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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GM과 귀족노조가 한국 납세자 갈취하는가


[중앙시평] GM과 귀족노조가 한국 납세자 갈취하는가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 높아
노사 모두 정부 지원금에만 눈독
노조는 청와대 앞 노숙투쟁 중
시민들의 시선도 싸늘히 식어가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어제 출근길에 청와대 앞 노숙투쟁을 하는 한국GM 노조원들을 보았다. 사장실 폭력 점거에 이은 노조의 마지막 승부수다. 사실 그동안 자동차 전문가들은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을 그다지 높게 보지 않았다. 한국GM의 소형차가 돈이 돼서 그런 게 아니다. 숨겨진 비밀은 따로 있었다. 미국의 기업평균연비규제(CAFE)도 그중 하나다. 미국은 자동차 업체별 가중 평균 연비 목표를 정해 놓고 매년 이 기준을 못 맞추면 엄청난 벌금을 물린다. GM은 돈이 되는 중대형 SUV를 팔기 위해서라도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연 30만~40만 대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GM 노조가 막무가내로 버텨온 배경에는 이런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돌발변수로 등장했다. 트럼프가 환경보호 반대론자인 스콧 프루이트를 환경보호청장에 임명하면서 노조의 계산은 틀어졌다. 스콧 청장은 지난주 “화석연료와의 전쟁은 끝났다”며 “차량 배기가스 기준을 오바마 이전으로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업계의 “미국산 중대형 SUV가 경쟁력이 있고 일자리도 늘린다”는 입장을 들어준 것이다. 이제 CAFE는 껍데기만 남게될 운명이다. 더 이상 GM이 한국산 소형차를 고집할 까닭도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글로벌 경제 흐름을 보면 GM이 한국에서 발을 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유가가 급락하면서 한국GM의 소형차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계륵 신세다. 트럼프의 환율 전쟁이 촉발한 원화 가치 급등으로 부평·창원 공장의 가격경쟁력도 벼랑 끝에 몰렸다. 한국GM 노조가 비빌 언덕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돌아보면 노조는 2010년부터 오판의 연속이었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치킨게임에 돌입하면서 해외 노조들은 고용 안정 쪽으로 쟁의 방향을 완전히 돌렸다. 독일 폴크스바겐 노조는 임금 21%를 삭감하는 대신 독일 내 생산물량을 보장받았고, GM 브라질 노조 역시 임금을 7% 삭감한 뒤 신차 물량을 배정받았다. 임금 삭감과 고용보장을 주고받은 것이다.
 
이철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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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한국만 유독 임금 인상 투쟁에 골몰해 왔다. 과격투쟁이 꼬리를 물면서 국내 여론도 나빠졌다. 더 이상 민주노총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먹히지 않는다. 이제 국민들이 “경영 실패를 왜 노조에 떠넘기느냐”는 주장은 안 믿는 것이다. 경영이 악화되면 주주-비정규직-사무직 순으로 희생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주가 폭락은 물론 감자까지 당하기 일쑤였다. 항상 정규 생산직 노조는 맨 마지막에 남는 성역이었다.
 
한국GM 노조가 청와대 앞 노숙투쟁에 들어간 것은 노조 입장에선 신의 한 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도낼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 아래 정치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노조도 고비용-저생산으로 인해 더이상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미 한국의 가장 큰 위협은 ‘사람 리스크’다. 누구도 겁이 나서 한국에 대규모 고용이 필요한 사업은 안 한다. 한번 고용하면 정년까지 보장해야 하고, 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파업을 일삼기 때문이다. 최근 대규모 투자는 반도체·석유화학 같은 노동절약형 장치산업에 국한되고 있다.
 

고유가 시절 GM에 소형차를 만드는 한국GM은 효자였지만 이제는 언제든 내다 버릴 수 있는 소비재가 돼 버렸다. 월스트리트저널 등도 “한국 정부가 지원을 중단하면 GM은 주저 없이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 한국GM 노사는 공생관계의 운명공동체다. 얼마나 많은 혈세를 긁어내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노조의 청와대 앞 노숙투쟁은 정확히 급소를 찌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사태를 주도한 민주노총에 적지 않은 부채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막대한 일자리가 걸린 자동차 회사의 특성까지 역이용해 청와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더 많이 얻어내야 더 오래 끝물 잔치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GM이 한국GM에 빌려준 22억 달러를 주식으로 바꾸되(출자전환), 한국 정부에 1조원을 대라고 요구 중”이라며 “GM 본사는 추가 비용 부담 없이 한국 지원금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GM이 한국 납세자들을 갈취하고 있다”는 독설을 날렸다. 만약 이 매체가 노조의 노숙투쟁 장면을 지켜보았다면 이렇게 보도했을 게 분명하다. “시장의 힘에 밀려난 한국GM 노사가 청와대를 인질 삼아 한국 납세자를 갈취하고 있다”고 말이다. 어제 오전 광화문에서 GM 노조원들과 마주친 시민들의 시선이 싸늘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철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