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착한 일 하면서 돈도 번다 … 도쿄 작은 백반집의 비밀
인터뷰 │ 공유의 밥상 내는 식당주인 고바야시 세카이
좌석 12개가 전부인 점심 밥집
메인 메뉴는 한 가지, 날마다 바꿔
첫 이용 900엔 다음부터 800엔
50분 알바하면 한 끼 식권
받은 사람이 식당 앞에 붙여놔
아무나 떼 오면 공짜로 밥 먹어
2년간 하루도 안 빼고 무료식권
상습 이용자도 있지만 제한 안 해
“사람을 믿는 것 말고 방법 있나요”
식당 이름에 ‘미래’ 붙인 까닭
남에게 손 안 벌리고 매일 착한 일
이런 곳 많이 생겼으면 하는 기대
맞추어 드립니다
고바야시 세카이 지음
이자영 옮김, 콤마
눈에 띄지 않는 책이었다. 252쪽이니 얇은 편이었고, 지은이도 출판사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목이 와 닿지 않았다.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대충 살펴보니 일본 도쿄(東京)에서 식당을 하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했다. 흔하고 뻔한 일본 맛집 책처럼 보였다. 그렇게 밀쳐냈으면, 그렇게 끝날 인연이었다.
어쩌다 책에 다시 손이 갔고, 한 번의 독서는 마지막 장까지 숨가쁘게 이어졌다. 그리고 끝내 도쿄로 가서 책을 쓴 지은이를, 아니 식당을 차린 주인을 만났다. 도쿄 헌책방 거리 빌딩 지하에서 점심밥 장사하는 고바야시 세카이(小林せかい·34)의 인터뷰는 그렇게 문득 시작됐다.
미래식당은 직장인이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는, 12개 카운터 좌석이 전부인 백반집이다. 메뉴는 한 가지뿐이고 매일 바뀐다. 메인 메뉴에 국과 밑반찬 3개가 곁들여진다. 가격은 900엔(약 9000원). 돈을 내면 100엔 쿠폰을 준다. 다음부터는 800엔으로 먹을 수 있다는 증표다. 그는 2015년 9월 식당을 열었고, 혼자 일한다.
미래식당에는 ‘한끼알바’라는 별난 시스템이 있다. 식당에서 50분 일하면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식권을 준다. ‘마카나이(賄い)’를 출판사에서 ‘한끼알바’라고 번역했다. 마카나이는 ‘종업원의 밥’이라는 뜻이다.
“식당 입장에서 말해볼까요? 900엔짜리 식사의 원가는 보통 300엔입니다. 그러니까 한끼알바는 300엔으로 50분짜리 인력을 사는 것과 같겠지요. 그렇다고 인건비를 절약하려고 한끼알바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한끼알바는 누군가와 관계를 잇는 일입니다.”
한끼알바를 하기 위한 조건은 하나다. 한 번 이상 손님으로 미래식당에 왔던 사람.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어서 고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손님이기도 하고 종업원이기도 한 애매한 존재다.
한끼알바생은 하루에 한두 명꼴이다. 주로 설거지나 청소를 한다. 혼자 식당을 꾸리는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손이다. 한끼알바생의 80%가 근처 직장인이다. 식당 일을 배우러 일부러 찾아온 사람도 있었고, 호기심 많은 중학생도 있었다. 청각장애인도 있었단다. 그는 젓가락을 봉투에 넣는 일을 했다.
미래식당을 찾아갔던 28일. 한끼알바는 피트니트센터에서 일하는 타무라 요코(田村陽子·38)였다. 원래는 50분만 하려고 했는데 손님이 많아서 100분 일했다고 했다.
“15번 이상 무료식권을 쓴 사람도 있어요. 젊은 여성 직장인이었어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줄까요? 무료식권을 사용한 사람 중에 한끼알바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세카이는 “무료식권을 상습적으로 사용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횟수를 제한할까 생각했다가 포기했다”며 “사람을 믿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고도 했다.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 자리의 성선설’이다. ‘최소한 미래식당에 있는 동안만은’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191쪽).’
한끼알바와 무료식권의 관계는 낯설다. 한끼알바로 얻은 식권을 포기한 사람과 무료식권으로 밥을 먹은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거래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마주칠 기회도 없다. 세카이는 “‘무료식권=900엔’이라는 공식은 틀렸다”고 강조했다. 그럼 무엇일까. 무료식권으로 밥을 먹을 때 ‘누군가가 나 대신에 돈을 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위해 50분을 일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 경제의 기본 원리가 미래식당에서는 작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전의 공동체가 떠오르기도 하고 종교적인 선행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래식당은 무료식권 서비스를 2016년 1월 시작했다. 그날 이후 무료식권이 한 장도 붙어 있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 노동으로 번 밥을 누군가에게 주는 행동을 세카이는 “아주 작은 착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흑자 경영학=책이 제목에서 강조하는 것은 ‘보통’이다. 보통과 관련한 미래식당의 서비스가 ‘맞춤반찬’이다. ‘아츠라에(あつらえ)’라고 한다. 메뉴가 하나뿐인 식당에서 손님이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다. 맞춤반찬 1개에 400엔이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을 먹고 싶다고 하면 달걀죽을 만들어 주는 식이다.
식당 입장에선 쓰다 남은 재료를 활용할 수도 있다. 손님 한 명에게 맞춘 요리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 꽃집이나 미용실에서는 흔한 서비스다. 무엇보다 세카이는 손님이 먹고 싶은 걸 해주는 식당을 꿈꿨다. 맞춤반찬은 미래식당을 열었을 때부터 시행한 서비스다. 서울에서 책을 읽고 도쿄까지 찾아온 손님에게는 어떤 맞춤반찬이 어울리겠느냐고 물었더니 “똑같은 반찬이 좋겠다”는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왔다.
책의 원제는 전혀 다르다. ‘밥을 공짜로 주는 식당이 흑자를 내는 이유’가 원래 제목이다. 실제로 미래식당은 흑자를 낸다. 홈페이지(miraishokudo.com)에 월별 현황을 꼬박꼬박 올리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래식당은 지난 10월 약 113만엔(약 113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약 90만엔(약 900만원)의 이익을 냈다. 미래식당은 식당 운영에 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한다.
하여 책은 일기처럼 써 내려 간 경제경영도서로 분류할 수 있다. 사업가가 성공 노하우를 풀어내듯이 미래식당의 모든 것을 들려준다. 그렇다고 대단한 비법을 일러주는 것은 아니다. 한끼알바를 하다가 생긴 일, 무료식권을 하는 이유 등을 차분히 설명한다.
사실 미래식당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이 흑자 경영이다.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쿄의 빌딩 지하 1층 12평(약 39㎡)짜리 식당에서 세카이는 매일 이 일을 한다.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 세카이가 정의한 미래식당의 본질이다. 그는 미래식당과 같은 곳이 더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이자, 밥집 이름에 ‘미래’를 붙인 까닭이다.
또 한 권의 가슴 훈훈한 책
『일해줘서 고마워요』(고마쓰 나루미 지음, 권혜미 옮김, 책이있는풍경)는 이 회사의 작동 원리를 지켜본 논픽션 작가의 르포다. 경영자는 물론 훌륭한 사람이다.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 회장은 “회사는 이익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세상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다가서는 ‘함께하는 사회’라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회’”라고 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경영자의 양심만으로 회사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 분필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업계 1위다. 장애인 직원이 생산라인의 100% 가까이 차지하는 것이 주요 비결이라고 한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
도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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