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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오진으로 '잃어버린 13년'...약 바꾸고 이틀 만에일어선 여성

오진으로 '잃어버린 13년'…약 바꾸고 이틀 만에 일어선 여성

                                  

 
[중앙포토]

[중앙포토]

 
3살 때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13년을 누워 지낸 여성이 약을 바꾸고 이틀 만에 일어나 걸었다. 병원의 오진 때문이었다. 간단한 치료만으로 호전될 수 있는 병이었지만 잘못된 처방과 치료로 이 여성은 자신 평생의 절반 이상을 누워 지냈다.

2001년 대구 한 대학병원서 뇌성마비 진단
13년 누워 생활하다 5년 전 오진 사실 알아
약 바꾸자 이틀 만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돼
2년여 손배소 끝에 법원은 1억원 조정 결정

 
1997년 태어난 서지영(가명)씨는 만 3세가 되도록 까치발로 걷는 등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했다. 2001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진료를 한 결과, 뇌성마비 중 '강직성 하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서씨는 수 차례 입원 치료도 받았다.
 
수 년간의 치료에도 서씨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2009년엔 경직성 사지 마비 진단을 받았고 2011년엔 상세불명의 뇌성마비 진단도 받았다. 국내 유명한 병원은 물론 중국과 미국의 병원들도 찾아가 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뇌병변 장애 2급에서 1급 판정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5년 전인 2012년 7월 17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중 물리치료사가 "뇌병변이 아닌 것 같다"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물리치료사의 의문 제기에 의료진은 서씨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 프리픽]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 프리픽]

 
의료진은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촬영한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분석한 결과 서씨가 앓던 질환이 뇌성마비가 아닌 '도파반응성 근육 긴장'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국립보건연구원 등에 따르면 이른바 '세가와병'이라고 불리는 이 병증은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의 이상으로 도파민 생성이 감소해 발생한다. 주로 소아에게 발생하며 소량의 도파민 약물을 투약하면 특별한 합병증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때문에 조기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서씨의 경우처럼 근육이 긴장되는 현상 때문에 뇌병변과 혼동하기 쉽다. 발의 근육 긴장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파킨슨병과 증상이 비슷하며 보행장애 증상을 보여 종종 혼동되기도 한다. 유전병이지만 소량의 도파민 약물을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합병증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실제 의료진이 도파민을 1주일 투여하자 서씨는 이틀 만에 걸을 수 있게 됐다. 일주일이 지나니 13년간 누워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 프리픽]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 프리픽]

 
하지만 뒤늦게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면서 그동안 겪은 피해는 막심했다. 오랜 기간을 누워 지내며 척추측만증이 생겨 수술도 했다. 이에 따라 서씨 가족은 2015년 10월 13일 해당 대학병원 학교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씨 가족 측은 잘못된 진단에 의한 후유장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주장했고, 대학병원 측은 2001년 첫 진단을 내릴 당시만 해도 희귀병인 세가와병이라는 것을 알기 어려웠기 때문에 과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소송은 2년간 첨예하게 이어졌다. 
 
대구지법 제11민사부는 학교법인이 서씨 가족에게 1억원을 손해배상하라며 강제 조정 결정을 내렸다. 양측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였다. 원고 측에선 의료진 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이나 피해 정도 산정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반대로 피고 측에선 오진이나 과실이 인정되면 병원 측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조정 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구법원. [중앙포토]

대구법원. [중앙포토]

    
재판을 이끈 장영수 변호사는 "대학병원 측은 당시 의료 기술과 학계 연구 상황에선 세가와병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조정안을 받아들였다"며 "판결은 아니지만 의사에게 진료 시 희귀병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준 사례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고 만약 병원 측의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기가 어려워 만약 조정 결정을 한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대법원까지 가게 됐을 사건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오진으로 '잃어버린 13년'…약 바꾸고 이틀 만에 일어선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