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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장하성이야말로 통계 왜곡 정점 선 인물"

       


“장하성이야말로 통계 왜곡 정점 선 인물”

송홍근 기자 입력 2018-09-25 10:32수정 2018-09-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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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독립성 ‘황고집’ 황수경 왜 잘렸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 통계 왜곡해 결론 낸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
● 통계가 격투기 된 그리스의 전례 
● ‘확증 편향’ 칼럼 공유해 지지층 결집한 조국
● 마르크스경제학 전공한 신임 통계청장

한국에서 ‘통계가 격투기가 되고’ 있다. 정치에 통계가 오염된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으나 거짓말쟁이들이 숫자를 이용할 뿐”이라는 통계학 잠언이 회자된다.



“그리스에서는 통계가 격투기다. 통계를 조작하지 않은 게 나를 기소한 이유다.”

그리스 통계청장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는 2011년 형사 고발을 당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공문서 위조, 직무 유기를 저지른 중죄범으로 기소됐다. “국익을 해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정치인 지시에 따라 통계를 조작해온 관행과 달리 정확한 숫자를 내놓으려고 노력한 게 ‘괘씸죄’에 걸렸다.  

그리스는 통계 조작을 통해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을 속였다. 재정지출이 방만해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2010년 4월 EU·IMF에 긴급 자금을 요청했다. 올해 8월까지 구제금융 체제를 8년 동안 겪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통계 조작이 참혹한 결과를 낳은 사례다. 


‘코드에 딱 맞는’ 통계청장

한국에서 통계청장은 주목받는 공직은 아니었다. 통계청을 비롯한 외청의 수장(首長)은 정해진 것은 아니나 2년 임기가 관례처럼 여겨졌다. 8월 26일 차관급 인사 때 ‘끼워 넣기’ 식으로 통계청장이 교체됐다. “계층 간 분배가 악화됐다”는 통계청의 가계소득동향 발표가 나온 후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뭇매를 맞던 때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 정책이다. 통계청의 가계소득동향 발표가 핵심 정책에 어깃장을 놓은 격이 됐다. 황수경 통계청장이 경질된 배경으로 가계소득동향 발표 후 통계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게 거론된다. 황 전 청장은 지난해 7월 임명돼 13개월 만에 교체됐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은 취임 전 청와대 요청에 따라 가계소득동향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소득주도성장의 아이콘인 홍장표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실사구시 한국경제’(2013)라는 제목의 책을 공저했으며 홍 위원장이 속한 진보 성향 학현학파 출신이다.

홍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여권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 아이디어를 낸 이도,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이도 홍 위원장”이라고 했다. 소득 통계 지표가 나쁘게 나와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코드에 딱 맞는 인사’가 통계청장에 취임한 것이다.  

강 청장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존 로머의 분석적 맑스주의 경제이론에 대한 연구’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고(故)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가 박사 논문을 지도했다.

황 전 청장이 “어쨌든 (윗선) 말을 잘 들은 편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청와대 말을 듣지 않아 경질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황 전 청장은 8월 27일 퇴임식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돼선 안 된다”고도 했다. 통계청 공무원 노동조합이 황 전 청장 퇴임식 날 내놓은 성명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성명을 요약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역대 어느 청장보다 통계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황수경 청장이 떠나갔다.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탄생한 정부의 인사가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건지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소득분배 및 고용 악화 통계가 발표돼 논란이 되는 시점에서 단행된 청장 교체는 앞으로 발표될 통계에 대한 신뢰성 확보를 담보하기 어렵게 할 것이며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로 보인다. ‘좋지 않은 상황을 좋지 않다’고 투명하게 절차대로 공표했는데도 통계 및 통계청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하더니 결국엔 청장의 교체까지 이르고 말았다.”

8월 3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장하성, 통계 갖고 장난 말라’ 제하 칼럼은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통계청의 갈등이 황 전 청장 경질의 또 다른 이유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 실장이 정책실장으로 임명되기 4일 전(2017년 5월 17일) 페이스북에 이번에 논란이 된 가계소득동향 조사를 인용한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을 경향신문이 소개했고 통계청이 즉각 반박 자료를 냈는데, 장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후 통계청이 이 설명 자료를 폐기하라는 압박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장 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기업과 고소득층이 더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가계소득이 경제성장만큼 늘지 않았다는 취지다. ‘1990~2016년 국내총생산이 260% 늘어날 동안 기업 총소득은 358%, 가계 총소득은 186% 늘어났다’는 한국은행 통계와 같은 기간 ‘가계 평균소득은 9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통계청 가계소득동향 조사 통계를 비교했다. 가계 총소득은 186% 늘었는데 가계 평균소득은 90% 늘어나는 데 그쳤으니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결론이다. 

“학자 시절부터 제멋대로 통계 해석”

