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나라가 뒤로 간다
입력 2019.03.27 03:17
現 정부, 적폐에 친일 프레임까지 과거 지향 넘어 '퇴행 수준'
대통령 특정 사건 재수사 지시… 독재 시절 프로파간다 연상
근대화·민주주의 이뤄놨는데 다시 '비문명'으로 뒷걸음치나
"재판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는 문명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항소심 판사가 대명천지에 '문명국가 선언'을 했다. 지난 19일 김경수 경남도지사 항소심 공판 머리에 서울 고법형사 2부 차문호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길게 A4 석 장 분량으로 준비한 입장문은 흡사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재판부의 문명국 사법부임과 판사의 자주민임을 선포하노라…'같은 독립선언문처럼 들렸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상식이 위협받고 의심받는 사회에서 아직 사법부가 건재함을 천명하는 선언이었다.
"무릇 재판이란…" 차문호 판사는 이어지는 단락에서 초등생도 알아듣도록 '재판은 운동경기, 법정은 경기장, 검사와 피고인은 운동선수, 법관은 심판'이라는 비유를 들며 "마치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이 골대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보기도 전에 심판을 핑계 삼아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강조했다. "피고인이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고, 문명국가에서 일어나서도 아니 될 일이며, 재판부 판사를 모욕하고,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며, 재판의 본질을 무시하고, 사법제도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항소심 판사의 문명국가 선언은 1심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에게 여권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맹공을 퍼부은 '비문명적 상황'을 염두에 둔 반응이다. 차문호 판사는 (그런 비문명을) "그간 재판을 해오는 과정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 정부가 적폐 청산에서 친일 프레임까지 온통 과거에 매달려 나라를 돌보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지향성이 아니라 퇴행성이라는 것을, 판사의 문명국 선언은 웅변하고 있었다. 마치 첨단 의학을 놔두고 민간요법에 골몰하거나, 아파트를 지어놓고 동굴에 들어가서 사는 것처럼 나라가, 생각이, 문화가, 거꾸로 거꾸로 퇴보하고 있다. 문제는 좌도 우도 아닌, 전진이냐 후진이냐였던 것이다.
상상 속 문명국가는 법과 정치와 언론이 고도로 발달한 세련된 나라다. 맘에 안 든다고 막말을 일삼고, 입장이 다르다고 남이 이룬 공(功)을 깨부수며, 힘깨나 있다고 법 위에 군림하는 건 야만적이다. 최근 목도한 가장 비문명적 사건은 대통령을 '북한의 대변인'이라고 표현한 외신 보도를 여당 대변인이 공식 비판하고, 그걸 지적하는 국내외 반응에도 다시 '정당의 언론자유' 운운하며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 외신 기자는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일"이라고 평했다. 민주화를 했다는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이 여독도 풀리기 전에 과거 사건 (그것도 주로 섹스스캔들과 관련된) 몇 개를 콕 집어서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은 독재 시절 프로파간다의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이런 지시를 받은 검찰이 '오등은 자에 아 검찰의 문명국 검찰임을 선포'하는 날은 언제나 올까. 그 와중에 민의를 대변한다는 의회는 특권 지키기와 의석수 셈법으로 연일 난타전이다. 문명국 의회는 겸손하고 검소하다. 우리 의회는 언제나 문명국 의회의 품격을 갖추게 될까.
권력의 '수평이동'이라면 양반이다. 그들에게야 사활을 건 게임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크게 잃거나 얻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상하이동'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까스로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이뤄놓은 아름다운 이 땅이 정상(正常) 국가로서 정상(頂上)을 향해 발돋움해야 할 때에 자유도, 민주도, 인권도, 삼권분립도, 모두 '비문명' 수준으로 뒷걸음질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문명은 비문명을 선도해야 함에도 지금 정부는 오히려 비문명에 휘둘리며, 고립된 평화와 낡은 민족주의에 붙들려 나라가 뒤로 가는 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도 원하는 적폐 청산을 하고 싶으면 먼저 문명 정부로 거듭날 일이다.
