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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文교육정책 설계자 이범 "김상곤 이렇게 엉망일줄 몰랐다"


文교육정책 설계자 이범 "김상곤 이렇게 엉망일줄 몰랐다"

                                

 
[인터뷰]문재인 캠프의 교육정책 설계사,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현 정부 교육정책의 주요 밑그림을 그렸다. 2009년에는 곽노현·김상곤 등 진보교육감 당선을 도왔다. 그런 그가 "진보 교육이 반성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범 교육평론가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현 정부 교육정책의 주요 밑그림을 그렸다. 2009년에는 곽노현·김상곤 등 진보교육감 당선을 도왔다. 그런 그가 "진보 교육이 반성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최근 교육부 안팎에서는 "총체적 난국"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공 지지율을 까먹은 원흉은 교육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현정부 교육정책 설계한 이범 교육평론가

"진보, 도덕성 확신과 '정치 수단화'에 갇혀
교육정책은 신념 실현 아닌 사회 합의 중요"

"부동산 정책이 똘똘한 한 채로 내몰 듯
'똘똘한 스펙', 사교육 의존도 높아질 것"

실제 지난 5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문재인 정부 취임 1주년 분야별 평가 여론조사에서 교육정책은 최하위를 차지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20~30대의 교육정책 지지율 역시 30%에 그쳤다. 교육정책은 핵심 지지층을 등 돌리게했다는 점 외에 진보의 담론이 정책으로 뿌리내리는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짰던 이범 교육평론가(49)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진보 교육계 인사들이 입시를 우습게 여긴 결과”라고 일갈했다. 진보 교육의 탄생과 성공을 위해 뛰어온 그가 "지금은 진보 교육의 한계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며 쓴소리를 던졌다.
  
질의 :‘진보교육감 1세대’로 진보 교육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경질됐다.
응답 :“사실 (김 장관이) 이렇게까지 엉망일 줄 몰랐다. 김 장관의 한계는 입시에 대해 모른다는 거다. 입시가 별 것 아니라고 보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면 단번에 개선될 거라 생각했다. 입시정책이 시장과 국민 여론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검토가 없었다.”
 
질의 :대입 개편 결과가 잘못됐다고 보는 건가.
응답 :“개편의 순서·방법·방향성 중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대입 제도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쏠려있었다.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데다 학생에게 지나친 부담을 준다는 게 불만이었다. 그러면 학종을 먼저 손보는 게 맞다. 그런데 대뜸 수능을 걸고 넘어지니 여론이 확 나빠졌다. 결과적으로 수능도 학종도,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했다.”
 
질의 :수능과 학종을 어떻게 바꿨어야 했나.
응답 :“두 제도 모두 각각의 단점이 있다. 수능은 객관식이라 고교 교육을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논술형·절대평가로 변화해야 한다. 학종은 불공정성 시비와 함께 비교과에 대한 학생 부담이 지나치다는 비난을 받는다. 학생부 비교과 기재 항목 간소화로 이를 해결했어야 한다. 두 제도의 단점을 줄이는 게 합리적 개편인데 교육부는 둘 다 못했다.”
 
질의 :수능 절대평가는 변별력 문제가 제기됐다. 개편안에 학생부 간소화 방침으로 '경시대회 활용을 한 학기 당 1개로 제한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응답 :“변별에 문제가 있다면 등급제가 아닌 점수제 절대평가를 시행하면 된다.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점수제 절대평가로 변별의 문제를 해결한다. 또 학생부에 경시대회를 학기당 1개만 활용토록 한 건 간소화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에 비교해보자. 다주택 보유 규제를 하니 ‘똘똘한 한 채’에 집중되지 않나. 입시에선 '똘똘한 스펙' 1개에 집중하게 된다. 양보다 질이란 생각에 부담감은 절대 줄어들지 않을 거다.”
  
질의 :개편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혼란스러웠다. 공론화를 통해 여론 수렴한다며 1년을 끌었는데. 
응답 :“공론화를 누가 하자고 했나. 김상곤 장관 측이다. 이들은 수능 절대평가와 학종 확대를 지지했다. 여론을 수렴하면 반대파(수능 상대평가, 정시 확대 지지)를 잠재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공론화를 통해 뜻을 관철하려 한 거다. 이들 입장에선 엉뚱한 결과가 나온 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질의 :사교육 억제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
응답 :“그렇지 않다. 정시 비중이 높아지고 학생부 간소화도 안됐다. 수능의 EBS 반영 비율은 낮췄다. 사교육이 가장 극심한 과학고·영재학교 입시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내내 부동산 값 오르듯 사교육은 계속 올라갈 거다.” 
 
질의 :개악(改惡)이라는 얘긴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건가.
응답 :“진보측 인사들이 빠져 있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강한 확신, 둘째는 정치를 그 확신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질의 :어떻게 했어야 했나.
응답 :“정치적 과정이라는 게 뭔가. 나름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거다. 진보가 옳다고 믿는 신념 또한 정치 과정에서는 여러 이해관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입시 정책의 실마리도 정부·대학·공교육계 등이 모여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것부터 출발했어야 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치동 스타강사 출신이다. 당시 메가스터디그룹 손주은 회장에 이어 업계 매출 2위로 연봉 18억원을 기록했다. 사교육업계에서 은퇴한 뒤 서울교육청 정책보좌관,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등을 맡았다. 김상선 기자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치동 스타강사 출신이다. 당시 메가스터디그룹 손주은 회장에 이어 업계 매출 2위로 연봉 18억원을 기록했다. 사교육업계에서 은퇴한 뒤 서울교육청 정책보좌관,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등을 맡았다. 김상선 기자

 
질의 :입시 정책은 엉킨 실타래같다. 어디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찾아야 하나.
응답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긴 것부터 재고해야 한다. 고교 때까지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가르치고 평가했는데, 선발은 대학이 알아서 하는 게 합리적인가? 진보 교육계가 모델로 삼는 독일이나 스웨덴도 입시는 대학 자율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했다."
 
질의 :진보 교육감과 진보 정권 탄생을 위해 뛰어왔다. 진보 교육을 비판하는 게 부담스러울 텐데.
응답 :“최초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게 2009년이다. 이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가 보수에게 밀린 적이 없다. 교육감으로서 지지를 받는 세력이 국가 정책을 맡으면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시점이 됐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 교육이 뭔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책을 쓰고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누구
1969년생. 경기과학고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분자생물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 과학사·과학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석사과정 재학 중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수능 과학탐구 전 과목에서 독보적인 '1타 강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스타강사로 활동하던 시기 연봉 18억원으로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에 이어 국내 학원 강사 총수입 2위였다. 메가스터디 창립멤버이며 기획이사를 역임했다. 2003년 메가스터디 퇴사 이후 교육평론가로 저술과 강연에 주력했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어 진보성향의 곽노현·김상곤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이후 서울교육청 정책보좌관을 거쳐 2014~16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맡았다. 지난 4월부터 MBC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을 진행하고 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