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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국립 박물관의 4-3 특별전, 초입부터 '남노당 호소문'



국립 박물관의 4·3 특별전, 초입부터 '남로당 호소문'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 2018.04.02 03:00 | 수정 : 2018.04.02 09:48   

[제주 4·3사건 70년]

'아픈 역사' 제주 4·3사건 70주년… 화해·치유 취지와 달리 편향 논란

무장반란 일으킨 남로당 입장을 대변하고 면죄부 주는 전시 많아
사건 장기화 책임도 군경에 전가

관람객 "남로당역사박물관 같다"
박물관측 "정부 보고서 따랐는데 잘못된 사실 있으면 바로잡을 것"

제주4·3사건 70주년을 앞두고, 30일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이 개막했다.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전시다. 희생자의 비극과 유족의 아픔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국가 기록물, 사료, 희생자 유품 등 1차 자료와 관련 서적, 4·3을 형상화한 유화·목판화·걸개그림·비디오 등 200여 점을 선보인다. 주진오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제주4·3이 정치와 이념을 떠나 화해와 치유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로당이 4·3무장반란을 일으키면서 배포한‘반미구국 투쟁에 호응 궐기하자’는 호소문.
남로당이 4·3무장반란을 일으키면서 배포한‘반미구국 투쟁에 호응 궐기하자’는 호소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특별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위치에 크게 걸려 있다. /오종찬 기자
제주4·3특별전에 마련된 화가 강요배의‘동백꽃 지다’영상 공간.
제주4·3특별전에 마련된 화가 강요배의‘동백꽃 지다’영상 공간. 4·3사건을 그린 50여 점 회화를 슬라이드 영상으로 편집한 작품을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서면 어리둥절해진다. 4·3사건에 대한 왜곡된 설명 때문이다. 사건 발발에서 초기 진압 과정까지를 다룬 부분이 특히 그렇다. 4·3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저지하려고 남로당이 무장 반란을 일으키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된 비극이다. 한데 특별전엔 남로당 입장을 대변하는 듯 보이는 전시물들이 많다. 대표 전시물인 '무장대의 호소문'은 남로당 인민유격대가 경찰지서 12곳을 습격해 경찰관을 살해하고 선거 관계자와 우익단체 인사를 테러하면서 뿌린 유인물이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제주도 유격대는 인민들을 수호하며 동시에 인민과 같이 서고 있다…양심적인 경찰원·청년·민주인사들이여! 어서 빨리 인민의 편에 서라. 반미구국투쟁에 호응 궐기하라."

그 옆에 있는 전시 해설도 남로당의 관점에 서거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4·3사건을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무장투쟁을 결행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대한민국의 국립 현대사박물관이 반(反)대한민국 반란 집단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 때 일어난 경찰과 주민의 충돌에 대해서는 "당시 3·1절 행사는 전국적으로 좌익과 우익 시위대가 충돌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경찰이 가해를 하고 도민이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에 민심을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주도 3·1절 기념행사와 시가행진을 남로당이 준비했고 외곽 단체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압수된 남로당 자료가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제주4·3 70주년 특별전의 역사 왜곡 논란
4·3사건이 장기화된 책임을 미군정과 진압 군경에 전가하는 것도 사실과 어긋난다. "4월 28일 국방경비대 9연대 김익렬 연대장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 간의 평화 협상이 열렸다. 전투의 점차적 중지, 무장해제, 주모자들의 신변 보장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사흘 뒤 평화 협상을 훼방하기 위한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오라리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협상은 깨졌고 미군은 총공격을 명령했다." 진압군과 무장대 사이에 맺어진 합의를 경찰이 깼다는 것이다. 김익렬의 회고록에 근거한 이런 설명은 토벌 과정에서 노획한 남로당 무장대의 투쟁 보고서와 미국·북한 자료를 보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 합의는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익렬은 남로당이 군에 침투시킨 프락치들의 사주를 받았다. 무장대는 단선단정 반대, 경찰 무장해제와 토벌대 철수, 피검자 석방을 요구했고 미군정과 군경은 이를 거부했다. 김익렬은 거센 비판을 받고 해임됐다.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시간을 번 남로당 무장대는 공격을 계속했고 대한민국 정부에 선전포고까지 했다.

1층 영상실에 마련된 강요배 화가의 '동백꽃 지다' 슬라이드 영상은 50여 점의 그림과 해설이 4·3사건을 남로당과 연결시키지 않고 점령군인 미군에 맞선 제주 민중의 항쟁으로 그리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본 한 인사는 "
특별전 앞부분은 마치 남로당역사박물관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근거했다고 밝혔다. 전시 관계자들은 "전시 가운데 논쟁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일단 정부 보고서에 따라 전시를 구성했고 전시 중이라도 사실과 어긋나는 잘못이 발견되면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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