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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광현]‘
김광현 논설위원
일부 강남 고급 아파트 값 오름세가 광풍(狂風) 수준이다. 자고 나면 1억 원씩 오르고, 압구정동 대치동 반포 등 강남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번호표를 들고 매물 나오기만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줄지어 있다고 한다. 한 채 나오면 순서대로 한 채 채가는 식이다. 몽둥이로는 못 때려잡는다
정부의 서슬 퍼런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들 아파트 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이유는 많다. 금리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경제가 발전하면서 돈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 그보다 자식들을 좋은 여건 속에서 공부시켜 좋은 대학 보내고 싶고, 병원 백화점 체육시설이 많으며 바둑판처럼 교통이 뚫려 있어 생활하기 편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주범이라면 주범이다. 예컨대 작년 6월 자사고 특목고 폐지 방침이 발표된 이후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곳 가운데 하나가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 있는 R아파트다. 우연찮게도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욕구를 특별세무조사, 특별사법경찰의 몽둥이로 때려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겁주기식 부동산투기 일제단속도 이미 학습이 끝난 메뉴다. 분당신도시가 분양될 무렵인 1990년대 초반 당시 건설부 직원과 취재차 특별단속 현장에 함께 나간 적이 있다. 단속 정보가 새나갔는지 중개업자들은 대부분 잠적해버리고 어쩌다 문을 열고 있던 중개업소 사장으로부터는 “거래가 뚝 끊겨 요즘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는 대답만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꼭 강남 집값을 잡고 싶으면 이 지역이 가진 희소성을 해소해야 한다.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려 결과적으로 강남 집값의 하락을 유도하는 게 최선이다. 그게 강남 집값에 대한 진짜 복수다. 또 그래야 ‘여차하면 강남 집값도 폭락할 수 있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학습효과를 줄 수 있다. 이 원리를 시장은 알고 있다. 실제로 보금자리주택이 보급되는 몇 년간 강남 집값은 조용했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임기 초 2월과 임기 말 2월을 비교한 강남 아파트 값은 노무현 정부 67%, 이명박 정부 ―6.5%, 박근혜 정부 11.5%였다.
그런데도 이 정부 들어 발표되는 정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수요억제책이다. 고급 아파트에 고춧가루를 확 뿌려 가치를 떨어뜨리고 결국 가격을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초과이익 환수, 거래 제한, 보유세 인상 등이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정부 때 “강남이 불패(不敗)면 대통령도 불패(不敗)다”라며 내놓았던 정책의 재판이다.
이제는 좀 더 넓고 길게 봐야 한다. 가진 자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을 갖고 집값 때려잡기에 나서면 또 한 번의 패배 기록을 더할 뿐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데 더 많은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주택 격차를 줄여야 한다면 높은 것을 굳이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낮은 것을 끌어올려 격차를 줄이고 위화감을 줄여 나가야 한다.
수단들은 좀 더 세련되고 정교해져야 한다. 판자촌 철거 반대 운동을 하던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은 주택정책에서 한발 물러나고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 출신이면서 정책 경험이 풍부한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맡기는 게 현실적인 차선책쯤은 될 것 같다. 김 수석이 2011년 ‘부동산은 끝났다’는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참여정부는 왜 집값을 못 잡았나?’라며 실패를 인정하는 대목도 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부동산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이 끝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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