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세계기록유산'에 한국 것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10월 24일부터 4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제13차 회의를 열고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16건으로 늘어났다.
- 입력 : 2017.11.03 09:20 | 수정 : 2017.11.03 11:02
'세계기록유산'은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적 기록물을 말한다.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인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기록 유산이 미래 세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보존·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2년에 시작했다. 1997년에 첫 등재가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110개국 기록 유산 427건이 등재되어 있었다(2017년 10월 31일 현재).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제자문위원회가 심사하고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승인하는 형식으로 선정된다.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는 1997년부터 2년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인류 대대손손 보존할 만한 가치 있는 기록물이라면 시대와 공사를 막론하고 등재된다. 기록물의 형태도 책, 잡지 등의 활자로 된 기록물뿐만 아니라 그림, 악보, 영화, 지도 등 모든 기록물이 포함된다.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1945년 창설된 유엔의 전문 기구이다. 기구의 목적은 유엔 헌장에서 선언된 기본적 자유와 인권 그리고 법의 지배, 더욱 보편적인 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국가간의 교육, 과학, 그리고 문화 교류를 통한 국제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 유네스코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다.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한국 기록물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기존 13건과 이번 총회를 거쳐 등재된 3건을 포함해 모두 16건이다. 등재 숫자도 적지 않지만 등재 이유도 다채롭고 의미 깊다. 전통 시대 기록물은 하나같이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창성을 띠고 있다. 또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역작이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등재연도 순)
1446년 음력 9월에 반포된 훈민정음(訓民正音) 판본에는 1443년에 창제된 한국의 문자 한글을 공표하는 조선왕조 제4대 임금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반포문(頒布文)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인지(鄭麟趾)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해설과 용례를 덧붙여 쓴 해설서 해례본(解例本)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판본을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하며, 간송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자기 언어를 표현하기 위한 새 글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 문자를 만든 창제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는 경우는 없다. 더구나 새로 만든 문자의 창제 원리와 그 음가와 운용법을 밝히고 그것을 해설한 책을 간행한 일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훈민정음(즉, 한글)은 매우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체계이다. 바로 이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을 다루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도 그에 못지않게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저작물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학술사적으로나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가진다.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왕조를 건립한 태조(太祖, 1392~1398) 때부터 철종(哲宗, 1849~1863, 조선의 제25대 왕)의 통치기에 이르는 470여 년간의 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실록'은 역대 제왕을 중심으로 하여 정치와 군사‧사회 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전통 예술‧공예‧종교 등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매일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2,077 책이 보존되었는데, 이 모두가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초자료 작성에서 실제 편술까지의 편수 간행작업을 직접하였던 사관은 관직으로서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다. 실록의 편찬은 다음 국왕 즉위한 후 실록청을 개설하고 관계관을 배치하여 편찬하였으며 사초는 군주라해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함으로써 이 실록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확보하였다. ▶조선왕조실록―생생한 조선 역사의 기록
고려 말에 백운화상(白雲和尙, 1299~1374)이 엮은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은 선(禪) 불교의 요체를 담고 있다. 여러 부처와 고승의 가르침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누구라도 선법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심경(直指心經), 또는 '직지'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직지'는 1377년 7월 청주의 흥덕사(興德寺)라는 옛 절에서 가동 금속활자를 이용해서 인쇄되었다. 승려였던 석찬(釋贊)과 달담(達湛)이 '직지'의 간행을 도왔고 묘덕(妙德)이라는 여승이 이에 필요한 재원을 시주하였다. '직지'는 본래 상(上), 하(下) 2권으로 인쇄되었으나 상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려의 옛 책에서는 좀 더 이른 시기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다른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직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가동(可動) 금속활자본의 증거로서 인류의 인쇄 역사상 매우 중요한 기술적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청주직지축제] 직지란…
▶'직지심경' 이름 딴 유네스코상 생겨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 왕조에 관한 방대한 규모(17~20세기 초)의 사실적 역사 기록과 국가 비밀을 담고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기록된 일기는 서구의 영향력이 당시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조선 왕조의 문호를 어떻게 개방하였는지 잘 보여 준다. 국왕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이들 방대한 기록을 담당한 사람은 승지(承旨)와 주서(注書)였다.'승정원일기'는 전란과 화재 이후 일부 복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기는 역사적 기록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일깨워 주며, 또한 조상들이 진정한 사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기록을 보관하였는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 고유한 중요성을 가진다.
