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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오히려 개헌 안되게 몰아가는 文대통령, 왜 그럴까


[김진국의 퍼스펙티브] 헌법은 혁명 공약이 아니다

                


 
대통령의 개헌 발의
전직 대통령 한 분은 구치소에, 또 한 분은 그 문턱에 서 있다. 대통령도 죄가 있으면 처벌받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기가 막히지 않는가. 생존한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교도소를 거쳤거나,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왜 이런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나.
 

여야 합의 없이는 개헌 어려워
일방적 밀어붙이기보다 합의해야

제왕적 대통령 선거에 매달려
대화와 타협, 민주정치 사라져

정책 연속성 무시한 치적 쌓기
5년마다 뒤집기, 공무원 의욕 잃어

출신 지역이 좌우하는 대통령 후보
입양하기 반복하는 게 민주주의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슷한 시기 수감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 당시 상황을 자세하고 절절하게 써놓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 그 일을 겪고 보니 적절한 대응이었는지 후회가 많이 남는다. 너무 조심스럽게만 대응한 게 아닌가. 대통령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대변해 드리지 못한 게 아닌가…. 정면으로 ‘전직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은 비열한 정치적 수사다!’라고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때로는 수사를 아예 전면 거부한다든지 맞대응을 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회한이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다. 그렇지만 나머지 대통령들은 왜 그런가. 한국 사람이 원래 부패해서? 교도소에 갈 사람만 대통령으로 뽑아서? 물론 본인들이 잘못한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 제도에는 문제가 없는가.
 
# 왜 개헌하려 하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실 개헌 논의는 이런 상황을 개탄하면서 비롯했다. 개헌을 이야기하려면 초심(初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참한 대통령들의 말로, 바로 그 정치 악순환을 끊으려는 노력이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른 결과이건, 정치보복의 악순환이건 그 원인을 찾아 수술하자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상식어가 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을 제왕적이라고 보지 않지만, 구조적으로 제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권 분립의 한 부분인 법원은 대법원장부터 문 대통령 생각대로 바뀌고 있다.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언론과 경제단체까지 주파수를 맞춰간다. 심지어 헌법까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에 좌우된다.
 
그러니 정치권은 대통령 선거에 목숨을 건다. 이 선거만 이기면 모든 것을 갖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여당은 거수기가 되고, 야당은 발목만 잡는 행태를 반복한다. 5년 뒤 정권 교체만이 지상목표다. 이런 구조에서 ‘대화와 타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대급부가 없는데 누가 움직이겠나. 선거에서 진 그다음 날부터 오로지 다음 선거를 향해 달리게 돼 있다.
 
장기(將棋)에서 장군이 잡히면 게임 끝이다. 차(車), 포(包)나 상(象), 졸(卒)이 아무리 많이 남아 있어도 소용없다. 다른 장기 알은 오로지 장군을 호위하는 장치일 뿐이다. 바둑은 다르다. 잘난 알도, 못난 알도 없다. 놓인 위치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 알이 크건, 매끈하건, 잘생겼건 소용없다. 승부는 모든 알의 집합된 가치가 결정한다.
 
# 장기 국가전략을 죽이는 임기
 
공무원의 의욕이 이전만 못하다고 한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5년마다 오락가락한다.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영혼을 챙길 방법이 없다. 정치권에 줄을 서려는 눈치꾼만 바쁘다. 지난 몇 정부만 비교해도 5년을 넘기는 정책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성장’은 어떻게 됐나.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은. 시·도마다 한 곳씩 개설해 대대적인 개소식을 벌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창조혁신센터’는 어디 갔나. 장기적으로 추진할 정책들도 임기 5년에 꾸겨 넣어 끝내려 한다. 자신의 치적을 부각하기 위해 이전 정부의 딱지가 붙은 사업은 더 열심히 지워버린다.
 
가장 심각한 것이 대북정책이다. 후보마다 새로운,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는, 정책을 제시한다. 과거 북한 선전 매체들이 남쪽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정치인은 김정일을 못 만나 안달이라고 떠든 적이 있다. 북한은 그런 사정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외교적 합의도 정권이 바뀌면 뒤집어버린다. 국제 신용보다 국내 정치가 먼저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5년이면 어차피 물러난다. 대통령 책임제가 아니라 ‘대통령 무책임제’라는 말이 전혀 엉뚱한 게 아니다. 1987년 개헌 협상을 벌인 양 김 씨가 한번 대통령 선거에 실패하더라도 한 번은 꼭 대통령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타협한 결과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국회의원과 지방정부의 임기는 모두 4년이다. 그런데 유독 대통령 임기만 5년이다. 연임을 허용하면 단 한 번의 대통령선거 실패로 8년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 나이 60(김영삼)-63세(김대중)로 8년 이후를 기약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그래서 만든 비정상적 임기다.
 