통계청 홈페이지에 장 실장의 분석을 반박한 설명 자료가 있다. 장 실장은 작성 범위와 개념이 다른 통계를 비교하는 우를 범했다. 가계 평균소득 증가율은 ‘가계동향조사’를 통해 나온 도시 2인 이상 가구당 실질소득 월평균 변화고, 가계 총소득 증가율은 ‘국민계정’에서 가계 부문 실질소득 총금액 변화다. 이렇듯 범위와 개념이 완전히 다른 통계에서 ‘186%’와 ‘90%’를 가져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계층 간 불평등이 확대됐다는 논리를 세운 것이다. 가구원 수가 줄어들면 가구의 총소득이 적어지므로 가계 평균 소득 증가율은 가계 총소득 증가율보다 낮아지는 것도 간과했다. 청년층·노년층이 많은 1~2인 가구는 소득이 낮고, 분가(分家)를 통해서도 가구원 수가 줄어드는 터라 가계 평균소득 증가율은 가계 총소득 증가율보다 낮아진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가 2000년 3.12명에서 2017년 2.47명으로 줄었는데 가구당 3.12명이 벌던 것을 2.47명이 벌면 한 사람당 똑같이 1000만 원씩 벌어도 가구당 소득은 3120만 원에서 2470만 원으로 떨어진다. 요컨대 장 실장 분석은 통계를 잘못 비교한 엉터리인 것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장하성 실장이야말로 통계 왜곡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학자 시절부터 분배 관련 통계를 제멋대로 해석했다”고 꼬집으면서 장 실장이 2015년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을 공저했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는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소득분배 균형은 완전히 상실됐고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해진 나라가 됐다”고 서술한다. 문재인 정권의 강경한 지지층이 필독서처럼 여기는 책이다. 이어지는 신 교수의 말이다.

“과학적으로 분석한 후 도달한 결론인 듯 포장했으나 통계를 왜곡해 비교한 괴담(怪談) 수준이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통계에서 상용 노동자 임금 최상위 10%와 최하위 10%를 비교하면 한국이 33개국 중 29위다. 장 실장은 이 통계만 제시한 뒤 한국은 임시 노동자 비율이 높고 상용 노동자와 임시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크므로 불평등이 미국 수준에 근접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놓고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결론 내린다. 미국은 상용 노동자 임금 최상위 10%와 최하위 10%를 비교하면 33개국 중 33위다. 원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필요한 통계를 가져다 붙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심해도 너무 심해”

신 교수가 부연했다.  

“미국에 근접할 수 있음을 ‘짐작’한 후 그 뒷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를 대지 않았다. 그러곤 책의 두 절 제목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해진 나라1’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해진 나라2’로 해놓았다. 학자가 이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OECD에 가입한 잘사는 나라 33개국 중 꼴찌로 ‘짐작’되니 세계 196개국에서 꼴찌라는 게 학자가 할 소리인가. 초등학생이 봐도 틀린 국제 비교다. 통계 왜곡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전 세계와 OECD는 엄연히 다른 비교 대상이다. 한국의 분배는 어떤 지표로 봐도 세계적으로는 중상위권이다. OECD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다른 분배 지표에서는 한국이 중위권에 들어간다. 196개 국가와 비교하면 어떻겠는가. 지금도 세계에서 중상위권이지만 최근 20년 동안 조금 떨어졌다고 보는 게 올바른 진단이다.”

그는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다고 진단했을 때 처방과 중상위권은 되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조금 나빠졌다고 진단했을 때 처방은 천지차이다.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낸 사람이 경제 정책을 주무르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장 실장은 8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2000년을 기점으로 지난해까지 한국 경제는 89.6% 성장했으나 가계 총소득은 69.6% 늘었고, 가계 평균소득은 경제성장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1.8% 증가했다”고 했다. 지난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처럼 ‘69.6%’와 ‘31.8%’를 대비한 것은 범위와 개념이 다른 통계를 비교한 것이다. 이쯤 되면 ‘고의’가 아닌지 의아할 정도다.

8월 25일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김용기 아주대 교수가 쓴 ‘신동아’ 칼럼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정독을 권합니다’라고 썼다. 9월 12일 현재 486명이 공감했고 148회 공유됐다. ‘고용쇼크의 착시현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칼럼은 통계를 다룬 것으로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가 준 것을 취업자 수 급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 교수는 이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고용쇼크’가 발생한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지표를 살펴볼 때 고용의 질은 분명히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싱크탱크 ‘국민성장’에서 일자리추진단장으로 일한, 정권과 코드가 맞는 학자다.  

조 수석이 이 칼럼을 공유한 때는 통계청이 내놓은 지표를 바탕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공격을 받을 때다. 문재인 정권의 강경한 지지자들은 이 칼럼을 퍼 나르면서 일부 언론이 잘못된 통계 분석을 통해 짜놓은 프레임대로 정권을 공격한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도 아닌 조 수석이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칼럼을 공유한 측면이 있다. 김 교수가 칼럼을 통해 주장한 통계 분석은 경제학계에서 기각되고 있다.

확증 편향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월 11일 발표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취업자 수 증가폭의 급격한 위축은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상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였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투자와 내수 등 경기 상황이 악화되면서 고용도 침체를 겪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동아’는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칼럼을 실어 김용기 교수 칼럼과 균형을 맞췄다. 신 교수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문재인 정부 시기 실적 부진을 다른 탓으로 돌린다. 첫째로 내놓은 반론의 근거는 인구구조 변화다. 저출산 영향으로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2014년 중반부터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증가폭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취업자 증가폭은 생산가능인구 증가폭보다 현저히 감소했다. 취업자 증가폭의 감소가 인구 증가폭의 감소보다 두 배 정도 크다. 2017년까지만 해도 매년 25만 명 이상이던 취업자 증가폭이 올해 갑작스레 1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자는 이를 두고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라고 보지만 유독 정부만 이를 인정하기를 꺼린다.”

‘확증 편향’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통계 왜곡은 고의가 아닐 경우 확증 편향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문 대통령과 장 실장은 그동안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면서 상용 근로자 수 증가, 고용률 개선,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 증가 등을 근거로 앞세웠다. 통계청이 9월 12일 내놓은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3000명에 그쳤다. 실업자 수가 113만 명으로 8개월 연속 100만 명대를 웃돈다.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1999년 6월~2000년 3월 10개월 연속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긴 것과 상황이 비슷하다. 청와대는 “경제 체질이 바뀌며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봤다. “연말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장담이 실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