승정원은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기관으로서 조선 왕조를 이끈 모든 국왕의 일상을 날마다 일기로 작성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기관 이름이 수차례에 변경됨에 따라 일기의 명칭도 변경되었지만 이들 모두를 통틀어 '승정원일기'라고 부르며 하나의 기록유산으로 간주한다. ▶번역에만 60여년… 국왕의 한숨까지 기록한 日記
의궤(儀軌)는 조선왕조(1392~1910) 500여 년간의 왕실 의례에 관한 기록물로, 왕실의 중요한 의식(儀式)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보여 주고 있다. 혼인·장례·연회·외국 사절 환대와 같은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데 필요한 의식·의전(儀典)·형식 절차 및 필요한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고, 왕실의 여러 가지 문화 활동 외에 궁전 건축과 묘 축조에 관한 내용도 자세히 담고 있다.'의궤'는 3,895권이 넘는 책으로, 시대와 주제별로 분류·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왕실의 의식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있고, 동시대 동아시아의 다른 문화와 자세하게 비교할 수 있다. 특히 '반차도(班次圖)'와 '도설(圖說)'과 같은 그림 자료는 그 시대의 제식과 의식을 오늘날의 시각 자료와 맞먹을 정도로 세련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의궤'는 조선왕조의 중요한 행사와 의식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글과 그림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문서이다. 이 기록유산의 특별한 양식은 동서양을 통틀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왕실 의궤―왕실 행사를 기록하다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은 고려 왕조가 제작한 '삼장(三藏, Tripitaka, 산크리스트어로 '3개의 광주리'를 의미, 불경)'으로, 근대 서구 학계에 흔히 'Tripitaka Koreana'라고 알려져 있다. 총 81,258판의 목판에 새긴 '고려대장경'은 13세기 고려 왕조(918~1392)의 후원을 받아 만들었으며, 현재 대한민국 남동쪽에 있는 해인사(海印寺)에 보관되어 있다. '고려대장경'은 이를 구성하는 목판의 판수 때문에 흔히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대장경'은 불전(佛典), 즉 불교 경전 컬렉션을 뜻하며,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를 그대로 실은 경장(經藏, Sutta-pitaka), 승단의 계율을 실은 율장(律藏, Vinaya-pitaka), 고승과 불교 학자들이 남긴 '경(經)'에 대한 주석과 논(論)을 실은 논장(論藏, Abhidhamma-pitaka)으로 구성된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에 전해지고, 불경이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다양한 언어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교육 담론의 공용어로 사용되어 왔던) 한문(漢文)으로 번역되었을 때, 여러 국가에서 불경을 배포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목판에 담으려고 시도했다. 그중 하나인 '고려대장경'은 아시아 본토에서 현전하는 유일하고 완전한 경전이다.
섬세한 편집과 수집 및 대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고려대장경'은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 중 가장 정확한 판본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동아시아 불교 연구에 있어 표준이 되는 원전 비평 연구판으로, 그동안 널리 배포되고 시대를 넘어 이용되어 왔다. ▶[만물상] 팔만대장경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동양 의학의 이론과 실제'를 뜻하며, 1613년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의학지식과 치료법에 관한 백과사전적 의서이다. 왕명에 따라 의학 전문가들과 문인들의 협력 아래 허준(許浚, 1546~1615)이 편찬하였다.
의학적 측면에서 '동의보감'은 동아시아에서 2,000년 동안 축적해 온 의학 이론을 집대성하여 의학 지식과 임상 경험을 하나의 전집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현대 의학 이론에 비견되는 지식을 담은 이 책은 동아시아와 그 너머 세계의 의학 발전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의료 제도와 관련해서는 19세기까지 사실상 전례가 없는 개념이었던 '예방 의학'과 '국가에 의한 공공 의료'라는 이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동아시아의 의학 지식과 기술의 발달을 대변하며, 나아가 세계의 의학과 문화에 남긴 발자취이다. ▶허준의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됐다
일성록(日省錄)은 근세 전제군주정의 왕들이 자신의 통치에 대해 성찰하고 나중의 국정 운영에 참고할 목적으로 쓴 일기로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 기록유산이다.
글자 그대로 '하루의 반성문'을 의미하는 '일성록'은 조선왕조(1392~1910)의 22대 왕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의 일상생활과 학문의 진전에 관해 성찰하며 쓴 일기에서 유래하였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 신하들로 하여금 일지를 쓰게 하고 내용에 대해 자신의 승인을 받게 함으로써, '일성록'은 왕 개인의 일기에서 국사에 관한 공식 기록으로 바뀌었다.
