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집에 가도 됩니까?"…용감한 삼성 사장이 국감장서 손든 이유는?
● "역대급 증인들, 핫한 과기정통부 국정감사"
2017년 국정감사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 때는 잘만 하면 출입처의 이른바 얘기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누가 증인으로 나오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이 쏠리곤 합니다. 이번 과학기술정통부 종합 국정감사에 기대가 컸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비롯해 리차드 윤 애플코리아 대표와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 조용범 페이스북코리아 대표는 물론, 황창규 KT 회장과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까지. 모두 만나기 쉽지 않은 인물들인데다, 현안도 산적해 얼마나 많은 얘기가 나올지 기대됐습니다.
● "잘나가던 질의가 뚝!"…정회의 기술
욕심났던 국감의 시작은 다행히 순조로웠습니다. 오전 10시 10분 늦지 않은 시작에, 단말기 완전자급제며 산하기관 비정규직 문제며 정책질의가 이어졌습니다. 지난주 한차례 파행으로 겪었던 터라, 이번엔 '허탕하지 않겠구나'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20여 분쯤 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보이콧을 선언했던 신상진 위원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와, 일방적으로 정회를 선언하고 나가버린 겁니다. 국감을 복귀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회를 선언하는 방망이질 세방에, 출석한 수십 명의 피감기관 증인과 기자들은 언제 속개될지도 모른 채 자리 지켜야 했습니다. 남은 의원들도 돌발 행동에 "나갈 때도 맘대로, 정회도 맘대로 하느냐", "여기(회의장)가 안방이냐","와서 방해만 하고 간다"는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발언하는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 (사진=연합뉴스)● 네버엔딩 의사진행발언…이번엔 민주당이
한 시간쯤 지났을까. 국감이 다시 시작됐지만, 이번엔 의사진행발언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감 보이콧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일방적인 방문진 보궐 이사 선임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파행에 이르진 않았지만, 결국 지난 27일 방송문화진흥회의 국감처럼 의원들이 숭숭 빠진 반쪽짜리 오전 질의가 됐습니다. 기대했던 오전 국감은 이렇게 허탈하게 마무리됐습니다.
● "집에 가도 됩니까?"…용감한 증인의 질문
정치적 함의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감 파행을 시킨 것도 모자라 그날의 이슈를 되새김질하느라 당일 국감을 방해하는 건, 국감에 출석한 수십 명의 증인들을 무시한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장·차관을 비롯해 수십 명의 과기부 직원들은 업무 연관성도 없는 양측의 공방을 멀뚱멀뚱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렵게 국감장으로 불러낸 글로벌 기업의 대표들 역시 비좁은 의자에 앉아 남의 일인 양 정쟁을 관람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힘을 줘야 했던 역대급 증인들에 대한 질의는 무딘 칼날 같았습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제외한 상당수의 증인이 한 두 가지 질문을 받은 게 전부인데, 이마저도 형식적인 답변을 받는 수준이었습니다. 다른 의원의 질문을 듣기는 하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경우도 태반인 데다, 증인에게 답변 기회는 주지 않고 질문지만 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증인의 답변을 듣고 허점을 캐묻지 않다 보니, 증인들은 주어진 짧은 시간에 "예, 예. 검토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기 바빴습니다.
국감장에서 답변하는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사진=연합뉴스)힘 빠진 질의들로 국감이 자정을 넘기려는 순간, 보다 못한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육성으로 "아까 끝난 사람들은 (집에)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자기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고, 계속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니 참다못해 "집에 가도 되냐"고 들고 일어난 겁니다. 자정을 넘긴 뒤에도 질의를 이어가기 위해 신상진 위원장이 "증인들, 양해해주겠느냐"고 묻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한 동료 의원이 구원투수로 나서서 "3, 40분이면 끝난다"며 "기업이 가지는 큰 의미를 생각해 같이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고동진 사장은 국감이 끝나는 새벽 1시 20분까지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번 국감이 시작할 때, 여야 간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에 대해 고소하겠다 공언했습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대로 증인이 출석의 의무를 하지 않는다면 법적 책임을 단호히 묻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증인을 제대로 감사할 의무는 얼마나 성실히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증인 입에서 "집에 가도 되냐"는 질문이 터져 나올 정도의 국감, 그 구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국회의 영이 서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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