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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강천석 칼럼]'文 선장님, 이건 海圖에 없는 길입니다'



[강천석 칼럼] '文 선장님, 이건 海圖에 없는 길입니다'

    
입력 2019.05.10 23:33 | 수정 2019.05.11 03:08

'質的으론 개선 됐다'는 말 '펀더멘털 건전하다' 만큼 뒷맛 고약
대통령 국정 진단 正常이면 과반수 넘는 국민이 非正常

                            

문재인

                  
강천석 논설고문

 대통령이 취임 두 돌을 맞았다. 대통령은 배의 키를 잡고 승객을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시켜야 하는 선장(船長)과 같다. 대한민국호(號)에는 5170만 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다. 건조된 지 71년 된 이 배는 첫 출항 때 똑딱선과 다름이 없었다. 작고 초라한 외관(外觀) 때문에 세계 항구에 기항(寄港)할 적마다 설움을 겪었다. 현대적 선박을 몰아본 경험이 없는 터라 항해사·기관사·무선사 자리에 외국 배 승무원 경력자를 데려다 써야했다. 역대 선장과 승객들이 합심해서 부족한 자금과 기술을 땀과 눈물로 메워가며 이 배를 세계 7위의 선박으로 키웠다. 문 선장이 모는 대한민국호의 역사다.

선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책임 의식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승객과 화물을 무사하게 목적지까지 수송하겠다는 사명감이다. 우리나라 선원법(船員法)은 '항행 성취 의무' 조항에 '선장은 부득이한 경우 이외에는 예정 항로를 변경하지 않고 도착항까지 항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장이 막연한 짐작이나 호기심 때문에 해도(海圖)에 없는 길을 가서는 안 된다. 해도에는 오랜 항행 역사를 통해 찾아낸 물에 잠긴 암초(暗礁)와 빙산(氷山) 그리고 배를 좌초하게 만드는 얕은 여울이 표시돼 있다. 선장이 안전 운항 이외에 무슨 신념 비슷한 걸 내세우는 것은 선원법으로 보면 범죄에 가깝다.


항공산업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는 대형 여객선이 대양(大洋)을 건너는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배의 크기(t수)가 아니라 선장의 경험을 보고 배를 골라 배표(票)를 샀다고 한다. 국가를 '운명 공동체', 선박을 '위험 공동체'라고 부른다. 두 공동체를 가르는 차이는 항해의 안전 여부는 배를 타기 전 선장의 경력을 보고 짐작할 수 있지만, 국가의 안전 운영 여부를 결정짓는 대통령 역량(力量)은 뽑고 나서 체험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선장 취임 2주년 KBS 대담은 거의 쇼크(shock)였다. 선장은 배의 각종 상태를 알리는 계기판(計器板)을 너무 승객과 딴판으로 읽고 있었다. 선장이 정상이라면 승객의 반수 이상은 비정상이 되고 만다. 현재 경제 상황을 '위기 혹은 위기 직전'이라고 진단한 경제 전문가의 84%는 병원에 가야 할 판이다. 선장은 '아직 윤활유는 많이 남아 있다'는 식이었다. 휘발유가 바닥났다고 알리는 계기판은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1997년 외환 위기를 통해 국민은 현대의 경제 재난(災難)은 선박 침몰보다 항공기 추락과 닮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불과 1년 사이에 127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펀더멘털은 건전하다'는 오판(誤判)이 부른 재난이었다. 이 정권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질적(質的)으론 개선됐다'는 말의 뒷맛은 그래서 더 고약하다.

대북 정책과 안보·외교 정책의 성패(成敗)도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북한 김정은이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북한이 닷새 간격으로 발사한 신형 미사일 시리즈는 한국의 방공망(防空網)과 헛된 기대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미국이 자신들의 안보를 앞세워 한국 안전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북한과 거래할 위험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1954년 출발한 한·미 동맹은 명분과 실리가 일체화(一體化)된 동맹에서 뼈만 남은 동맹으로 빠르게 퇴화(退化)하고 있다.

관제(官製) 반일(反日) 캠페인은 한·일 관계를 1964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最惡)으로 몰고 있다. 미국의 일본·중국 전문가 에즈라 보겔은 일본 국민의 눈을 크게 바꾼 외국 지도자의 일본 방문으로 1960년 로버트 케네디 미국 법무장관, 1978년 덩샤오핑 중국 국가부주석,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訪日)을 들었다. 문 대통령에게 그런 기적을 바라기는 무망(無望)하다. 아베 일본 총리에게도 반한(反韓) 혐한(嫌韓)은 공공연한 국내 정치 무기다. 한국을 아무렇게 하대(下待)하는 중국의 무례(無禮)는 이 정권 들어 더 굳어졌다. 조선 시대 양국 관계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과 현재의 동맹 외교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잃고 있으면서도 핸들을 돌리 지 못했다. 북한 신형미사일의 불꽃을 보면서도 김정은을 향한 기대도 끝내 접지 못했다. '정치 보복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정치 보복'이란 말처럼 모순된 말은 없다. 대통령의 정치 어법(語法)이 그랬다.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도 국민은 내려올 수 없다. 그래서 홀로 절박한 국민 들은 지푸라기라도 붙들려하지만 무수한 손들은 그저 허공을 움켜쥘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0/20190510034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