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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동아광장/로버트 켈리]남북 정상회담, 서두르지 말라

       


[동아광장/로버트 켈리]남북 정상회담, 서두르지 말라

로버트 켈리 객원논설위원·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력 2018-04-21 03:00수정 2018-04-2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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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盧정부의 정상회담과 햇볕정책… 남한, 만족할 만한 결과 못얻어
文대통령, 前정권 전철 안 밟으려면 주한미군 철수 땐 되돌릴 수 없고
北은 변한 게 없다는 점 명심해야

로버트 켈리 객원논설위원·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반도가 흥분에 휩싸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곧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다. 지난 몇 달간 낙관적인 분위기가 이어졌다. 회담을 앞둔 분위기는 지난해 전쟁 위협에 비하면 분명 큰 진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충동적 언사를 저지한 데에는 문 대통령의 공이 크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허풍을 진정시키고자 김 위원장을 협상의 자리에 앉힌 공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현명한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행보가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실제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을 돋보이도록 한 것은 문 대통령의 현명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회담을 둘러싼 과장된 기대감이 놀랍다. 남북 관계에 일종의 돌파구가 생기고 한반도에 큰 변화가 곧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현실이 될 가능성은 낮다. 설사 기대한 바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남한의 비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달 열릴 남북 회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아래 세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 북한은 개혁이나 변화를 수용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대화를 원한다면서 그렇게 할 것이다. 북한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하에서 북한이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거의 없다. 북한에는 정권 개방이나 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유화를 이끈 미하일 고르바초프, 넬슨 만델라, 아웅산 수지 같은 인물이 없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북한이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의 북한이 우리가 알던 그 북한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면 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의 정상회담이라는 갑작스러운 돌풍은 북한이 이를 통해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미국을 타격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 현 상황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 추진으로 얻는 이득을 현금화하기 위해 쇼핑을 하고 있다.


둘째,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장 명백한 ‘그랜드 바겐’은 완전한 비핵화를 대가로 한 주한미군의 철수일 것이다. 남한은 이 제안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서라면 초반에는 미군 철수가 매력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한은 다른 국가는 누리지 못하는 세계 최고의 안보를 미국으로부터 보장받고 있다. 또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남한은 한미동맹을 통해 중간국가의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덕분에 미국 대학, 달러, 영어, 월가 등 미국 소프트 파워가 지배하는 세상과 단단히 연결돼 있다.


셋째, 지난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남한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개성공단도 목표한 의도에 부합하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개성공단을 수입 창출을 위한 고립지역으로 만들고 합법적으로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남한에는 별다른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북한은 심지어 햇볕정책이 진행되는 동안 핵무기 개발도 지속했다.

이는 보수 언론의 비판을 야기했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전임 정권의 운명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북한으로부터 진정한 양보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인권 개선이나 핵 사찰단 수용처럼 자신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양보해야 한다. 과거 북한이 수용했던 추가 회담, 교류 행사, 이산가족 상봉 등은 양보라고 하기 어렵다. 북한이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큰 협상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김정은 위원장(혹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랜드바겐을 통해 교묘한 수를 쓰지 못하도록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로버트 켈리 객원논설위원·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