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귀국을 거부했던 조선 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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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1부장
“은퇴한 OB들을 중국 경쟁기업이 고문으로 모셔갑니다. 이들은 한 달에 2주는 중국에서, 2주는 한국에서 일합니다. 한국에서 데리고 있던 후배들을 불러내 밥 사주고 술 사주며 최근 동향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걸 중국에 가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거죠. 중국 기업 입장에선 매년 100억 원씩 5년 투자해야 따라잡을 기술을 50억 원 주고 1년 만에 해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남는 장사죠.”제조기업 임원 A 씨가 전한 어느 한국 대표산업 OB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머릿속 지식을 옮겨 줄 뿐,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나 복사지, e메일이 오가는 게 아니니 불법도 아니다. A 씨는 “법으로 민간 기업의 전·현직 간 만남을 무조건 막을 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중국 기업을 욕하기에도 겸연쩍은 면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옛날 한국도 일본의 선진 기술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때 일본 기술자들 사이에 ‘문라이트 비즈니스(moonlight business)’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금요일 밤에 한국에 살짝 들어와 기술을 전수한 뒤 사례를 받고 돌아간다는 의미다. 한국에선 이를 원예에 빗대어 ‘접붙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본이 한국에 기술을 따라잡힌 건 아니다.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스마트폰 등 한국 주력 수출 품목은 여전히 일본에 핵심 부품과 장비를 의존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빠른 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무엇보다 부품소재 등 원천기술의 폭과 깊이가 워낙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도 반에서 10등 정도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만, 그보다 상위 순위로 점프하기는 간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엊그제 중국을 방문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극진히 환대했다. 미국의 통상압박에 시달리는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중국은 영토 분쟁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한국 대하듯 막 대한 적이 없다. 일본의 기술력과 소재부품에 대한 의존도 때문이다.
최근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외환위기 때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해졌다는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의 추격 속도를 감안하면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기본으로 돌아가 한국의 기술 축적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때다.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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