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삼성전자 주가에 숨겨진 불길한 징조
경영권 방어와 생존 차원에서
외국인 입맛에 맞춰 자사주 매입
청와대, 코스피 급등 자랑보다
투자와 일자리 위축 걱정해야
문 대통령과 경제참모들은 사상 최고치의 코스피를 대표적인 청신호로 자랑한다. 그리고 코스피 급등의 주역은 단연 삼성전자다. 110만원이던 주가가 1년 반 만에 270만원대로 껑충 뛰었다. 그것도 갤럭시노트7 리콜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등 대형 악재를 뚫고 일궈낸 기록이다. 물론 최대 공신은 반도체 수퍼 호황이다. 하지만 눈여겨볼 대목은 예전의 삼성전자 주가 움직임과 정반대인 물밑 흐름이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 외국인들이 순매수해야 주가가 올랐다. 이번에는 외국인들이 1년간 삼성전자를 4조4000억원 넘게 팔아치웠는데도 주가가 150% 폭등했다. 그 숨겨진 비밀은 10조원에 이르는 자사주 매입이다. 지난해 당기순이익(22조원)의 거의 절반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에 쏟아부었다.
얼마 전까지 삼성의 최대 화두는 ‘초(超)격차’였다. 과감한 선제투자와 압도적 기술력으로 2등과 차이를 벌려 나가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요즘 키워드는 온통 자사주 매입·소각이다. 단순한 ‘주주환원정책’을 넘어 내년에는 20조원이나 쏟아부을 태세다. 삼성이 기를 쓰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배경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깔려 있다. 그동안 삼성에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들은 든든한 언덕이었다. 엘리엇 파동 때처럼 중대한 고비마다 백기사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마저 언제든지 반(反)삼성으로 돌아설 분위기다. 삼성은 이제 경영권 방어와 생존 차원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입맛에 맞춰 자사주 매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삼성전자가 눈에 불을 켜고 외국인 CEO를 물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년까지 반드시 사외이사에는 외국인과 여성을 넣겠다는 입장이다. 겉으로는 경영 투명성 제고가 목표지만, 내부적으로 두 가지의 기대심리가 깔려 있다. 일단 외국인 경영자들이 버티면 해외 헤지 펀드들이 마음대로 덤비지 못할 것으로 본다. 국내의 정치권과 정부 역시 예전처럼 함부로 외국인 경영자에게 접근하기 어려워 제2의 최순실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얼마 전 삼성의 사소한(?) 저항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삼성은 해마다 1000억원 정도의 온누리상품권을 사들였다. 내수 부양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사회 공헌사업이었다. 하지만 지난 추석 때 처음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사지 않았다. 공식 입장은 “최순실 사태로 예전처럼 전경련 등 경제단체가 상품권 구입을 요청해 오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내부적으론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 공헌을 해왔는데도 전혀 알아주지 않고 비난만 받았다”며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삼성의 자사주 매입과 외국 경영자 영입 움직임도 이런 ‘한국 피로증’ 때문인지 모른다.
삼성이 내년에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투입할 20조원은 문 대통령이 5년간 81만 개의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비용과 맞먹는다. 예전 같으면 설비투자와 양질의 일자리에 쓰였을 종잣돈이 엉뚱하게 허비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삼성 따라 하기도 신경이 쓰인다. 시차를 두고 다른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려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가 코스피 급등에 환호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는 느낌이다. 과도한 자사주 매입·소각은 외국인들의 잔치판일 뿐이다. 치솟는 삼성전자 주가 뒤에 어른거리는 투자 위축과 일자리 축소의 불길한 징조를 읽어내야 한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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