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앞에선 작아지는 집권자…中國夢, 한국부터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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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
淸, ‘조선은 속국’ 美에 명기하려… 135년 지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대착오 세계관 깔린 사드 보복… 中 ‘마늘 분쟁’ 때도 韓무릎 꿇려
중국 앞에선 작아지는 집권자… 中國夢, 우리가 더 깊이 빠졌나
박제균 논설실장
불편하지만 치욕의 역사를 들춰보자. 1882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최초의 무역협정이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이다. 여기에는 조선을 청의 ‘속방(屬邦)’으로 명기하고 있다. 종주국과 종속국의 관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같은 해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됐다. 청의 이홍장이 조선을 대리해 조약을 체결했다. 이홍장은 조약 1조에 조선이 청의 속방임을 명기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자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서라도 조선이 속국이라는 점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 미중(美中)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이다. 무려 1세기 하고도 35년이 됐지만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에, 한국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행태는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왕조 시절 중국은 한국을 식민지로 여기지 않고 내치에도 간여하지 않았지만, 독립국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인민이 주인’이라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세운 나라의 지도자가 왕조 시절의 세계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비이성적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도무지 현대 국제사회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 중국이 단순히 안보 측면에서 이렇게 반발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무리한 사드 보복의 근저에 아직도 중국과 주변국을 대국(大國)과 소국(小國)으로 나누고 소국은 대국의 질서에 편입돼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이 짙게 묻어난다.
중국이 이렇게 한국을 막 대하는 데는 우리 잘못도 크다. 한국의 집권자들은 조선 국왕이 중국의 책봉을 받던 폐습의 DNA라도 물려받은 듯, 중국을 의식하고 어려워했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 ‘굴욕 외교’에 난리를 쳤지만, 전임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중반기까지 문 대통령 못지않게 중국에 치우쳤다. 문 대통령이 방중 기간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미국에 가서도 그런 표현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정치인들뿐이 아니다. 2000년 ‘마늘 분쟁’을 돌아보자. 한국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대해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산 이동전화 등에 대해 수백 배의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결국 한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한국을 무릎 꿇려본 경험이 있는 중국이 사드 보복으로 ‘길들이기 외교’를 자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중국에 북한은 혈맹이자 국경을 맞댄 나라다. 중국의 생존과 국익에 한국보다 더 중요한 나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주북한 대사는 차관급을 보내고 경제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한국에는 국장급 이하를 보내는 외교적 결례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주한 대사를 만나려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줄을 선다. 이러니, 굳이 격을 높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다. 수천 년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지금은 우리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북핵 문제의 열쇠를 쥔 나라다. 당연히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시당하면서까지 잘 지내려 해선 안 된다. 함부로 해도 찍소리 못 내는 사람이나 나라의 목소리는 묻히기 십상이다. 중국은 2050년까지 미국을 앞서겠다는 중국몽(中國夢)에 빠져 있다. 정작 한국이 중국에 대한 미몽(迷夢)에 더 깊이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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