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서 일반사병으로 군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고 바로 제대 했으나
사회가 반겨줄 시대는 아니였다.
당시 고속도로가 갓 시작되어 어찌 어찌하여 아주 토건 이라는 곳에 임시직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대전 현장의 중기부에 발령 받아 중장비 자재 관리를 하게 되었다.
군대 시절 보급소 접수를 본 일이 있는데 당시 취급 물품의 스토크 넘버를 죄다 외워 임했을 정도이니
중장비 자재관리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볼트,너트 몇종류, 휠터 여러가지, 삽날 보조 몇가지 등 20 여 품목
주 업무는 아무것도 아닌데 당시의 현장 생활이 밤 낮이 없는 관계로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면 일어나 세수하고
6시 까지 아침을 들고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게 일과여서 항상 잠이 모자랐다.
술이라도 마시는 날엔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월급은 후하지도 않고,먹는것 외에 세탁이나 숙박 시설은 월세를 얻어 생활하고
난방시설은 땔나무 용 방이라
경유를 버너와 연결하여 온돌을 덥혔지만 현장에서 만든거라 난방이 제대로 될리가 없어 춥게 지냈으나
젊음으로 이겨 냈다.
현장 근무여서 대다수 직원은 순수하고 부드러웠으나 몇 몇은 좀 거칠었다.
거친 사람도 내겐 문제될게 없는게
젊고 갓 제대한 놈이고 하니 눈에 뵈는게 없을 때이니 관리에 재미 붙여 일을 했다.
1년 반 정도 근무 하다보니 한계에 다다랐다.
그만 두고 D H 약품이란 곳에 일반직으로 4년여를 근무하다가
제약회사 순위13위 정도인 J I 약품에 경력사원 공채1기로 입사하여 제약회사 영업직에 도전하게 되었다.
10 여명이 같이 입사하여 영업에 대한 교육도 받고 제품 교육을 받아 다음 날 시험을 치루고 하는게
신입 사원으로서의 일과 였다.
이때처럼 학교에서 공부 했더라면 매년 장학금 타며 우등으로 졸업 했을만큼 열심히 코피 흘려가며
10일정도를 보냈다.
당시엔 에레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어서4~5층을 걸어 오르내렸는데 올라갈 땐
나 나름대로의 룰이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계단을 하나 오르는데 난 두 계단씩 오르며 마음 속으로" 당신들 보단 항상 앞설거야 !!
단 , 내려 갈 때는 필히 한 계단[뒤 떨어짐을 의미]...........2부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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