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8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 이후 추 장관은 대통령 재가를 받아 이날 오후 7시30분쯤 검찰 간부 인사를 전격 발표했다. 조국 일가 비리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오른쪽) 검찰총장의 측근이 대거 좌천됐다. [뉴스1,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일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 대해 ‘윤석열 패싱’과 ‘항명’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법무부 장관을 맡았던 박상기 장관 때도 사전에 검찰총장과 협의를 했었다는 내용이 10일 확인됐다. 전임 검찰총장 등 복수의 검찰 간부들은 “어떤 형태로든 총장과 장관은 사전에 의사소통을 한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당‧정은 일제히 항명으로 몰아세우고 윤 총장에 대한 감찰도 검토하고 있다. 통상 검사장 인사 절차 전 법무부가 검찰총장에게 통보하는 내용은 크게 2가지라고 한다. ➀인사 대상자들의 복무평가와 ➁인사에 대한 개략적인 구도다. 이 복무평가는 검사의 인적사항부터 지금껏 거쳐 온 부서 등을 정리한 보직 관리, 동기 및 선후배들의 평가가 총망라된 인사 자료로 이른바 ‘블루북’(bluebook)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개략적인 구도는 청와대에서 직접 총장에게 귀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러스트=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장관과 총장의 독대 절차도 있다. 보안상의 문제로 법무부 검찰국장이나 대검 차장 등 참모진을 대동하지 않고 단둘이서만 법무부나 대검이 아닌 외부의 장소에서 만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는 이런 절차가 통째로 생략된 채 이뤄졌다. 개략적인 구도를 상의하기는커녕 승진 대상 기수인 사법연수원 26~27기의 ‘블루북’도 오가지 않았다고 한다. 법무부와 검찰의 팽팽한 힘겨루기 끝에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만남 역시 불발됐다. 윤 총장이 의견 청취를 위해 법무부로 오라고 한 추 장관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윤 총장이 명을 거역했다”고 발언한 추 장관을 비롯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항명’을, 윤 총장을 비롯한 검찰에서는 ‘윤석열 패싱’ 인사임을 지적하며 맞선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관계자들은 검사장 인사에서 사전에 이런 내용이 오가는 것은 ‘전례’나 ‘관행’을 넘은 일종의 ‘법칙’에 가까웠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문무일 검찰총장(오른쪽) [뉴스1, 연합뉴스]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인 박상기 장관 때 있었던 검사장 인사에서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한다. ‘블루북’이 갔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때 첫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강금실 전 장관 때도 송광수 검찰총장에게 적어도 수일 전에는 인사안이 통보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사에 관한 사전 교류가 없는 만남이 불발된 것에 대해 “듣는다는 ‘쇼’를 한 것이지, 실제 내용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특히 총장의 참모진인 대검 간부에 대한 인사가 총장의 의견 반영 없이 단행되는 경우는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총장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도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다. 독재국가에서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적었다. 검찰 안팎의 비판도 매섭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기준도 모르고 범위도 모르는데 어떤 총장도 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며 “일부러 총장에게 모멸감을 줘 항명처럼 보이도록 (법무부가) 유도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법무부 근무 경험 있는 현직 검사는 “사실상 (총장에게) 입 없이 밥을 먹으라는 인사”라고 꼬집었다. 전직 검사장은 “어떤 총장이 팔다리를 다 자르는 데 동의하겠냐”며 “도저히 협의가 안 될 것 같으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라고 평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통화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여당과 정부는 일제히 윤 총장을 비판했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가 검찰 반발에 대한 조치를 지시하면서 윤 총장에 대한 감찰 착수 가능성도 거론됐다. 심지어 추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무부 간부에게 “지휘감독 권한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놓길 바랍니다”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의견 제출 요청에 불응한 것이 검찰 사무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감찰 관련 근무 경험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감찰 및 징계 사유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형식상으론 가능하지만 실제로 이뤄지면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민·김민상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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