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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CIA가서 한 말 ,文대통령이 국정원서 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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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CIA 가서 한 말, 文대통령이 국정원서 했어야…

이승헌 정치부 차장 입력 2017-12-05 03:00수정 2017-12-0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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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

이승헌 정치부 차장
어느 때보다 차가운 겨울비였다.

내리면 그냥 얼었다. 올해 1월 21일, 워싱턴 특파원이던 기자는 토요일 외출을 포기하고 소파에 앉아 CNN을 틀었다. 전날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방문지인 중앙정보국(CIA)으로 가고 있었다. 겨울비는 더 차고 굵어졌다. 트럼프는 코트를 입은 채 CIA 직원 수백 명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정말 정말 특별한(very very special) 사람들이다. 그래서 취임 후 첫 공식 방문지로 CIA를 택했다. 나만큼 정보기관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 없다. 여러분은 이제 대통령이라는 ‘백(backing)’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대통령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못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대통령님, 이제 그만 지원해 주세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특유의 허풍 섞인 농담에 숨죽이고 있던 CIA 직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졌다. 트럼프는 초대 CIA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힘을 실어줬다.


“CIA 국장 후보로 9명이 있었는데 마이크를 만나고서 다른 후보들과의 면담 약속을 다 취소했다. 마이크는 이제 (내가 총애하는) 매티스(국방장관) 켈리(백악관 비서실장)와 함께하게 된다. CIA 여러분은 이제 마이크라는 스타를 갖게 된다. 진짜 보석(total gem)이다.” 


그러더니 트럼프는 CIA 요원들을 쳐다봤다.

“우리는 많은 현안에 당면해 있다. 이슬람국가(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같은 것은 박멸해야 한다. 나는 1000%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 다음 방문 때는 (CIA에 있는 방 중) 좀 더 큰 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미국은 다시 승리할 것이다. 그 선봉에는 CIA가 서게 된다. 다시 오겠다.”


트럼프의 CIA 첫 연설을 다시 꺼내 보게 된 것은 국가정보원의 처지가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국정원은 CIA의 카운터파트다. 당시엔 잘 몰랐는데 트럼프 연설을 지금 보니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가 국정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들었어야 할 법한 연설을 트럼프가 CIA에서 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댓글 공작 의혹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식 정보기관의 실체를 궁금해한다.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선언했는데도 해체에 가까운 국정원 개편에 몰두하고 있다.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등 전직 국정원장 3명은 구속됐다. 대공수사권은 폐지해 어디론가 이관한다. 이름은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꾼다. 영어명 이니셜(ISIS·International Security Intelligence Service)은 트럼프가 박멸하겠다는 테러단체와 같다. 여권 내에서도 “뭘 어쩌자는 거냐”는 말이 들린다. 


CIA라고 문제가 없었겠나. 2014년엔 테러리스트에 대한 잔혹한 고문이 상원에서 폭로돼 홍역을 치렀다. 그렇다고 비전문가가 CIA 시설에 막 들어가고 이름을 바꿔 달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2014년 상원 조사도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졌다.

이쯤 되면 문 대통령이 자신의 정보기관 구상을 설명해야 한다. 취임 후 “국민들께 보고드릴 중요한 내용은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최소한 정보기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도 밝혔으면 좋겠다. 정보기관도 군처럼 명예,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자부심을 먹고 사는 집단이다. 트럼프 CIA 연설문이 길면 9월 CIA 창설 70주년 성명이라도 한번 볼 것을 권한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CIA 모든 남녀 구성원은 미국을 지키는 ‘침묵의 영웅들(silent heroes)’”이라고 평가했다. 정권과 국적을 떠나 정보맨들의 역할과 속성은 다 비슷한 것 아닌가.

이승헌 정치부 차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