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사회

민생은 송곳이다

        


[오늘과 내일/천광암]민생은 송곳이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18-05-07 03:00수정 2018-05-07 03:00


트랜드뉴스 보기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이달 10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꼬박 1년이 된다. 참여정부 2기에 해당하는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 등의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와 공통점이 많지만 경제 환경이나 성과는 크게 다른 것 같다.

2003년 2월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자칫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LG카드 사태와 씨름하면서 집권 첫해를 보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둘러싼 거시경제 환경은 좋은 편이다. 반도체 ‘슈퍼 호황’ 등에 힘입어 코스피 상장 기업들(12월 결산법인 기준)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 100조 원 시대를 열었다. 돈을 많이 번 기업들이 예상보다 많은 세금을 낸 덕분에 나라 곳간은 차고 넘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대응력도 참여정부 때보다 나아진 모습이다. 참여정부가 냉탕 온탕을 오가면서 5년 내내 부동산에 끌려다녔던 반면 현 정부는 1년 만에 집값의 미친 상승세를 일단 꺾어 놨다. 너무 노동계에 편향돼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해외 매각을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문 대통령이 “절대 정치적 논리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메시지를 던져 제동을 건 것이 비근한 예다. 적시에 나온 이 메시지는 한국GM의 노조가 정상화 협상의 판을 깨지 않도록 하는 데도 일조했다.

문제는 자영업자와 실업자, 중소기업 등 민생 분야로 눈을 돌리면 닮은꼴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갖다 놓고 챙기고 있지만 3월 실업자 수는 18년 만에 최고 수치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3.1%의 비교적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영세자영업자가 몰려 있는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은 0%대의 미미한 성장률을 보였다. 

역설적인 사실은 선의(善意)에서 나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민생고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된 식당이나 소매점들이 폐업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집값을 잡기 위해 도입한 대출규제정책은 신용도가 낮은 영세자영업자들을 사채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집을 담보로 맡기고 사업자금을 빌리는 것이 많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업 때리기로 변질된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기업 하려는 의욕을 꺾어 청년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자부심이 매우 강한 성격이었다. 경제적 공과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정책의 미흡한 점을 성찰하기보다 평가에 인색한 언론을 탓했다. 하지만 그랬던 노 전 대통령도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였던 말이 민생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차 신년 특별연설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민생이라는 말은 송곳이다. 지난 4년 동안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자신만만했던 노 전 대통령조차도 실패를 뼈저리게 자인했을 만큼 민생정책은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코드가 맞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로드맵을 253개나 만들었지만 민생을 개선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명분이 거창하고, 포장이 아름다운 정책 일수록 민생에는 거꾸로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대출규제, 경제민주화는 시대 흐름상 필요한 정책들이다. 다만 이런 정책들이 민생에 주름살을 주고, 문 대통령을 찌르는 송곳이 되지 않게 하려면 세심한 완급 조절과 선제적인 부작용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