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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윤석열의 눈 없는 칼

[오늘과 내일/이명건]윤석열의 눈 없는 칼

이명건 사회부장 입력 2017-11-08 03:00수정 2017-11-0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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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윤석열 밑에서 잘 해먹어라!”

7일 0시 20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전날 투신해 숨진 변창훈 검사의 아내가 빈소 접객실의 검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다. 30여 명의 검사 중 누구도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자리를 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칼잡이’로 불린다. 수사를 깔끔하게 잘한다는 의미다. 2013년 윤 지검장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으로 임명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그를 “대단한 법률 전문가이면서 예리한 칼잡이, 한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검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윤 지검장이 주도하는 ‘적폐 청산’ 수사는 변 검사와 국정원 소속 정치호 변호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변 검사의 유족은 윤 지검장을 원망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변 검사의 자살 이전부터 윤 지검장의 강공 드라이브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변 검사 빈소의 한 검사는 “나라고 변 검사와 달랐겠느냐”고 털어놨다. 변 검사처럼 국정원에 파견됐다면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많은 검사들의 속내다. 그들은 이런 사정을 참작해 변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처벌 수위와 시기를 조절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윤 지검장에게 그런 여유와 배려를 기대하기는 애당초 어려웠다. 변 검사를 비롯해 구속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과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는 그에게 ‘한(恨)’을 품게 만든 수사 방해 세력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윤 지검장은 2013년 4월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은 직후 국정원을 압수수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바로 변 검사와 장 전 지검장, 이 검사가 당시 국정원에 ‘가짜 사무실’을 만든 수사 방해 혐의의 당사자들이다.


이후에도 윤 지검장은 국정원 직원 소환 등 수사를 진척시키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에 의해 가로막혔다. 결국 지휘라인에 사전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 체포와 자택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같은 해 10월 수사팀장 직무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나흘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그는 2016년 1월 대전고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12월 국정 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에 합류할 때까지 만 3년여를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그동안 만난 지인들에게 “나는 검사로서 할 바를 다했다”며 지방을 떠도는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이 맺힐 만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윤 지검장에게 다시 칼을 쥐여줬다.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고검장이 맡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도마에 오른 것은 또다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는 4년 전에 비해 쉬웠다. 국정원 안에선 ‘적폐 청산 TF’가 내부 자료를 뒤져 제공했고 소환된 국정원 간부들은 술술 불었다. 청와대도 법무부도 대검찰청도 간섭을 하지 않았다. 민감한 수사를 할 경우 웬만한 일은 모두 대검에 사전 보고를 하고 허가를 받던 관행은 없어졌다. 한 검찰 간부는 “서울중앙지검이 주말이나 바쁠 때는 중요한 사안도 대검에 사후 보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윤 지검장의 독주 체제였다. 그러다 변 검사의 비극이 발생했다. 

‘칼에는 눈이 없다.’ 자신까지 벨지 모르니까 경계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눈이 없는 칼을 누가 쥐느냐도 관건이다. 윤 지검장은 유능한 칼잡이지만 눈이 과거에 덮여 있지 않은가. 그것도 한이 쌓인 과거다. 이 점을 경계했어야 할 청와대는 오히려 이용했다. 화려한 칼춤을 기대하고 윤 지검장을 등용한 것이다. 변 검사의 자살은 5년 뒤 다른 칼춤의 서막일지 모른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71108/87158872/1#csidx3dba78c2931921583feb078a07cdf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