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LG'후' 바르는 펑리위안, 그 뒤엔 구본무의 진심 있었다



    LG '후' 바르는 펑리위안, 그 뒤엔 구본무의 진심 있었다

    입력 2019.05.20 03:00

    [Close-up] 떠난지 1년… 세상이 몰랐던 감동 경영

    "'후(后)'와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부인)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에서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던 '후'와 인연을 만들고, 펑 여사를 감동시킨 건 구본무 회장님이었습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1주기(5월 20일)를 나흘 앞둔 지난 16일, LG그룹의 한 고위 인사는 뜻밖에 '후'와 구 전 회장에 얽힌 일화를 회고했다. 지난해 매출 6조7500억원에 1조원 영업이익을 돌파하며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LG생활건강 호실적의 바탕에는, 중국에서 승승장구하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 '후'가 있다. 그 '후'의 대성공 이면에는 구 전 회장의 중국 최고위층에 대한 '고객 감동 경영'이 있었다는 것이다.

    '후'와 펑리위안의 인연

    '후'가 지난해 크게 주목받은 건 펑리위안 여사가 애용한다는 보도가 나온 게 기폭제가 됐다. 펑 여사가 정말 '후'를 사용할까 하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펑 여사는 '즐겨 쓰는 한국 제품이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후'를 거명했다. '궁중'과 '왕후의 삶'을 브랜드 이미지로 내세우는 '후'와, 중국 주석 부인의 이미지가 어울리며 상승 작용을 하기에 충분했다.

    2014년 7월 구본무 당시 LG 회장이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 LG 전시관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 주석 왼쪽에 보이는 여성이 펑리위안 여사다.
    2014년 7월 구본무 당시 LG 회장이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 LG 전시관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 주석 왼쪽에 보이는 여성이 펑리위안 여사다. /LG
    시 주석이 중국 저장성(浙江省) 당 서기였던 지난 2005년, 저장성 항저우(杭州) LG생활건강 공장으로 당 서기실의 전화가 걸려왔다. 10명 정도의 방문단이 한국에 갈 예정이니 방문할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LG생활건강 중국공장으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은 구본무 회장은 "프로그램은 우리가 짜서 잘 모실 테니 그냥 오시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구 회장은 그해 7월 방한한 저장성 방문단을 직접 안내해 갖가지 산업시설을 견학시키고 한국 문화를 체험케 했다. 그리고 국내 출시 2년밖에 안 돼 중국에 진출하지도 못했던 '후'의 최고급 화장품 세트를 시 주석을 비롯, 중국으로 돌아가는 방문단에 선물했다. 선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손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지시로 시 주석이 '후' 브랜드를 잊을 만하면 선물세트를 보냈다. 펑 여사는 자연스럽게 '후'를 사용하는 최고위급 고객이 됐다. 2006년 '후'는 중국에 진출해 상하이 바바이반(八百伴)·주광(久光), 베이징 SKP 등 최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지금은 206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유력 브랜드로 성장했다.

    중국에서 '후'의 성공은 철저한 고급화 전략과 VIP 마케팅을 통한 것이었다. VIP 고객을 초청해 'K뷰티'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상위 5% 고객을 공략했다. 2017년에는 베이징의 최고급 호텔인 포시즌스에서 '궁중 연향 인(in) 베이징' 행사를 열어 '후'의 최고급 라인인 '비첩'을 홍보했다. '신비로운 브랜드' 스토리를 구축하는 전략이었다.

    구본무 전 회장 일러스트
    /일러스트=김성규
    2016년 '후'가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돌파하자 이듬해 초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을 찾아갔다. 두둑한 성과급을 받은 차 부회장은 성과급 봉투를 구 회장에게 내밀며 "이건 회장님 것입니다"라고 했다. 구 회장의 'VIP 마케팅·고객감동경영'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뜻이었다. 구 회장은 껄껄 웃으며 봉투를 물렸다.

    LG그룹의 또 다른 고위 임원은 소탈했던 구본무 회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사업 파트너인 한 외국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했을 때 구 회장은 식당에서 저녁 대접을 한 후, 굳이 자택으로 가자고 했다 한다.

    구 회장 가족들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 외국 손님과 함께 들이닥친 구 회장을 보고 놀랐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구 회장은 그 외국 회사 최고경영자를 향해 "아일랜드 출신이시니 '오 대니보이'를 불러드리겠다"며 집에 있던 간이 노래방 마이크를 잡았고,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불렀다. 감동한 그 외국 회사 CEO는 그때의 기억을 거래처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회장님'

    격식을 차리지 않고,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구본무 회장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두고두고 회자(膾炙)되고 있다. 공식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에도 수행원 한 명만 대동했고, 휴일 개인 업무를 볼 때는 아예 수행원이 없었다.

    LG생활건강이 지난달 출시한 ‘후 환유 국빈세트’. LG생활건강 측은 “고귀한 품격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이 지난달 출시한 ‘후 환유 국빈세트’. LG생활건강 측은 “고귀한 품격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

    직원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렸다. 이른바 '을(乙)'을 만날 때에도 정해진 약속 시간을 꼭 지키고, 대화를 할 때에도 자신이 나서서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주로 듣는 쪽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한다. 지난해 5월 22일 구 회장의 발인은 고인의 뜻에 따라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가족들만 모인 채 화장(火葬)으로 치렀다. "다른 분들 귀찮게 하지 말고 장례는 검소하고 조용히 치러달라"는 고인의 마지막 당부에 따른 것이었다. 화장한 뒤 유해는 생전에 자신이 가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화담숲의 나무뿌리 옆에 수목장(樹木葬)으로 묻혔다. 재계 총수로는 이례적인 수목장이었다.

    구 회장은 평소 사회 각지에 있는 의인들에게 표창이나 상금을 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유족들은 지난해 말 구 회장의 유지에 따라 LG복지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상록재단 등에 50억원을 기부했다. LG그룹은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나 LG복지재단 이사회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기부 사실이 알려졌다.

    LG의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구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장남 구광모 회장은 아버지가 쓰던 집무실을 지금껏 비워뒀다가 1주기를 앞둔 최근에야 방을 옮겼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0/20190520001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