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英 다이애나 20주기…사진으로 돌아보는 ‘비운의 왕세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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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문규 기자
31일(이하 현지시간)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의 20주기다. 다이애나는 지난 1996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음 해인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 알마 광장에 있는 자유의 불꽃 기념물 아래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20주기를 맞아 영국은 물론 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폴란드ㆍ불가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추모 열기가 뜨겁다. 영국 ITV가 지난 24일 방영한 ‘다이애나, 나의 어머니: 그녀의 삶과 유산’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서 왕세손 윌리엄(35)과 해리(32) 왕자는 샬럿 공주와 조지 왕자 등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머니 다이애나에 대한 기억을 말해준다며 “(살아계셨으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됐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다이애나비의 짧은 일생 36년을 사진으로 돌아봤다.
#1961년 7월 1일 출생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본명은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이다. 다이애나는 1961년 7월 1일 영국 샌드링엄에서 영국의 명문 귀족 가문인 스펜서 백작의 1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다이애나는 9살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택에서 가정교사로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이후 노퍽에 있는 킹스 린 실 필드 학교, 리들워스 홀, 웨스트 히스 여자학교에서 공부했다.
#1977년 찰스 왕세자와의 첫 만남
16세이던 1977년 잠시 스위스의 인스티튜트 알핀 비데마넷트에 다녔다. 여기서 미래의 남편인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났다. 하지만 당시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언니 새라와 사귀고 있었다.
#1981년 2월 6일 찰스 왕세자와 약혼
다이애나는 1979년 런던으로 갔다. 이곳에서 다이애나는 친구들과 함께 살며 가사도우미, 보모, 유치원 보조교사 등의 일을 했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기였다. 이후 1980년 찰스 왕세자를 다시 만났다. 다이애나는 1981년 2월 6일 찰스 왕세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다이애나는 2월 24일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
#1981년 7월29일 ‘세기의 결혼식’
1981년 7월 29일 전세계에 생방송되는 가운데 다이애나는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수천 개의 진주가 달린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와 7m 길이의 트레인(머리에 쓰는 베일)으로 치장한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이날 말 그대로 ‘세기의 결혼’을 했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2004년 NBC가 방영한 테이프에서 다이애나는 “결혼식날이야말로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82년 윌리엄 왕자,1984년 헨리 왕자 출산
다이애나는 결혼 1년만에 아들 윌리엄을, 다시 2년후 아들 해리를 낳아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
#1986년…사랑없는 결혼
지난 6일 영국 채널4가 방송한 ‘다이애나: 그녀의 육성(Diana: In Her Own Words)’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 5년 만에 사랑이 없는 결혼임을 확인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찾아가 흐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왕은 “나도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다이애나는 전했다. 다이애나는 “그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1992년 2월11일…불행한 결혼생활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진’
다이애나는 1992년 2월 11일 인도의 타지 마할(Taj Mahal) 앞에서 찰스 왕세자 없이 혼자 사진을 찍었다. 타지 마할은 샤 자한(Shah Jahan) 무굴제국 황제가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지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이러한 배경이 이곳에서 혼자 사진을 찍은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과 어우려져 이 사진은 ‘기념비적인 사진’으로 불리고 있다.
#파경설 전세계에 파다하던 1992년 11월 방한
다이애나는 지난 1992년 11월 2일부터 5일까지 3박 4일간 당시 남편이었던 찰스 왕세자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이 부부의 방한은 1989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이었다. 1883년 한ㆍ영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09년만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실 가족이었다. 당시 이 부부는 이미 파경설이 전세계에 파다했다. 방한 당시 찰스와 다이애나는 한동안 공식석상에 부부동반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11월 3일 오전에 찰스 왕세자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다.
#1994년 6월29일 찰스 불륜 공식 인정
1994년 6월29일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열린 디너 파티 때 다이애나가 입었던 블랙 플리츠 시폰 드레스는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이날은 찰스 왕세자가 TV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불륜을 인정한 날이었다. 어깨가 시원하게 드러난 오픈 숄더에 각선미를 완벽하게 살린 다이애나의 이날 드레스는 ‘복수의 드레스(revenge dress)’란 별명이 붙었다.
