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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감 자극하는 옥시토신...손상된 심장도 재생하죠

[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유대감 자극하는 옥시토신… 손상된 심장도 재생하죠

호르몬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2.10.11 03:00
 
 
 
 
 

우리 몸속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은 신체 건강은 물론 감정에도 영향을 줘요. 호르몬은 생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핵심 물질 중 하나예요. 그래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샘에 문제가 생기면 생체 기능이 저하될 수 있지요. 지난달 30일 미국 미시간주립대 아이토르 아귀레 교수 연구팀은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이 심장마비 환자의 심근 세포를 재생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옥시토신이 어떤 호르몬이기에 심장을 치유한다는 걸까요? 옥시토신과 함께 우리 몸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해요.

◇열대어에서 발견한 옥시토신 효과

옥시토신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돼 혈류(피의 흐름)로 방출되는 호르몬이에요. 옥시토신은 흔히 유대감을 자극해 연인이나 부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사랑 호르몬’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지요. 또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분만이 쉽게 되도록 자궁을 수축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모유가 잘 나오도록 돕기도 해요. 정자가 난자에 도달하는 것도 돕지요.

/그래픽=진봉기

사람의 심장은 1분당 80번 박동하며 매일 혈액 8000L를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요. 하지만 심장마비 등으로 심장이 한번 손상되면 회복할 방법이 없어요. 심장을 이루는 심근 세포가 죽어 재생할 능력이 없어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열대어인 ‘제브러피시(Zebrafish)’는 인간과 달리 심장의 4분의 1이 떨어져 나가도 30~60일이면 심장이 원래대로 재생돼요. 심근 세포가 분열해 복구되기 때문이죠. 제브러피시의 크기는 5㎝에 불과하지만, 심장이나 간·췌장·신장 등 사람이 가진 장기를 대부분 가지고 있는 데다 유전자의 약 70%가 사람과 같아서 인간의 질병 연구에 많이 사용돼요.

미시간주립대 교수팀은 인간의 심장 재생 방법을 찾으려 제브러피시를 활용했어요. 우선 교수팀은 물고기의 심장을 마비시켰어요. 그랬더니 3일 후 물고기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을 만드는 유전자가 평소보다 최대 20배까지 발현됐어요.

이렇게 활성화된 옥시토신은 심장 바깥층인 심장외막에 있는 줄기세포(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능력을 지닌 세포)가 심장의 중간층인 심근으로 이동하도록 자극했어요. 심근으로 이동한 줄기세포는 심근 세포와 혈관으로 자라 손상된 심장을 복구시켰죠.

이후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사람의 심장 조직에서도 위와 같은 효과를 확인했어요. 제브러피시와 같은 방법으로 실험한 결과 옥시토신이 심장외막의 줄기세포를 이전보다 2배나 더 생성해 재생 능력을 높인 거예요. 이 같은 발견은 옥시토신이 심장마비 환자의 심장을 재생시킬 치료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제 옥시토신을 활용해 사람의 심장 회복력을 높이려는 연구가 곳곳에서 이뤄질 거예요.

◇비만 치료 길 연 식욕 억제 물질

우리가 배고픔이나 포만감을 느끼는 것도 호르몬 작용 때문이에요. 위장과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그렐린’(ghrelin)은 뇌의 식욕 중추(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를 자극해 배고픔을 느끼게 해요. 반면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렙틴(leptin)’은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억제하죠. 그래서 렙틴을 다이어트 호르몬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2013년 서울아산병원과 하버드대 의대 공동 연구팀은 렙틴을 자극해 식욕 조절의 핵심 역할을 하는 물질을 새롭게 발견했어요. 뇌 시상하부에 있는 ‘클러스테린’과 ‘LRP2′라는 물질인데요. 두 물질이 렙틴 신호 전달계의 활성화를 유도해 강력한 식욕 억제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그간 렙틴이 식욕 억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신호 전달과 활성화 경로 등이 규명된 건 처음이었어요.

연구팀은 비만 쥐의 시상하부에 클러스테린을 주입했어요. 그러자 LRP2와 렙틴 수용체의 결합이 일어나 렙틴이 활성화되며 비만 쥐가 음식을 덜 먹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복부 둘레와 체중이 줄었죠. 이를 통해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셈이에요.

비만 환자는 전 세계에 만연해 있어요. 하지만 아직 의학적으로 효과적인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어요. 과학자들은 현재 클러스테린을 이용한 식욕 억제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답니다.

◇다운증후군 인지 능력 개선 효과도

치료제가 없던 다운증후군도 호르몬으로 증상을 개선할 길이 열렸어요.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다운증후군은 그중 가장 작은 크기의 21번째 염색체가 쌍이 아닌 3개로 이뤄진 선천성 유전 질환을 말해요. ‘생식샘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GnRH)’ 발현이 감소하며 인지 능력 저하와 후각장애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GnRH는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데요. 이 호르몬이 고환이나 난소 같은 생식샘을 자극하면 성호르몬이 나와 생식세포(난자와 정자)가 성숙해요. GnRH가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불임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불임 치료에 쓰이고 있지요.

지난달 2일 프랑스 릴대와 스위스 로잔대병원 공동 연구팀은 이 호르몬을 이용해 다운증후군 환자의 인지 능력을 30%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어요. 연구팀은 우선 다운증후군처럼 인간의 21번째에 해당하는 실험 쥐의 염색체에 이상을 일으켰어요. 그러자 GnRH의 생산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실험 쥐의 인지 능력과 후각에 이상이 생겼어요. 연구팀은 이를 정상화하고자 불임 치료에 쓰이는 GnRH의 대체제(루트렐레프)를 쥐에게 투여했어요. 그 결과 2주 만에 후각과 인지 능력이 회복됐어요.

효과를 확인한 이후 연구팀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20~50세 남성 7명에게 GnRH를 투여했어요. 그러자 환자의 인지 능력이 최대 30%까지 좋아졌어요. 이번 연구 결과는 다운증후군 환자의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조선일보 조유미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