그 편찬 작업은 단순한 국사의 기록이 아니라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동서양 간의 정치와 문화의 교류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세계적인 시대 흐름에 대한 통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일성록(영조부터 151년간의 국정 운영 기록)'·'5·18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 사이에 한국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기록물은 민주화운동의 발생과 억압에서부터 진상조사 활동과 보상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의 다양성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사건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보존 필름은 매우 귀중한 것으로, 아마 필리핀의 육성녹음 테이프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야당 지도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대법원의 선고문도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선고와 비교할 수 있다.
여러 인권 단체에 의해서 자체적으로 조사되고 기록된 인권침해 사례는 내용과 다양성 면에서 풍부하며 아르헨티나, 칠레, 파라과이의 인권 기록물과 유사하다. 이들 기록물은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향상의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국가기록원, 광주광역시, 육군본부, 5·18기념재단, 국회도서관, 미국 국무성, 국방부 등이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5.18 여고생의 일기' 주목
'난중일기(亂中日記)'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영웅 중 한 사람인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조선 침략 당시였던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진중에서 쓴 친필일기이다. 1592년 1월부터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치른 노량(露梁)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앞두고 전사하기 직전인 1598년 11월까지 거의 날마다 적은 기록으로 총 7책 205장의 필사본으로 엮어져 있다.
임진왜란에 관한 전쟁 사료 중 육지에서 벌어진 전쟁에 관한 자료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반면 해전에 관한 자료로는 '난중일기'가 유일하다고 할만하다. 이런 관점에서 '난중일기'는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군사적 갈등을 포함한 세계사 연구에 중요하며 세계적 관점에서도 매우 귀한 자료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난중일기-왜군 장수도 감탄한 이순신의 전쟁 일기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1970년~1979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개된 새마을운동에 관한 기록물들이다. 이 기록물은 대통령 연설문, 정부 문서, 마을 단위의 기록물, 편지, 새마을운동 교재, 관련 사진, 영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마을운동은 한 때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준 토대가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얻은 경험은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1970년~2011년까지 129개 국가에서 무려 53,000명의 공직자와 마을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새마을운동에 대해 배웠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새마을운동 기록물에 포함된 자료들은 그동안 18개 국가, 157개 마을에서 본보기 삼아 실천한 프로그램에 활용되어 왔다. UN에서도 인정한 농촌개발과 빈곤퇴치의 모범 사례인 '새마을 운동'에 관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난중일기·새마을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됐다
'한국의 유교책판(儒敎冊版, Confucian Printing Woodblocks in Korea)'이라고 불리는 이 기록유산은 조선시대(1392~1910)에 718종의 서책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으로,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총 64,226장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유교책판은 시공을 초월하여 책을 통하여 후학(後學)이 선학(先學)의 사상을 탐구하고 전승하며 소통하는 '텍스트 커뮤니케이션(text communication)'의 원형이다. 수록 내용은 문학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철학, 대인관계 등 실로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궁극적으로는 유교의 인륜공동체(人倫共同體) 실현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문중-학맥-서원-지역사회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한 지역의 지식인 집단은 '공론(公論)'을 통해 인쇄할 서책의 내용과 이후의 출판 과정을 결정하였다. 제작 과정부터 비용까지 자체적으로 분담하는 '공동체 출판'이라는 출판 방식은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특징적인 출판 방식이다. 또 이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이러한 관계는 500년 이상 지속되면서 '집단지성(集團知性)'을 형성하였다.
영구적으로 보존되어온 영원한 학문의 상징으로서 유교책판은 서책을 원활하게 보급하기 위해 제책(codex) 형태로 인출하도록 제작되었으며, 현전하는 모든 책판은 지금도 인출이 가능할 정도로 원래의 상태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빨래판으로도 쓰이던 '유교 책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KBS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기간 138일,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와,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0,522건의 기록물을 총칭한다.
KBS는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7.27.) 30주년을 즈음하여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했다. 이 기록물은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냉전 상황과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혈육들이 재회하여 얼싸안고 울부짓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고, 남북이산가족 최초상봉(1985.9)의 촉매제 역할을 하며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했다.
