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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반도체법 발목 잡으면 매국노(埋國奴)로 기록될 것"

[사설] “반도체법 발목 잡으면 매국노(埋國奴)로 기록될 것”

조선일보
입력 2022.11.17 03:22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면서 세계 반도체 산업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경쟁국들은 반도체 산업을 더 키우기 위해 저마다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데, 한국은 국가 생존이 걸린 반도체법조차 정쟁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사진은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photo 뉴시스

반도체 특별법안이 국회에 3개월째 붙잡혀 있다. 민주당 출신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매국노(埋國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팔 매(賣)’ 대신 ‘묻을 매(埋)’를 써서 나라의 미래를 땅에 파묻는 자들이란 뜻이다. 양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낡은 논리로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이들 때문에 반도체 산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역사에 매국노로 박제될 것”이라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양 의원이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 위원장 자격으로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이 주도해 만든 반도체 지원법과 취지는 같고 지원을 좀 더 보완 강화한 법이다. 특혜가 아니라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의 행정·세제 지원을 해주자는 것이다. 새 정부가 반도체 특위 위원장에 민주당 출신 반도체 전문가인 양 의원을 임명한 것은 여야를 초월해 범국가적 과제로 추진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벌 특혜’ ‘지방 차별’ 등 구태의연한 논리로 법 통과를 막고 있다. ‘특혜’ 등은 명분일 뿐 실제는 새 정부 정책 무조건 봉쇄일 것이다.

 

지금 강대국들은 반도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은 한국·대만 등에 빼앗긴 제조 분야를 다시 가져오겠다며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을 만들었다. EU(유럽연합)는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겠다며 수십조 원대 지원 계획을 내놨다. 40년 전 반도체 패권을 잃은 일본은 제조 라인을 재구축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미국의 견제에 몰린 중국은 독자 개발력을 키우려 돈과 인재를 쏟아붓고 있다. 자본 시장의 ‘큰손’ 워런 버핏이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 41억달러를 투자한 사실도 밝혀졌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의 97%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 내지 ‘위기 직전’이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위태롭고, 안보까지 흔들릴 수 있다. 경제도, 안보도 반도체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반도체법’은 국가 생존에 꼭 필요한 법이다. 정쟁의 희생물이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