# 이게 민주주의냐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후계자를 많이 고민했다. 3당 합당은 호남 고립구도 만들기다. 영남의 기득권세력(민정당)과 민주화 세력(민주당·김영삼·YS), 여기에 충청권(신민주공화당·김종필·JP)이 뭉쳤다. 당시 유권자 수를 보면 영남권이 737만명으로 호남 334만명의 갑절이 넘었다.
 
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DJ가 당선된 건 기적에 가깝다. 하필 여권 성향의 두 후보(이회창·이인제)가 영남이 아닌 충청권 출신이었다. 충청권의 맹주였던 JP는 DJ 손을 들어줘 충청권 표를 몰아갔다. DJ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임기 내내 후보를 물색했지만, 호남권 인사는 아예 고려 대상에 넣지 않은 이유다.
 
결국 경남 김해 출신 노무현 후보를 밀었다. 그 이후 영남 출신 후보 입양은 전통이 되어 간다. 후보는 영남 출신, 결정은 광주에서 한다. 많은 곡절을 거쳤지만, 문재인 후보를 다시 밀었다. 호남 출신 정동영 후보는 직선제를 다시 도입한 이후 가장 큰 표차(48.7%대 26.1%)로 떨어졌다. 보수진영의 이회창 후보가 15.1%나 가져갔는데도. 심지어 탄핵 쇼크 속에 치러진 19대 문재인(41.1%)-홍준표(24.0%) 후보보다 더 벌어졌다. 호남 출신으로는 승산이 없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오죽하면 19대 대선 1위에서 4위 후보까지 모두 영남 출신 후보겠나. 지역주의가 옅어진다고 하면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낙인처럼 남아 있다. 특정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후보가 될 수 없다면 말이 되는가. ‘이게 민주주의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당연하다. 분권형이 되면 연정이 가능하다. 선거법 개정과 개헌이 같이 가는 이유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개헌 목소리가 되었다.
 
# 통과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개헌 논의는 이미 오래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권력구조만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했다. 그러나 임기 초에는 현직 대통령이 반대하고, 임기 말에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반대하는 악순환을 계속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반대하자 국회 복도에서 직접 발의하려고까지 했다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회고했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회에서 개헌안까지 만들었다. 역대 국회의장들이 개헌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임기 중 개헌을 추진했다. 각종 학회에서도 10여년 간 논의를 계속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직접 발의하겠다고 한다. 20일부터 사흘째 개헌안을 발표하고 있다. 헌법 130조를 보면 대통령이 발의하건, 국회가 발의하건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재적 국회의원(293석)의 3분의 2(196석)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121석)만으로는 처리가 안 된다. 자유한국당(116석)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다 찬성해도 부결이다.
 
국회에서 여야 사이에 합의가 안 되면 개헌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정말 개헌할 뜻이 있다면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이 발의하면 국회에서는 찬반 표결만 하지 수정할 수도 없다.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협상하려면 국회에서 해야 한다. 87년 헌법도 사실상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개입했지만 여야 협상으로 마무리했다. 지금 수순은 오히려 개헌이 안 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왜 그럴까. 모든 책임을 야당에 돌릴 수 있다. 선거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 촛불 정신은 협치
 
헌법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을 요구한다(130조①). 그러고도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이 참여해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헌법을 고칠 수 있다(130조②). 나라의 기본인 헌법을 고치려면 합의하라는 뜻이다. 다수의 힘으로,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최대한 많은 국민, 많은 정파가 동의하는 개헌을 하라는 것이다.  
     
제헌 이후 대통령이 주도한 개헌 치고 제대로 된 게 거의 없다. 4.19 직후 내각제(3차) 개헌과 87년 국회가 주도한 여야 합의 개헌을 제외하면 모두 대통령이 주도한 개헌이다. 제헌의회는 내각제 개헌안을 만들었지만 이승만 박사의 반대로 어정쩡한 간선제 대통령제가 됐다. 그 뒤 이 대통령이 주도해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했다. 4, 5차 개헌은 5·16 후 ‘국가재건최고회의(혁명위원회)’가 주도했다. 그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 연장을 위해 3선개헌, 유신 개헌을 했다.
 
촛불 정신도 협치(協治)다. 권력자 한 사람의 전횡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헌법은 정쟁(政爭)에 이용할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선거에 유불리를 따져 고치고, 득표 전략으로 써먹을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초읽기로 처리할 일도 아니다. 합의가 안 되면 차라리 미루는 편이 낫다. 대통령의 개헌안을 바로 발의하지 않고, 본격적인 공론화의 계기로 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