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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대통령 되겠다면서 사법부 부정하는 희대의 자가당착

[이기홍 칼럼]대통령 되겠다면서 사법부 부정하는 희대의 자가당착

이기홍 대기자 입력 2021-08-20 03:00수정 2021-08-2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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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대선주자들의 김경수·정경심 판결 비난은
민주공화국 핵심 가치와 법치 부정에 해당
잘못인정·사과 모르는 文정권 DNA 계승할 건가

이기홍 대기자

이달 11일 정경심 항소심 유죄 판결은 어쩌면 여권 대선주자들에겐 호재가 될 수도 있었다.

1, 2심 일관된 법원 판결을 핑계 겸 무기 삼아 마침내 조국과 손절하고, 2년 가까이 허우적대 온 억지와 궤변의 내로남불 늪에서 빠져나오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나 여권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방향이 틀린 정도가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친(親)조국 의원들의 사법부 비난이야 예상했지만, 이재명 이낙연 등 주요 대선후보들이 나서서 판결을 사실상 부정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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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 공화제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막나갔던 독재 정권 때에도 “노코멘트”라며 불편한 심사를 표출하는 정도였지, 대놓고 판결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설령 본심이 아니라 강경 친문세력을 의식해 마음에 없는 발언을 했다 해도 심각한 문제다. 정략적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와 공동체의 핵심 가치와 객관적 사실마저 무시하고 억지를 강변할 수 있는 인성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국 가족의 비리라는 엄연한 사실에 저항하는 논리는 의외로 단순하고 조악하다. 요약하면 ①조국 가족은 전무후무한 방대한 수사에 탈탈 털렸다 ②수사의 핵심은 사모펀드였는데 무죄가 되고 별건만 유죄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①을 강변하기 위해 수많은 논리가 동원돼 왔다. 가장 최신판은 이재명 캠프 대변인이 항소심 판결 직후 “12·12 군사반란 사건에 투입된 검사보다 훨씬 많은 검사를 (조국 수사에) 투입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 논평을 듣고 필자도 ‘엄청난 규모의 검사가 투입됐었구나’라고 생각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논설실장으로 매일 조국 뉴스를 다뤘지만 검사 숫자 같은 디테일은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기록을 찾아봤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가 YTN 연합뉴스 등의 확인 보도를 종합한 바에 따르면 조국 수사 투입 검사는 최소 15명으로 추산된다(15~19명).

1995년 12·12 수사 때는 14명, 2005년 안기부 도청 사건에는 14명, 2019년 김학의 전 차관 수사에는 13명의 검사가 투입됐다. 1995년 말 12·12 수사는 반란의 실체를 규명하는 첫 수사가 아니라 1994년 기소유예 처분된 사건을 다시 수사한 보강수사였다.

조국 사건은 안기부 도청 사건보다는 최소 1명, 김학의 재수사보다는 2명 이상 많은 검사가 투입된 것인데, 조국 의혹은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된 사건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숫자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당시 논문 공동저자, 표창장 조작, 장학금 수령,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 숱한 의혹들이 쏟아졌다. 일선 기자들의 검증 취재와 관련자들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고 고소 고발된 숱한 의혹들 가운데 검찰이 한두 개만 추려 부분 수사만 벌였다면 봐주기, 덮어버리기 작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더구나 조국은 당시 정권 내 비중이 단순 장관 후보자를 넘어서는 위치였다. 만약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조국 같은 위치를 점하는 이가 있어 장관에 임명됐는데 언론검증이 시작되자마자 평소 언행과 정반대의 다종다기한 비리 의혹이 쏟아졌다고 가정하자. 검찰이 침묵하거나 의혹 한두 개만 소극적으로 손댄다면 당시 야당(민주당)은 가만히 있었을까.

②번 주장, 즉 수사의 본건은 사모펀드였고 다른 비리는 별건이었다는 주장도 해괴한 논리다. 조국 사태 당시 언론이나 검찰, 국민 누구도 입시비리 의혹을 곁가지라고 여긴 적이 없다. 게다가 사모펀드 관련 혐의 11건 중 무려 6건에 대해 유죄가 나왔는데 수사가 부당하고 무의미했다는 건가.

대선주자들의 태도는 ‘잘못 인정, 사과, 반성이 존재하지 않는 문재인 정권 DNA’의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한번 밀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지지층을 묶어온 허구의 교리 기둥이 무너진다고 여긴다.

아무리 불리한 사건이 닥쳐도 맹신적 지지자들의 신념을 다져줄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주입시키면 결집력이 깨지지 않고 ‘성공한 정권’ 신화가 지속 가능하리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신화는 유지될 수 없다. 야당일 땐 억지스러운 주장이어도 서사구조만 완벽히 만들어내면 지속 가능했지만 집권세력이 되면 다르다. 결과가 뒤따르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자신들이 내세운 것의 결과에 책임지는 경험이나 훈련 없이 권력을 잡은 이들이다. 인사권을 휘둘러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내는 전술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치인의 기본 덕목인 객관성과 책임성은 결여된 집단인 것이다. 그런 이들의 마음속에 권력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뒤섞이니, 객관적 사실에 눈감은 채 범죄를 비호하고 심판을 향한 삿대질을 계속 해대는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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