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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수집, 公과 민간 단절 어려워… 靑순수 부각하려다 보니 ‘불순물’
민정, 前정권들과 비슷한 운영…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헛발질
1년반 고개 넘어 터진 사찰 논란… 정윤회 문건처럼 실체 드러날 것
박제균 논설실장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의 청와대는 황량하다. 물러가는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남았지만 ‘학업’에 뜻이 없다. 미리 청와대를 탈출 못한 ‘늘공’들도 새 정권의 눈치만 살피며 돌아갈 자리 물색에 여념이 없다. 대선에서 승리하고 청와대를 ‘접수’하러 갔던 이의 회고에 따르면 흡사 ‘도둑맞은 집’ 같다고 했다.정상적인 국가라면 정권의 인수인계 절차가 엄정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새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들은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지, 하다못해 무슨 문서가 어디 있는지 몰라 당황스럽다. 이럴 때 반짝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정권으로부터 넘어온 청와대 실무자들이다.
청와대 업무에 서툰 상급자들은 이들의 전 정권 이력을 알고도 업무 편의상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문제 된 김태우 검찰 수사관도 이명박 정부부터 3대에 걸친 ‘청와대 말뚝’이다. 특히 정권이 바뀐 직후엔 인사정보가 중요하다. 김 수사관은 그 점에서 쓰임새가 컸을 것이란 게 주변의 관측이다. 세 정권을 넘나들며 청와대에 근무한 김 수사관도 정치의 풍향에 민감한 인물이란 게 중평이다.
굳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보 수집을 하다 보면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을 칼로 두부 자르듯이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공직 비리가 민간인과 엮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청와대는 그렇게 수집된 민간인 동향이나 첩보를 ‘불순물’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는 우생학(優生學)적 선민의식마저 드러낸 청와대가 자신들의 순수함을 강조하려다 보니 나온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 불순물이 너무 많은 것으로 드러나는 게 문제다.
민간 조직도 그렇거니와 거대한 정권을 운영하다 보면 당연히 티도 묻고 재도 묻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김태우 수사관 같은 사람일 것이다. 김태우의 비리 의혹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규명해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일을 시키거나 묵인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자신들만 깨끗한 척하느냐는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김태우 문건 파동은 정권 출범 후 1년 7개월 만에 터졌다. 박근혜 정부의 정윤회 문건 파동은 1년 9개월 만에 터졌다. 정권 출범 1년 반 고개를 넘어 중반전으로 접어드는 이 시기가 위험한 때다. 지지율이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집권 핵심세력이 내부의 그립을 강하게 쥐려고 하면 반발이나 저항이 튀어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레임덕은 내부 균열이 그 시작이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돼 있다. 문건 유출에 초점이 맞춰졌던 정윤회 문건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음에도 묻혀졌다. 박관천 리스트에서 권력서열 1위로 꼽혔던 최순실의 실체도 나중에야 드러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논란도 시간이 지나면서 실체가 잡혔다. 이번 사건은 어떤 진실의 그림자를 드리울 것인가. 분명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건 한국 청와대는 참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기만 들어가면 멀쩡하던 사람도 돌변하니까, 이제는 사람보다 ‘제왕적 청와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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