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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建國 논쟁 집착… 세상 바꾸려면 과거 바꿔야
文 집권 1년여 3權 교체 순항… 市場권력 교체가 가장 어려워
햇볕정책, 北 아니라 시장에 필요… 세상, 바꾸는 게 아니라 바뀌는 것
박제균 논설실장
다음 달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 여느 나라 같으면 벌써부터 대축제 준비에 한창이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오히려 건국일 논란만 거세질까 봐 마음이 무겁다. 논쟁의 불을 지핀 사람은 축제의 제사장이 돼야 할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3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우리에게는 민주공화국 10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1919년 임정 수립이 곧 건국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국제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1933년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몬테비데오 협약’ 제1조는 국제법상 국가 형성의 요건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①영구적 주민(permanent population) ②확정된 영토(defined territory) ③정부(government) ④타국과의 (외교)관계 체결 능력(capacity to enter into relations with other states)이다(‘헌법의 이름으로’, 양건). 국제법적으로 보면 상하이 임정 수립이 건국이라는 주장은 아무도 없는 곳에 깃발 하나 꽂고 내 나라라고 주장하는 ‘어린 왕자’ 식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1948년 제헌 헌법의 전문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규정했다. 1919년 건국을 언명(言明)한 것이다. 현행 헌법 전문도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헌법적으로는 임정 수립을 건국으로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건국이 언제인가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논쟁이다. 미국(7월 4일) 중국(10월 10일) 프랑스(7월 14일)가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은 모두 정부 또는 임시정부 수립일과는 거리가 멀다. 왕정을 거쳐 일제 강점의 질곡 속에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임정 수립은 역사적인 날이고, 70년 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국제법적으로 승인까지 받은 뜻깊은 날이다. 함께 경축하면 될 일이지, 맞다 그르다 치고받고 싸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집권 진보세력은 한사코 정부 수립 70년을 부정하며 임정 수립만을 유일한 건국일로 규정한다. 왜? 문 대통령의 일관된 언행이 그 답을 준다. 대선후보 때부터 문 대통령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꾸려면 오늘의 세상을 만든 과거부터 바꿔야 한다.
문제는 시장(市場)권력이다. 한국사회의 저변을 움직이는 시장권력까지 교체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장권력 교체는 경제 실권자들을 교체한다고, 재벌들의 목줄을 죈다고 쉽사리 이룰 수 없는, 가장 어려운 권력교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에 이어 검경까지 동원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민간 기업의 지배구조를 손대려는 기도(企圖)까지 등장했다.
시장권력은 거칠게 밀어붙인다고 바뀌지 않는다. 독재자 김정은도 시장은 못 잡았다. 북한이 아니라 시장에 필요한 것이 햇볕정책이다. 시장 주체인 기업과 개인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 말이다. 집값을 잡는다고 강남 때려잡기를 해도, 취약계층을 돕는다고 최저임금을 올려도 결과는 반대로 튀는 게 시장이다. 정책은 시장원리, 즉 인간 본성에 부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시장권력 교체에 조급증을 보이다간, 결국 시장의 이반(離叛)에 직면해 높은 지지율에 치명타를 안길 것이다. 세상은 바꾸는 게 아니라 바뀌는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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