(의료 전용 헬기)는 왜 밤에 안 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 센터장은 9시가 넘어서야 도시락을 먹었다. 식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이 센터장이 웃은 이유는 또 있다. 북한 병사는 23일 처음으로 묽은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이날 세 끼를 먹었다. 그동안 물만 마셨다. 수술 받은 지 열흘 만이다. 24일까지 묽은 미음을 먹고 장폐색(장이 막히는 증세)이 생기지 않고 방귀가 잘 나오면 좀 진한 미음을 먹게 된다. 그다음에는 죽을 먹게 된다.
북한 병사는 두 개(영화·오락) TV 채널만 본다. 23일에는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씨가 나오는 예능 프로를 봤다. 이 센터장이 "영화를 왜 안 보냐"고 물었더니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답했다. 이 센터장은 23일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센터장의 공간에는 없는 게 없다. 10㎡(약 3평) 크기의 방에 가장 눈에 띄는 게 다리미다. 이 센터장은 거의 집에 가지 않는다. 와이셔츠·가운 등을 화장실에 설치한 소형세탁기에서 빨아서 건조대에서 말려 직접 다려 입는다. 책장 뒤편 창 쪽에 간이침대가 있다. 이 센터장은 "여기서 잘 만해요"라고 말한다. 겨울에는 창문 외풍이 심해서 추울 것처럼 보이는 데도 별문제 없다는 투다. 응급 출동용 안전모는 옷걸이에 거꾸로 걸려 있다. 이 센터장은 "이렇게 걸어야 땀이 밑으로 빠진다"고 설명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오디오를 사뒀는데, 2년간 연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석 선장 치료를 계기로 해군과 가까워졌다. 올 4월 해군참모총장에게서 명예해군 소령 임명장을 받았다. 그의 연구실에 해군 장교 정복을 입은 사진이 여러 개 걸려있다. 'Navy(해군)'를 새긴 모자가 여러 개 연구실에 걸려 있다. 이 센터장은 "명예해군인 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해군이 선물한 '지휘봉'도 비치돼 있다.
"선장님이 저를 한 달 반 괴롭히셨어요. 이번 환자(북한 귀순 병사)는 '껌'이죠."
"다른 의사들이 ‘별거 아닌 환자를 데려다 쇼한다’고 난리가 났어요. 선장님의 배 총구멍 사진을 공개해도 될까요. 환자 개인 정보(귀순 병사를 지칭) 공개한다고 비판하네요. 합참이랑 상의해서 하는 건데도 그래요. 머리 아파 죽겠어요. 북한 애(귀순 병사)가 좋아져서 다행입니다. 선장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요. 잘 처리할게요. 끝나면 한 번 내려가겠습니다."
15일 1차 인터뷰에서 "왜 집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센터장은 "제가 봐야 할 환자가 많아요. 북한 병사 말고도 돌봐야 할 외상센터 환자가 150명이나 돼요"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매일 나와 함께 일하는 300명의 동료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하루도 못 버틴다”고 말한다. 그는 15일 밤 기자와 병실을 돌면서 간호사들에게 "기자님께 얼마나 힘든지 말 좀 해줘요"라며 간호사들을 챙겼다.
수원=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중증외상환자에 '미친' 이국종 10㎡ 방 안에는 다리미·군화·햇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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