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빨라 좋겠다고? 좋은 시절 다 갔다
논설위원이 간다 - 안혜리의 뉴스의 이면
신세계, 주35시간 근무제 도입
'워라밸'실험 과연 성공할까
사원 여러분, 퇴근하십시오. "
신세계, PC강제 셧다운으로 퇴근 독촉
야근 못하니 업무 효율성 높일 수밖에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니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 당장 "가족과의 저녁식사 횟수가 늘었다"거나 "학원 수강신청을 했다""운동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근무시간 단축이 퇴근 후 삶의 모습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직장 내 업무방식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가령 구내식당은 새해 들어 전에 볼 수 없던 긴 줄이 연일 생긴다. 주35시간 시행 전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은 지금도 1시간이 보장돼 있지만 자발적으로 식사 시간을 줄여 서둘러 근무에 복귀하는 사람이 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남곤 신세계 그룹홍보팀 치프파트너(부장)는 "시행한지 얼마 안돼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가보면 줄이 엄청 길어 이용자가 늘어난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입사 7년차인 장정우 가공식품 바이어(대리)는 "시행 전에는 업무량이 같은데 과연 칼퇴근이 가능할까 우려했다"며 "오후 5시에 퇴근하려면 무조건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일체 딴짓 안하고 업무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또 "개인 업무 뿐 아니라 회의도 체감할만큼 타이트해졌다"고 덧붙였다. 쓸데없는 취합 보고서가 없어진 건 물론이요, 보고서로 대체할 수 있는 미팅은 아예 잡지 않을 뿐 아니라 느긋한 분위기에서 "할 말 있으면 한마디씩 해보라"던 과거의 느슨한 회의도 사라졌다고 한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수철 이마트 성수점 캐셔파트장도 "매장 영업시간이 1시간 줄어들면서 오히려 일의 집중도가 확 올라갔다"고 말했다. 신세계의 한 임원 역시 "미팅 뿐 아니라 모든 일정이 어찌나 촘촘한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월요일 출근 후 첫 회의는 으례 '주말에 뭐 했는지' 묻는 걸로 시작해 정작 심도있는 결론은 못내린채 회의용 보고서 뒤적이다 끝나기 일쑤였다"며 "어떤 날은 어영부영 점심시간이 되면 느긋하게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들어와 몇 시간 일하고, 또 그러다보면 어차피 일찍 퇴근 못하니 저녁이나 먹고 들어와 야근이나 하자라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솔직히 있었는데 이젠 아무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시간 늘어 좋지만
업무량 같아 구내식당 가고 담배도 줄여
한국 근무시간 길지만
생산성 떨어지는 '야근의 역설'
신세계가 주35시간 근무시간을 들고 나온 표면적 이유는 장기근무가 만연한 근로환경을 혁신해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무 효율성 제고라는 목적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한국 직장인의 근로시간은 길기로 악명높다.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2016년 기준)은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한국보다 더 많이 일하는 나라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생산성이다. 이렇게 오래 일하는데 정작 한국 근로자가 시간당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33.1달러로, OECD 평균(47.1달러)에도 한참 못미치는 거의 꼴찌 수준이다. 생산성이 가장 높은 아일랜드(83.2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맥킨지와 함께 2016년 100개 기업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했을 당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도 야근이었다. 응답자 43%가 주 3일 이상 야근을 하는 등 평균 2.3일 야근을 하며 하루 평균 11시간이나 회사에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시간은 5시간 32분에 불과했다. 더욱 심각한 건 야근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생산적 업무 시간이 줄어드는 '야근의 역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강혜진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조직문화 담당)는 "젊은 세대의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같은 야근 문화를 그대로 두면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며 "더이상 야근을 강요할 수 없는 만큼 효율을 높여 근무시간 감축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업무방식이 변하지 않은채 야근하지 말고 일찍 퇴근하라는 말만 해서는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성공의 관건은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것이냐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과거 여러 기업이 퇴근을 독려하며 야근 줄이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룹 본사와 주요 계열사 인사팀이 주축이 돼 지난 2년 동안 가동해온 '근로시간 단축 TF'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 업무의 중요도와 빈도를 리스트업해 하위에 있는 건 자동화하고 구조적 문제는 바꾸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방침이다. 그중 하나가 임원 일정을 인트라넷에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고에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는 것이다. 이외에 매장에선 물류 시스템 개선으로 효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배광수 이마트 인재개발팀장(부장)은 "업무 효율화와 생산성 높이기가 이번 근무시간 단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재곤 홍보담당 상무도 "일을 줄이는 게 아니라 압축적으로 일하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갈 게 분명하다면 빨리 가는 게 옳다는 판단에 근로시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신세계의 워라밸 실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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