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민주주의의 희망 짓밟는 ‘퇴행 정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1-03-12 03:00수정 2021-03-12 03:45
법관 탄핵 검찰총장 내몰 법 만드는 정권
권력 위해 反민주적 정치도 서슴지 않아
무너진 도덕질서 회복이 우리 사회 최대과제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짧은 기간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발돋움했다. 대부분의 신생국가나 후진국이 겪는 독재정치와 군사정권을 거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법치국가로 탈바꿈했다. 민주국가를 위한 기반이 정착된 셈이다. 이런 경제 정치적 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3·1운동부터 지금까지 지속해 온 교육의 혜택이었다. 교육의 양적 수준에서는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명실공히 일본과 함께 아시아 선진국가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서는 현 수준에서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락하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디서 주어졌는가. 문재인 정권 4년간의 결과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권 기간에 국민의 인간적 삶의 가치와 인권이 훼손되었고 정신적 사회질서까지 상실해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는 문재인 정권을 위해 존재하지, 국민을 섬기는 정부로는 보이지 않는다.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청와대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대통령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정권을 위한 국민이지, 국민을 위한 정부의 의무는 점차 배제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있으나, 국민을 위한 정부는 없어졌다는 여론이다. 정권 지상의 진영논리에 빠져든 것이다.
문재인 정권만큼 분열과 대립을 넘어 투쟁 일변도의 사회상을 만든 정부는 없었다. 처음부터 촛불혁명, 적폐청산, 과거와 단절된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운 나라’, 그런 이해하기 힘든 개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고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며 통합의 정치를 최고의 정치과제로 선언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의 정치적 선언이나 발언은 누구도 믿기 힘들어졌다. 현실이 보여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우리 총장’이라고 앞세웠던 윤석열이 조국 사태와 청와대를 포함한 현 정권의 비리와 위법을 법에 따라 수사한다고 해서 추방한 실세들이 누구인가. 청와대와 여당 중진들이다. 그 절차와 수단도 법치국가로서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그 사건을 치르면서 국민들은 현 정부의 자기모순과 무능을 체감했다. 최근에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 실세들은 물론 대통령까지 현장을 찾아가 가덕도 공항 추진을 위한 정권적 공세를 과시했다. 대통령은 주무 부처의 우려스러운 의견까지 억제했을 정도였다. 그런 사태는 무엇을 뜻하는가. 지역이기주의가 국가적 애국심보다 우위일 수 있다는 반민주정책을 선언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산시민과 국민 모두가 그런 사고와 가치관을 가져도 되는가, 묻고 싶다. 정권을 위해서는 민주정치를 위배해도 된다는 전례가 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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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의 사상과 처신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도 극에 달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직속 판사가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도록 길을 열어주고 기다렸다면 그것은 법치국가의 존립을 스스로 폐기하는 처사다. 그 사건에 관한 사과성명이 또 거짓말이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그를 누가 추대했는지 묻게 된다. 국민들의 자율적이면서 정의로운 삶과 가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존재 가치를 누가 포기하고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리더들과 친문 실세들의 발언과 주장을 보면 민주주의로 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과 같은 유일 절대의 정당정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법부 법관을 탄핵할 수 있고,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또 하나의 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정권은 민주국가에서는 버림받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인권과 생존 가치까지 존폐의 기로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정치계와 사회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 있는가. 앞으로는 자유와 인간애의 질서까지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지성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신적 질서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은 민생 문제보다 붕괴되어 가는 반도덕적 사회질서가 더 시급한 과제로 증대해 가는 실정이다. 그것도 정치 사회의 지도층에서 서민까지.
그렇다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정신적 기반이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 좋은 미래를 창건할 신념과 진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국민들의 신념과 선택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정권이 아니고 국민이다. 우리 모두의 자유와 인간애를 위한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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