#1996년 8월28일 이혼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혼을 권했다.
다이애나 부부는 1996년 2월 이혼 합의를 공식 발표한 뒤 8월 28일에 이혼했다. 이혼 후 왕세자빈의 지위는 잃었으나 켄싱턴 궁전에서 거주할 권리와 ‘웨일스 공주(The Princess of Wales)’라는 공식 직함은 유지했다.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 왕자에 대한 양육권도 찰스 왕세자와 나눠 가졌다.
#이혼 후에도 자선ㆍ봉사활동 이어가
다이애나는 이혼 이후 왕세자빈 시절부터 펼쳐온 자선ㆍ봉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했다. AIDS 퇴치·아프리카 빈민 구호·적십자 활동, 대인지뢰 제거 운동 등에 적극적이었다. 다이애나는 에이즈ㆍ암ㆍ심장병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대인지뢰 추방 국제캠페인에 적극 관여해 앙골라ㆍ보스니아·르완다 등을 방문하기도했다.
#36세의 짧은 인생…1997년 8월 31일 사망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집트의 억만장자 도디 알파예드(Dodi Al-Fayed)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가던 중 뒤쫓아오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일어난 교통사고에 의해 36세로 사망했다. 당시 윌리엄 왕세손은 15세, 해리 왕자는 12세였다.
#1997년9월6일 장례식
장례식은 다이애나가 숨진 지 엿새째 되던 9월 6일 영국 왕실장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다이애나는 스펜서 가문의 영지에 안장됐다. 다이애나비가 숨진 직후 그의 거처였던 켄싱턴 궁 일대는 추모객들이 남긴 꽃들로 뒤덮였다. 프랑스 정부는 2년 동안의 조사를 거쳐 운전사의 과속과 음주 운전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음모론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년 동안 끊이지않는 추모열기
다이애나가 숨진 8월31일을 앞두고 그가 생전 거주하던 켄싱턴 궁에는 매년 추모 인파가 몰려든다. 올해도 이곳엔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사진과 꽃다발, 편지가 가득 놓였다. 로이터는 다이애나 추모열기에 대해 “20년이 지나도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는 기일을 하루 앞둔 30일 추모공간이 조성된 런던 켄싱턴궁 화이트정원을 방문, 어머니를 추모했다. BBC는 이 화이트 정원에 대해 “다이애나가 생전에 즐겨 입던 디자이너 캐서린 워커의 흰 엘비스 드레스처럼 하얀 정원은 다이애나의 생애와 스타일,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다이애나비의 짧은 일생 36년을 사진으로 돌아봤다.
#1961년 7월 1일 출생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본명은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이다. 다이애나는 1961년 7월 1일 영국 샌드링엄에서 영국의 명문 귀족 가문인 스펜서 백작의 1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다이애나는 9살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택에서 가정교사로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이후 노퍽에 있는 킹스 린 실 필드 학교, 리들워스 홀, 웨스트 히스 여자학교에서 공부했다.
#1977년 찰스 왕세자와의 첫 만남
16세이던 1977년 잠시 스위스의 인스티튜트 알핀 비데마넷트에 다녔다. 여기서 미래의 남편인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났다. 하지만 당시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언니 새라와 사귀고 있었다.
