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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장하성 아파트 경비원들 "洪 찾아가 애원하려 했다"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장하성 아파트 경비원들 "洪 찾아가 애원하려 했다"

 
경비원 감축 추진하는 ‘장하성 거주 아파트’
경비원 감원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선수 숙소로 사용된 뒤 일반인에게 분양됐다. [변선구 기자]

경비원 감원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선수 숙소로 사용된 뒤 일반인에게 분양됐다. [변선구 기자]

고용 상황 악화를 보여주는 경제 지표가 잇따라 나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된 지난달 중순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가 돌연 화제가 됐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사는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현재 인원의 절반쯤으로 감축하려 한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장 실장은 줄곧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한 번에 5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에 게시된 안내문에는 ‘목적: 최저임금 인상으로 증가되는 경비비 절감’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문제가 없다고 우기기 전에 당신 아파트 경비원 얘기부터 들어 보라”는 비난이 장 실장을 향해 쏟아졌다. 이 아파트의 경비원 문제는 어떻게 됐을까. 그곳에 가 봤다.
 

1일부터 15일까지 주민투표
통과되면 경비원 45% 감원

올해 주민 추가 부담은 없었지만
매년 올려야 하는 현실이 고민거리

“강남에 살 이유 없다”는 장 실장
그의 집 최근 1억5000만원 뛰어

#‘구조조정’ 투표는 진행 중
 
각 동(棟) 입구 경비실 앞에 투표함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경비시스템 개선에 대한 안내문’은 이 투표함의 용도를 설명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의 풍경이다. 경비원 감축 찬·반 주민투표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사는 동에도 가 봤다. 24세대 중 20세대가 투표를 마친 상태였다. 투표함 옆에 투표용지를 넣은 세대주들이 자신의 이름을 써 놓은 종이가 있었는데, 왼편 하단에 장 실장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 옆에 서명이 돼 있기도 했다. 그가 찬·반 중 어디로 표를 던졌는지는 한쪽으로 만장일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지난 1일에 시작된 투표는 15일에 끝난다. ‘경비 시스템 개선안’ 찬성표가 과반이면 경비원 52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현재 인원(116명)의 45%에 해당한다. 경비원을 줄이면 각 세대가 매달 적게는 6만5040원, 많게는 11만2980원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안내문에 그렇게 적혀 있다. 장 실장이 사는 138㎡형(52평 타입)의 경우 다달이 9만원이 절약된다. 이 주민투표는 특이하게도 아파트 소유자에게만 투표권을 준다. 세입자는 제외된다. 경비원들은 관리비에 좀 더 민감한 세입자들이 투표권을 갖지 못해 다행이라고 했다.
 
#“월급 11만원 올랐어요”
 
투표함이 놓인 이 아파트 입구 모습. [변선구 기자]

투표함이 놓인 이 아파트 입구 모습. [변선구 기자]

약 2시간 동안 7명의 경비원을 따로따로 만났다. 그중 둘은 “잘 모른다”와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나머지 5명과 나눈 얘기를 종합하면 상황은 이렇다.
 
올해 초 최저임금이 인상(16.4%)된 뒤 경비원 월급이 11만원 올랐다. 176만원에서 187만원(인상률 6.25%)이 됐다. 세금 등을 공제하기 전 금액이다. 정문·후문 근무자 월급은 이보다 10여만 원 더 많다. 임금이 올랐지만, 주민들 부담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정부가 월 보수액 190만원 미만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자에게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 덕택이었다. 문제는 내년, 후년, 그리고 그 뒤였다. “앞으로 최저임금이 계속 많이 오른다고 하고 정부 지원금이 계속 나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주민들이 경비원을 줄이자고 나서게 된 거죠.” 한 경비원의 말이다. 내년에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로 정해졌다.
 
최근 보도로 이곳 주민들이 상당히 야박한 것으로 비쳤지만, 경비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라인별 경비실을 그대로 두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곳이었다. 한 동의 입구가 3개면 경비실이 3개가 있고, 각 경비실에 24시간씩 격일로 근무하는 두 명의 경비원이 있다. 이렇게 돼 있는 아파트 중 상당수는 이미 경비원을 각 동에 한 명만 두거나 라인 두세 개당 한 명씩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새 아파트들은 아예 설계 때부터 경비 인력을 최소화하는 구조로 만든다. “몇 년 전에도 다른 아파트들처럼 경비실 통합하는 방식을 놓고 주민투표를 했는데, 경비원들 내쫓는 데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아서 부결됐어요. 이곳 주민들은 그래도 양반들이에요.”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는 한 경비원이 이렇게 설명했다. 이 평화를 깬 것은 무엇인가. 현실을 모르는 정책 입안자일까,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사회구조일까. 아니면 자동문·폐쇄회로(CC) TV 등의 새로운 문물일까.
 
#“홍준표 찾아가려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부 동 대표들이 경비원 줄여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홍준표 대표한테 가서 막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어요.”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도 이 아파트에 산다. 지금은 미국에 체류 중이다. 진보 진영 정치인과 사회 운동가들에 따르면 한국 저임금 노동구조의 ‘원흉’ 중 하나는 보수 정치 세력이다. 그런데 일부 경비원이 홍 전 대표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애원하려 했다고 한다. 극단적 아이러니다.  
 
한 경비원은 “이 말은 꼭 써 달라”고 당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월급이 많이 오르면 좋지요. 그런데 ‘아, 이러다가 잘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안 잘리고 오래 다니는 겁니다. 여기 경비 정년이 63세입니다. 그 뒤에는 촉탁으로 2년 더 있을 수 있고요. 월급 많이 안 올라도 좋으니 70세 정도로 정년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 중 몇몇은 제법 먹고살 만하지만 대부분은 가족들 먹여 살리는 가장입니다.”
 

다른 경비원한테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젊은 사람들 일할 데 없고 집값은 자꾸 뛰니 한숨만 나옵니다. 자식들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는 거죠. 이 아파트에 높은 데서 일하는 분 많은데 이런 현실 어느 정도나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딴 세상 얘기 같겠죠.” 아파트를 나서며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렀는데, 그곳 주인은 “52평형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8억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주민들끼리 정해놓은 값이 29억5000만원이다. 며칠 뒤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최근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 이유가 없다. 나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며 딴 세상 사람처럼 말했다.
 
#서울 아파트 5.2% 경비원 감축
 
서울노동권익센터(서울시청이 설립)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 5.2%(3245개 단지 중 169개)가 경비 인력을 줄였다.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을 비교해 얻은 수치다. 스무 곳에 한 곳꼴로 인력 감축이 있었다는 뜻이다. 보고서에는 ‘전체 단지의 5.2%에 불과하였음’이라고 적혀 있다. 올 1월 이후에 줄어든 곳은 반영되지 않은 자료다. 보고서 결론은 ‘대량 해고 없었으나 장기적 대응이 필요’이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경비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만나 본 주민 중에는 부결을 예상하는 쪽이 많았다. 한 주민은 “보도 뒤에 ‘부자들이 더 무섭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 경비원 감축 뒤에 쏟아질 비난을 걱정해 반대표를 던진 집도 꽤 있는 것 같다. 지금 있는 경비원 모두 그대로 남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과는 15일 투표 마감 뒤에 알 수 있다. 한 경비원은 “만약 감축이 결정되면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맨 먼저 잘릴 것”이라며 씁쓸함과 허탈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보였다.
 
이상언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장하성 아파트 경비원들 "洪 찾아가 애원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