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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뒤 늦은 후회..."분수 넘치게 살았다"

       

[횡설수설/고미석]“분수 넘치게 살았다”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8-09-06 03:00수정 2018-09-0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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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60%로 인상했다. 페소화 폭락을 멈추려는 안간힘이었다. 이에 앞서 정부는 2001년에 이어 다시 한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 손을 벌렸다.

▷“아르헨티나는 분수에 넘치게 살았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TV담화에서 주요 곡물 수출세 도입, 정부부처 절반 축소 등 초강도 긴축정책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버는 것보다 덜 써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이미 늦은 후회다. 대통령은 “이번 위기는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아무도 아랑곳 않는 분위기다. 노조원과 공무원들은 이날 거리에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이 고통 분담을 호소한 지 4시간 만이었다.

▷20세기 초 프랑스 독일보다 국민소득이 앞섰던 나라가 IMF 중환자실로 되돌아간 것은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 탓이다. 대통령이던 남편에 뒤이어 당선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2007∼2015년)은 분수를 몰랐던 대표적 인물. 그의 재임기간 중 경제가 수렁으로 곤두박질쳤음에도 학생들은 공짜 노트북을 지급받고, 연금 수급자는 360만 명에서 두 배 넘게 불어났다. 현직 상원의원인 그는 최근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불려갔다. 전 고위 공직자의 운전사가 공공사업 입찰자와 공무원 사이의 뇌물 심부름을 기록한 노트 8권이 공개됐는데 그 시기는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재임기간과 겹쳤다.

▷혹시 국민 입장에선 “이게 나라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 역시 되풀이되는 비극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크리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공요금 등에 대한 보조금 삭감, 연금 삭감 등을 추진했으나 고통을 수반한 개혁은 번번이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나라곳간은 어찌 됐든 간에, 칼날에 묻은 달콤한 꿀을 탐하듯 국민들이 무상복지의 단맛에 취해 있는 것이다.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나라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다. ‘선진국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가 몰락했던 지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지구 반대편 먼 나라 일이라고 치부할 것만은 아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