#1981년 2월 6일 찰스 왕세자와 약혼
다이애나는 1979년 런던으로 갔다. 이곳에서 다이애나는 친구들과 함께 살며 가사도우미, 보모, 유치원 보조교사 등의 일을 했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기였다. 이후 1980년 찰스 왕세자를 다시 만났다. 다이애나는 1981년 2월 6일 찰스 왕세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다이애나는 2월 24일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
#1981년 7월29일 ‘세기의 결혼식’
1981년 7월 29일 전세계에 생방송되는 가운데 다이애나는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수천 개의 진주가 달린 아이보리색 웨딩드레스와 7m 길이의 트레인(머리에 쓰는 베일)으로 치장한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이날 말 그대로 ‘세기의 결혼’을 했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2004년 NBC가 방영한 테이프에서 다이애나는 “결혼식날이야말로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82년 윌리엄 왕자,1984년 헨리 왕자 출산
다이애나는 결혼 1년만에 아들 윌리엄을, 다시 2년후 아들 해리를 낳아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
#1986년…사랑없는 결혼
지난 6일 영국 채널4가 방송한 ‘다이애나: 그녀의 육성(Diana: In Her Own Words)’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 5년 만에 사랑이 없는 결혼임을 확인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찾아가 흐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왕은 “나도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다이애나는 전했다. 다이애나는 “그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1992년 2월11일…불행한 결혼생활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진’
다이애나는 1992년 2월 11일 인도의 타지 마할(Taj Mahal) 앞에서 찰스 왕세자 없이 혼자 사진을 찍었다. 타지 마할은 샤 자한(Shah Jahan) 무굴제국 황제가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지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이러한 배경이 이곳에서 혼자 사진을 찍은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과 어우려져 이 사진은 ‘기념비적인 사진’으로 불리고 있다.
#파경설 전세계에 파다하던 1992년 11월 방한
다이애나는 지난 1992년 11월 2일부터 5일까지 3박 4일간 당시 남편이었던 찰스 왕세자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이 부부의 방한은 1989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이었다. 1883년 한ㆍ영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09년만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실 가족이었다. 당시 이 부부는 이미 파경설이 전세계에 파다했다. 방한 당시 찰스와 다이애나는 한동안 공식석상에 부부동반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11월 3일 오전에 찰스 왕세자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다.
#1994년 6월29일 찰스 불륜 공식 인정
1994년 6월29일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열린 디너 파티 때 다이애나가 입었던 블랙 플리츠 시폰 드레스는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이날은 찰스 왕세자가 TV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불륜을 인정한 날이었다. 어깨가 시원하게 드러난 오픈 숄더에 각선미를 완벽하게 살린 다이애나의 이날 드레스는 ‘복수의 드레스(revenge dress)’란 별명이 붙었다.
#1996년 8월28일 이혼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혼을 권했다.
#이혼 후에도 자선ㆍ봉사활동 이어가
다이애나는 이혼 이후 왕세자빈 시절부터 펼쳐온 자선ㆍ봉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했다. AIDS 퇴치·아프리카 빈민 구호·적십자 활동, 대인지뢰 제거 운동 등에 적극적이었다. 다이애나는 에이즈ㆍ암ㆍ심장병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대인지뢰 추방 국제캠페인에 적극 관여해 앙골라ㆍ보스니아·르완다 등을 방문하기도했다.
#36세의 짧은 인생…1997년 8월 31일 사망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집트의 억만장자 도디 알파예드(Dodi Al-Fayed)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가던 중 뒤쫓아오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일어난 교통사고에 의해 36세로 사망했다. 당시 윌리엄 왕세손은 15세, 해리 왕자는 12세였다.
#1997년9월6일 장례식
장례식은 다이애나가 숨진 지 엿새째 되던 9월 6일 영국 왕실장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다이애나는 스펜서 가문의 영지에 안장됐다. 다이애나비가 숨진 직후 그의 거처였던 켄싱턴 궁 일대는 추모객들이 남긴 꽃들로 뒤덮였다. 프랑스 정부는 2년 동안의 조사를 거쳐 운전사의 과속과 음주 운전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음모론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년 동안 끊이지않는 추모열기
다이애나가 숨진 8월31일을 앞두고 그가 생전 거주하던 켄싱턴 궁에는 매년 추모 인파가 몰려든다. 올해도 이곳엔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사진과 꽃다발, 편지가 가득 놓였다. 로이터는 다이애나 추모열기에 대해 “20년이 지나도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조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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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서소문사진관]英 다이애나 20주기…사진으로 돌아보는 ‘비운의 왕세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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