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구가 보약’… 말 상대 많은 할아버지 고혈압 덜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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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지 기자
인천시 강화군의 한 마을에서 60년 넘게 살아온 이모(88) 할머니는 고민이 있으면 늘 남편 송모(91) 할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노부부는 오후가 되면 경로당에 간다. 거기엔 이 할머니의 단짝 친구인 ‘약방 아줌마’ 이모(81) 할머니가 있다. 예전에 약방을 운영했던 이 할머니를 지금도 약방 아줌마라고 부른다. 연말연시에도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 지냈다. 안방에는 3~4명의 할머니가 귤을 까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또 한 무리는 구석에서 점당 10원짜리 ‘고스톱’ 게임을 했다. 묵묵히 TV 화면만 보거나 안마의자에 앉아 휴식 중인 노인들도 있었다.
30평 남짓인 경로당 풍경에서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 연구팀은 ‘관계망’을 파악했다. 지난해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어떤 커뮤니티 안에 속해 있는지를 관찰했다. 인간관계와 신체 건강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서다.
앞서 연구팀은 이 마을의 이웃 마을 노인 814명의 관계망을 6년여 동안 추적해 지난해 7월 노인들의 관계망과 고혈압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60세 이상 주민 중 고혈압을 앓고 있는 이는 총 394명.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들에게 ‘고민이 있을 때 자주 이야기하는 지인’을 최대 6명(배우자 포함)까지 꼽게 했다. 그리고 음주·흡연·당뇨 등 혈압에 영향을 미칠 외부 요인을 동일한 조건으로 설정한 뒤 이들이 꼽은 지인 수와 혈압을 비교했다.
그 결과 친한 지인이 최대 6명에 가까운 할아버지들이 고혈압을 앓는 사례가 적었다.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1명 더 많은 이들은 고혈압 유병률이 4분의 3 수준으로 줄었다. 스스로 고혈압을 인지해 관리하는 경우도 친구가 1명이라도 더 많은 노인들이 1.9배 많았다.
할머니들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친목 집단’에 속해 있을 경우 고혈압을 더 많이(1.72배) 인지·관리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할아버지들은 친구가 많을수록, 할머니들은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할수록 혈압 관리에 더 신경을 기울였다. 이런 관계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자존감을 높이면서 건강에도 관심을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어린이 뇌발달에도 사회관계 영향
관계망의 영향은 어린이들에게도 나타난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경기 시흥초 학생 28명을 대상으로 네 달간 매주 한 시간씩 정상 수업 대신 놀이 공간에서 친구들과 놀게 했다. 이후 뇌파 검사에서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알파파 파워의 평균값이 높아졌다. 실험 전 좌뇌 전두엽 23.09, 우뇌 전두엽 24.93에서 각각 30.56, 30.71로 늘었다. ‘학교생활’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사회성 조사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표정 없이 책상에 줄 맞춰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던 학생들이 실험 후에 친구들과 손잡고 노는 그림을 그렸다. 염 교수팀 연구처럼 관계망이 정신과 신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는 많다. 스웨덴 스톡홀름 노인학 연구센터는 2000년 노인들의 치매 유병률이 혼자 살거나 친구가 없을수록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가 많아지면 혈압도 같이 높아진다. 원만한 인간관계가 주는 공감·연대 등의 감정이 스트레스 완화와 함께 신체 건강을 가져온다는 건 당연한 명제다”고 말했다. 염유식 교수는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친구 등을 통해 ‘난 건강하게 살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연세대팀, 강화도 마을 노인 814명
인간관계망 6년여간 추적 분석
남성은 고민 나눌 친구 많으면
고혈압 확률 4분의 3으로 줄어
여성, 잘 아는 친목집단 소속 때
고혈압 관리 가능성 1.72배 높아
그 결과 친한 지인이 최대 6명에 가까운 할아버지들이 고혈압을 앓는 사례가 적었다.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1명 더 많은 이들은 고혈압 유병률이 4분의 3 수준으로 줄었다. 스스로 고혈압을 인지해 관리하는 경우도 친구가 1명이라도 더 많은 노인들이 1.9배 많았다.
할머니들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친목 집단’에 속해 있을 경우 고혈압을 더 많이(1.72배) 인지·관리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할아버지들은 친구가 많을수록, 할머니들은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할수록 혈압 관리에 더 신경을 기울였다. 이런 관계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자존감을 높이면서 건강에도 관심을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어린이 뇌발달에도 사회관계 영향
관계망의 영향은 어린이들에게도 나타난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경기 시흥초 학생 28명을 대상으로 네 달간 매주 한 시간씩 정상 수업 대신 놀이 공간에서 친구들과 놀게 했다. 이후 뇌파 검사에서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알파파 파워의 평균값이 높아졌다. 실험 전 좌뇌 전두엽 23.09, 우뇌 전두엽 24.93에서 각각 30.56, 30.71로 늘었다. ‘학교생활’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사회성 조사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표정 없이 책상에 줄 맞춰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던 학생들이 실험 후에 친구들과 손잡고 노는 그림을 그렸다. 염 교수팀 연구처럼 관계망이 정신과 신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는 많다. 스웨덴 스톡홀름 노인학 연구센터는 2000년 노인들의 치매 유병률이 혼자 살거나 친구가 없을수록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가 많아지면 혈압도 같이 높아진다. 원만한 인간관계가 주는 공감·연대 등의 감정이 스트레스 완화와 함께 신체 건강을 가져온다는 건 당연한 명제다”고 말했다. 염유식 교수는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친구 등을 통해 ‘난 건강하게 살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단독] ‘친구가 보약’… 말 상대 많은 할아버지 고혈압 덜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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