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닭 한 마리보다 황당한 대통령비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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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처럼 위장전입 사연도 다 다르다”
인사원칙 깨고도 당당한 靑
국정 私事化-탄핵사태 보고도 인사에 私를 개입시키나
대통령 말의 신뢰 잃고 공정국가 포기할 참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한때 ‘알부남’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대선을 1년여 앞둔 1996년 말 ‘야당 투사’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온건보수 이미지로 변신하면서 그 말을 썼다. “내가 알부남이에요.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결과적으로 ‘DJ의 알부남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몇몇 까칠한 정치인들의 “나도 알부남” 주장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세상엔 알고 보면 부드럽지 않은 남자 없고, 알고 보면 누구나 불쌍한 측면이 있다. 다만 굳이 알아보고 싶지 않거나 알 필요가 없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첫 조각(組閣)으로 발표한 3명의 후보가 ‘5대 비리인사 배제’ 원칙을 어긴 데 대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알부남식 사과를 했다.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 다르듯이 관련 사실에 대한 내용 또한 들여다보면 성격이 아주 다르다”는 거다.
당연하다. 알면 달리 보인다. 그래서 일처리에서 공정하지 못하게 안면을 보거나 정실관계를 이용할 때 ‘사(私)를 쓰다/보다/두다’라는 관용구를 쓴다. 국정을 사사화(私事化)한 죄로 직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마당에 새 정부가 그 ‘삿된 들여다봄’의 관행 또는 적폐를 이어가자는 건 빵과 닭을 등장시킨 비유만큼이나 황당하다. 빵 한 조각은 장발장의 억울함을 연상케 하기 위해서라고 치고, 닭 한 마리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도 봐줘야 한다는 의미인가?
대한민국 어린이법제처 홈페이지에는 “교육, 부동산, 공무원시험 등 위장전입 사유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남보다 많은 혜택과 이익을 얻고자 한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정의 차원에서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2년 작성된 내용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하듯 어린이법제처를 없애거나 “개인마다 사유를 들여다보고 간과할 건 간과해야 한다”고 고쳐주기 바란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의 5대 비리인사 공직 배제 원칙은 누가 강요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부터 스스로 약속한 것이다. 심지어 3월 26일 대전MBC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토론 때는 최성 예비후보가 “5대 비리 관련자 철저히 검증해 새 정부는 혁신적 정부임을 보일 의지가 있느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그 원칙 확실히 지키겠다”고 맹세를 했다. 자신의 말에 강박관념이 있다는 대통령이 그러고도 딴소리를 하는데 1년 후 개헌 약속은 믿어도 되나 모르겠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벌써 박근혜 정부의 오류를 닮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검색해 봐도 문 대통령은 5월 2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말한 것처럼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선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저의 노력이 허탈한 일이 됐다”며 “공약을 후퇴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강변을 하니, 노무현 정부 때 법무장관을 지낸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이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시정하지도 않는 황소고집까지 따라갈까 겁난다.
그럼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를 구하기 위해 ‘2005년 7월 이전 위장전입 무죄’로 인사 기준을 정한다면 도리가 없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부도덕하다고 매도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에게 정신적 사면과 함께 심심한 사죄를 전해야 할 것이다. ‘반(反)특권 공정사회’로 가는 첫발을 진창길로 시작하겠다면 그 역시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다. 단, 앞으로 혼자 깨끗한 척은 말아줬으면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70605/84717608/1#csidxeda9c280b55f9f0805350e4fe9e7e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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