올해 등재된 기록물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은 조선왕실에서 책봉하거나 존호를 수여할 때 제작한 금·은·옥에 새긴 의례용 도장과 오색 비단에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주는 글을 쓴 교명, 옥이나 대나무에 책봉 또는 명칭을 수여하는 글을 새긴 옥책과 죽책, 금동판에 책봉하는 내용을 새긴 금책 등이다. 조선조 건축 초부터
근대까지 57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작·봉헌된 점과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지만 내용, 작자, 문장의 형식, 글씨체, 재료와 장식물 등에서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시대적 변천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125] 어보(御寶)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국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한국에서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로 총 2470건의 수기기록물, 일본 정부 기록물, 당시 실황을 전한 언론기록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기록물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에 엄청난 규모의 빚을 지워 지배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가장 앞선 시기에 자국을 구하기 위하여 전 국민의 약 25%가 외채를 갚아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 국민적 기부운동이었다는 점과 이후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등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연이어 일어난 점 등으로 세계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조선 문화·예술 깃든 문화재, 세계기록유산 되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바쿠후(幕府, 무사정권)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이들은 단절된 국교를회복하고, 문화교류를 통해 평화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이라는 14책의 고서에는 일본의 통신사 파견 요청, 통신사 파견 준비 절차, 수행원의 직위와 이름, 일본에 전한 예물의 품목, 일본에 도착한 통신사의 보고 내용과 일본에서 바친 진상품 목록이 빠짐없이 실렸다.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은 과거 200년이 넘게 지속됐던 한일 선린우호의 상징으로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에 크게 기여하는 등 세계에서 그 유례가 찾기 힘든 인류가 보존해야 할 가치있는 기록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통신사등록처럼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일체의 기록을 아우른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해 성공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일 양국의 조선통신사 관련 전문가가 3년간 양국을 오가며 12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선정해 신청한 등재목록은 한국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으로 총 111건 333건에 달한다. 각 기록물의 소장처도 한국과 일본 전역에 이른다. ▶한·일 손잡고… 조선통신사 기록물, 세계유산 만들었다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등재는 보류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국 보류됐다.
앞서 지난해 5월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은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불을 거부하며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유네스코 등재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韓中 등 8개국 시민단체, 일본군위안부 자료 2700여건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IAC는 "등재 신청자와 상대방 등 당사자들이 상호 이해와 정치적 긴장 방지를 위해 추가 대화를 하라"고 했다. 위안부 기록물은 등재 신청자인 한·중·일 시민단체와 상대국인 일본 정부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등재 보류는 IAC와 유네스코가 최근 통과된 내년도 제도 개혁안을 앞당겨 적용해 내린 결정으로 분석된다.
이번 결정으로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더 어려워지게 됐다. 10월 18일 유네스코 집행위원회는 세계기록유산과 관련해 이견이 있을 경우 당사국 간 대화를 촉구하고 의견이 모일 때까지 최대 4년간 심사를 보류하는 결의(심사 제도 개혁안)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새로 위안부 관련 기록의 등재를 신청해도 이 결의에 따라 심사가 계속 보류될 수 있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지급하는 국가로, 그간 유네스코가 자국에게 불리한 결정을 할 때마다 분담금 지급을 연기하며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미국이 10월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한 이후 유네스코의 '자금줄'을 틀어쥔 일본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담금 안 내고 압박한 듯
분담금을 얼마나 내야할지 유네스코와 씨름하던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뒤늦게 유네스코에 합류했고, 뿌린 만큼 거두겠다는 심산일까. 일본의 욕심은 남달랐다.
비준 이듬해 한꺼번에 세계유산 네 개를 등록하더니 2015년까지 열아홉 개를 목록에 올렸다. 일본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홍보용으로 우려먹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썰렁한 폐(廢)광산 이와미긴잔(石見銀山)을 세계유산에 등록해 굴지의 관광지로 만들고 자신이 붙었는지 우리에겐 강제 노동의 한(恨)이 서린 폐탄광까지 올해 목록에 추가했다. 덕분에 관광객이 몇 배 늘었다고 한다. ▶일본의 유네스코 협박
2015년 중국 정부가 신청한 난징(南京) 학살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에 반발해 "세계기록유산 심사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며 2016년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고 버텼던 전력이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은 감동을 넘어 영감을 준다. 과거의 유산을 지키려는 인류의 노력에 자본, 자국의 이익 등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생긴다면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가 크게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과거의 기록 문화를 자랑스러워하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때다.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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