100년 전 기미독립선언문 은 "과거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라고 했다. 그렇게 벅차게 맞이한 새 문명이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현안(懸案)이다. 그래서 판사의 문명국 선언이 개명한 인류의 소리를 들은 듯 반가우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게 된 작금의 상황이 비감(悲感)하기가 짝이 없다.
항소심 판사가 대명천지에 '문명국가 선언'을 했다. 지난 19일 김경수 경남도지사 항소심 공판 머리에 서울 고법형사 2부 차문호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길게 A4 석 장 분량으로 준비한 입장문은 흡사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재판부의 문명국 사법부임과 판사의 자주민임을 선포하노라…'같은 독립선언문처럼 들렸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상식이 위협받고 의심받는 사회에서 아직 사법부가 건재함을 천명하는 선언이었다.
"무릇 재판이란…" 차문호 판사는 이어지는 단락에서 초등생도 알아듣도록 '재판은 운동경기, 법정은 경기장, 검사와 피고인은 운동선수, 법관은 심판'이라는 비유를 들며 "마치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이 골대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보기도 전에 심판을 핑계 삼아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강조했다. "피고인이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고, 문명국가에서 일어나서도 아니 될 일이며, 재판부 판사를 모욕하고,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며, 재판의 본질을 무시하고, 사법제도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항소심 판사의 문명국가 선언은 1심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에게 여권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맹공을 퍼부은 '비문명적 상황'을 염두에 둔 반응이다. 차문호 판사는 (그런 비문명을) "그간 재판을 해오는 과정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 정부가 적폐 청산에서 친일 프레임까지 온통 과거에 매달려 나라를 돌보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지향성이 아니라 퇴행성이라는 것을, 판사의 문명국 선언은 웅변하고 있었다. 마치 첨단 의학을 놔두고 민간요법에 골몰하거나, 아파트를 지어놓고 동굴에 들어가서 사는 것처럼 나라가, 생각이, 문화가, 거꾸로 거꾸로 퇴보하고 있다. 문제는 좌도 우도 아닌, 전진이냐 후진이냐였던 것이다.
상상 속 문명국가는 법과 정치와 언론이 고도로 발달한 세련된 나라다. 맘에 안 든다고 막말을 일삼고, 입장이 다르다고 남이 이룬 공(功)을 깨부수며, 힘깨나 있다고 법 위에 군림하는 건 야만적이다. 최근 목도한 가장 비문명적 사건은 대통령을 '북한의 대변인'이라고 표현한 외신 보도를 여당 대변인이 공식 비판하고, 그걸 지적하는 국내외 반응에도 다시 '정당의 언론자유' 운운하며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 외신 기자는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일"이라고 평했다. 민주화를 했다는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이 여독도 풀리기 전에 과거 사건 (그것도 주로 섹스스캔들과 관련된) 몇 개를 콕 집어서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은 독재 시절 프로파간다의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이런 지시를 받은 검찰이 '오등은 자에 아 검찰의 문명국 검찰임을 선포'하는 날은 언제나 올까. 그 와중에 민의를 대변한다는 의회는 특권 지키기와 의석수 셈법으로 연일 난타전이다. 문명국 의회는 겸손하고 검소하다. 우리 의회는 언제나 문명국 의회의 품격을 갖추게 될까.
권력의 '수평이동'이라면 양반이다. 그들에게야 사활을 건 게임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크게 잃거나 얻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상하이동'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까스로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이뤄놓은 아름다운 이 땅이 정상(正常) 국가로서 정상(頂上)을 향해 발돋움해야 할 때에 자유도, 민주도, 인권도, 삼권분립도, 모두 '비문명' 수준으로 뒷걸음질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문명은 비문명을 선도해야 함에도 지금 정부는 오히려 비문명에 휘둘리며, 고립된 평화와 낡은 민족주의에 붙들려 나라가 뒤로 가는 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도 원하는 적폐 청산을 하고 싶으면 먼저 문명 정부로 거듭날 일이다.
100년 전 기미독립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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