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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北 보낸다는 트랙터 27대...全農, 열흘 넘게 임진각 방치



北 보낸다는 트랙터 27대… 全農, 열흘 넘게 임진각 방치

조선일보
  • 김은중 기자
    입력 2019.05.08 03:00

    대북제재 해제하자며 10억 모금해 北에 보낼 선물 마련
    임진각 행사 마치고 주차장에 트랙터 세워놓고 해산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주차장에 새 트랙터 27대가 10일 넘게 방치돼 있다. 국내 한 업체가 제작한 트랙터로 대당 4000만원짜리다. 27대를 합치면 10억원어치가 넘는다. 트랙터에는 한반도기가 걸려 있었고 '대북 제재 해제' '미국은 빠져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난달 27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이곳에서 '대북 제재 해제 통일품앗이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다. 4·27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다. 트랙터는 북한에 보낼 선물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통일의 트랙터로 거침없이 자주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가자" "자기 식구 집에 품앗이하러 가는데 외지 사람(미국) 허락을 받는 미친 사람은 없다"는 발언이 나왔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자 회원들은 트랙터를 세워놓고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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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주차장에 '대북 제재 해제' '미국은 빠져라' 문구가 붙어 있는 트랙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 합해 10억원이 넘는 이 트랙터들은 지난달 27일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북한에 전달하려다 불발된 후 이날까지 열흘 넘도록 주차장에 방치돼 있다. /조인원 기자
    트랙터는 전농이 모금을 통해 마련했다. 지난해 10월 전농은 '통일 농기계 품앗이운동'을 시작했다. 남측의 트랙터로 북녘의 농토를 갈고 북측의 토종 종자 등을 남측이 받는 방식으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며 범국민 모금 운동을 벌였다. 애초 계획은 총 40억원을 모아 트랙터 100대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었다.

    작년 10월부터 시도별로 '통일농기계품앗이운동본부'가 발족했다. 지금까지 총 10억원이 모였고, 광주·전남(12), 경기(4), 전북(3) 등 지부별로 모은 돈으로 트랙터를 샀다. 박행덕 전농 의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임진각 행사에서 "어른들은 통일 쌈짓돈을 모으고 아이들은 통일 저금통으로 함께했다"고 했다.

    전농은 트랙터를 몰고 북한으로 갈 계획도 세웠다. 김성만 전농 부산경남연맹 의장은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시 경남도의회 앞에서 열린 '통일농기계품앗이 경남운동본부' 출범 선언식 당시 "내년 봄 트랙터를 몰고 북으로 갈 것이고, 막는다면 그 자리에 트랙터를 두고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전농이 모금 전부터 북한 측과 협의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법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나 단체가 북측과 접촉하려면 통일부로부터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한다. 긴급한 경우라도 통일부에 사후 보고하게 돼 있다. 전농 기관지에 따르면 지난 3월 북한 조선농업근로자연맹과 6·15 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 농업분과위원회에 통일트랙터 관련 실무회의를 제안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통일트랙터와 관련해 전농의 대북 접촉 승인 요청이나 사후 보고는 없었다"고 했다. 북한 역시 지금까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제안을 수락한다고 해도 제재 문제가 남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01711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호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북한에 산업류 기계와 운송 수단을 수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이 전농 트랙터에 대해 제재 예외 조치를 해줘야 트랙터를 북한에 보낼 수 있다. 그 때문에 전농 측이 트랙터 반출이 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4·27 남북 정상회담 1주년에 맞춰 무리하게 모금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북으로 가지 못한 트랙터가 열흘 넘게 공원 주차장에 방치되자 공원 측도 난감해하고 있다. 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행사가 끝나면 트랙터를 치워주기로 이야기가 됐는데 (전농 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강제로 치울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임진각을 방문한 시민 김모(61)씨는 "시민의 공간에 트랙터들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어 보기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본지는 전농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전농 측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8/20190508000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