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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정권의 오만이 재앙을 키운다


[박제균 칼럼]정권의 오만이 재앙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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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었다면 어땠을까. 코로나19의 발원지이자 확산국이. 그래도 감염자가 폭증한 날,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을까. 세계 각국이 일본에 문을 걸어 잠가도 기필코 일본인 입국을 막지 않았을까. 

가정이 부질없다는 건 잘 안다. 그래도 문 대통령과 이 정부가 중국을 대하는 각별한(?) 태도가 코로나 재앙을 키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시진핑 주석이 “중국은 계속 공개적이고 투명한 태도로 한국과 소통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언사를 하는 것 아닌가. 중국이 코로나 대처에 공개적이고 투명하지 않았다는 건 세계가 다 안다.

코로나 사태가 중국인 혐오로 번지는 건 결단코 반대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자국민 보호는 다른 문제다. 한중(韓中) 정상 통화 후 중국은 발표하지도 않은 ‘시진핑 상반기 방한(訪韓)’을 기어코 못 박은 청와대의 중국 짝사랑이 향후 코로나 대응까지 영향을 미칠까 심히 걱정된다. 


중국과 북한 정권에는 비굴할 정도로 수그리는 문재인 청와대는 시선을 국내로 돌리는 순간 고개를 뻣뻣이 쳐든다. 대북(對北)·대중(對中) 굴종외교를 비판받아도 대꾸조차 없다. 노무현 청와대는 비판 언론과 치열하게 논쟁하기라도 했다. 훨씬 오만하다. 자칫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한마디 말이 없다. 이러니 ‘민주화 이후 가장 오만한 정권’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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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한 젊은이의 촌철(寸鐵)에 무릎을 치는 이가 많았다. 진보 진영 출신인 이 젊은이는 “보수 쪽에선 범죄가 드러났을 때 ‘우리가 철저하지 못해 들켰네’라는 느낌이라면, 진보는 ‘왜? 어때서? 우리가 좀 해먹으면 안 되냐?’는 태도다. 전자는 나쁜 놈이라고 욕할 수 있는데, 후자는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오는 지경”이라고 했다. 

 
아직도 조국이 뭘 잘못했냐며 ‘조국백서’를 내겠다는 사람들이 있질 않나, 그 사람을 공천하지 않으면 민주당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겁박하는 무리들이 있질 않나, 소위 집권당이라는 정당이 그 협박에 굴복해 전략공천 하겠다고 하질 않나…. ‘어이구 들켰네’ 하는 일말의 수오지심(羞惡之心)마저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러니 도덕과 양심, 상식의 기준이 무너질까 봐 무섭고,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봐 두렵다. 아니, 벌써 보고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한국의 진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두껍고 뻔뻔해졌을까. 우리는 조영래 김근태 등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양심적인 진보 지식인들을 기억한다. 진보 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렇지 않았다. 더구나 노무현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알았고, 그것이 비극적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이유는 자명하다. 진정한 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는 공산당 논리와 김일성 혈통을 신성(神聖)가족으로 여기는 주체사상, 홍위병을 앞세우고 학살을 자행한 마오쩌둥을 미화한 리영희류의 반미친중(反美親中) 세례를 흠뻑 받은 80년대 NL(민족해방) 운동권 좌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무오류의 철갑을 두르고, 문재인-조국을 성역화하며, ‘문파 홍위병’이 날뛰는 행태의 연원(淵源)이 바로 거기에 있다.

문제는 이렇게 오만하고, 그래서 무능한 집권세력이 코로나 사태라는 초유의 시련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느냐다. 시중에는 벌써 이 사태를 특정 종교집단의 등장까지 엮어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참사와 연결짓는 얘기가 돌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세월호든 메르스든 코로나든 재난의 발발 원인을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합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다만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기민하지 못한 대응이 두고두고 논란을 부른 건 사실이다. 중국인 입국 여부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의 초기 대응도 논란을 부를 조짐이나 그보다 중요한 건 향후 대처다. 문 정권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박근혜 정부 책임으로 몰아붙이던 때를 돌아보며 더 겸허해져야 한다. 오만의 장막을 열어젖히고 아집(我執)의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보다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책으로 가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런 길로 간다면 국민도 힘을 모아줄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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